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15)

한국 교회의 버전은?

by 조작가Join

한국 교회의 버전은?


현재 한국 교회의 버전(version)을 따진다면 어떤 수가 뒤에 붙을지에 대해서 작년에 한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산업혁명은 네 번째를 언급하는데, 교회는 몇 번째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목사님은 “한국 교회 2.0이지.”라고 대답하셨다.


그 말씀을 곱씹으면서 한동안 고민했는데, 한국 교회 버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교회 2.0’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큰 수적인 부흥을 경험했고 그 성장을 바탕으로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갖고 휘두르고 있다. 어쨌든 성도가 많으면 정치·사회적 권력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1.0’이라고 할 수 있다. ‘부흥’, ‘성장’ 외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는 것을 보면 그렇다. 물론, ‘발전’을 따질 수 있는 지표를 명확하게 제시하긴 힘들다. 추상적으로 질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종교의 질적인 수준은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도덕성’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는 안타깝게도 3대 종교(가톨릭, 불교, 기독교) 중 그 순위가 3위이다. 과거에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했던 역사적 사례 등(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 근대 교육, 의료 시스템 등)를 고려할 때, 발전적인 측면에서는 ‘1.0’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커지고, 많은 교인을 불러 모았다. 2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징인 표준화, 대량화를 잘 적용했다. 어떤 교회를 다녀도 교회학교 공과 공부 시간이 다르거나 어색하지 않았고(지금도 다르지 않다), 교파가 다를지라도 예배드림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다(민감한 성도가 아닌 이상 교단이 다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마치 맥도널드에서 빅맥을 주문하는 것처럼 표준화가 잘 돼 있다. 표준은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공통 원칙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와 적을 구분하는 경계도 될 수 있다.


2차 산업혁명과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시기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절정인 시대였다. 한국 교회는 근대문화를 국내에 가장 먼저 전달한 종교의 이점으로 성장했고,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적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수적 성장의 가속화를 이뤘다. 물론, 수적인 성장은 독재 권력과의 결탁의 결과임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세력이 큰 종교의 성장에는 항상 권력이 존재했다.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는 발전보다는 성장을 택했고, 현재까지도 성장을 추구한다. 물론, 말로는 질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양보다 질이라고 설교하는 목회자나 지도자들도 있으나, 교회 성장을 부인하는 리더는 별로 없다. 종종 교인이 늘어나면 교회를 분리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도 전체적인 성장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대신 효율적인 목회를 위한 시도라는 의미에서 위성 예배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했던 과거의 모습과 비교하면 일취월장한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교회는 여전히 발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부분이 과학과의 갈등, 여전히 추구하는 고지론이다.


과학 기술(세속)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가?


과학 기술이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일반인은 신을 믿고 의지한다. 그래서 신을 믿는 과학자들의 비율도 별로 줄지 않았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성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판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명동이나 동성로 등에서 “예수 구원, 불신 지옥”을 외치는 종교인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일반인은 없으며, 기독교인조차도 폭력적인 확성기 앞에 수치심을 느낀다. 결국, 확성기가 산업화의 상징이라고 근본주의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고 할 것이다.


확성기가 최고의 도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모든 건 하나님의 섭리로 만들어진 거로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 기술 발전 또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출현하고 발전한 것이어야 하는데 왜 기독교는 과학 기술의 발전 앞에서 그 흥망을 논해야만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일까? 혹은 말도 안 되는 ‘창조과학’을 만들어서 과학적으로 성경을 증명하려고 했을까?


신의 기적을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면, 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이유가 있을까? 세상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 하려는 것일까? 한번 왜곡하기 시작한 증명 방법은 이제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가려 한다. 사실 그대로를 인정하면 되는데, 교회는 중세의 교황처럼 무오류성을 담지(擔持)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왜 기독교(일부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교파를 주로 말한다)는 무모한 사이비 과학 흉내를 내고 싶었을까?


우선,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과학이 종교의 시녀였던 시대의 오래된 향수 냄새가 기독교에 남아있다. 절대 진리라고 생각했던 가치가 과학적 사고와 실험으로 조금씩 무너지는 걸 보면서 과학을 이해하겠다는 생각보다 두려움을 가진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오해와 두려움만 낳을 뿐이다. 우리가 새로운 산업혁명을 기대함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라고 두려워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음으로 기독교 자체의 발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절대 진리를 신봉한다. 그런데, 진리를 신봉하는 것과 진리를 전하는 방식,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건 다른 영역이다. 진리를 더 효과적으로 전하고 더 멀리 퍼트리는 방법은 발전하지 못했다.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나이 든 교인들의 눈살에 아예 외면하는 젊은 교인도 있었고, 교회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상징해야 하는데, 한국 교회는 둘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거룩한 성전은 거룩한 체하는 사람만 다녀야 했다. 더운 여름에 아직도 반바지나 샌들을 신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교역자와 노령층이 많고, 혹 짙은 화장이나 타투가 눈에 보인다면, 외면한다. 필립 얀시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서두에는 창녀가 교회에 다니지 못하는 이유가 나온다. “그들은 나를 더 힘들게 해요!”라고 한 창녀의 이 말은 현재 기독교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지상 사명이라 여겼던 ‘정복’의 개념을 애당초 잘 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정복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을 의미한다. 폭력을 동반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공인 이후 수많은 폭력을 신의 이름으로 자행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기독교는 과학 기술과 함께 전 세계를 다니면서 포교 활동할 수 있었다.


창세기에서 의미하는 세상을 다스리라는 개념은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말한 ‘노모스’의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말로만 표준이지, 이 기준이나 경계에 들어와 있지 않은 외부인은 모두 적(敵)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적은 소멸시켜도 될 대상이다. 종교를 서서히 앞서 나갔던 과학 기술도 한동안은 기독교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 둘은 상보적인 관계로 협력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과학 기술은 세속의 권력자에게 힘을 주고, 기독교에는 폭력적인 선교의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세속의 힘은 기독교의 힘을 앞서고 이제 기독교의 ‘여호와’를 대신해서‘물질’을 앞세웠다. 결국, 약육강식의 논리가 기독교에 그대로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고지(高地)’를 향한 한국 교회


1950년대 민족상잔의 비극을 끝내고,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남북은 새로운 경쟁 시대로 들어간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고, 남한은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독재와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통제했고 반공 이데올로기의 선봉에 섰던 세력이 한국 교회였다.


당시 한국 교회는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가교역할을 담당했고, 정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고지론’을 향한 한국 교회의 노력은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핵심부를 대거 장악하는 쾌거를 거둔다. 장로 대통령도 선출했고(전 김영삼 대통령, 전 이명박 대통령 등) 혹, 대통령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독교에 우호적인 정치인들을 상당수 배출했다.


한국 교회는 가난한 빈농 출신으로 태어나 출세한 것처럼 부와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초기에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기도 했고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고 지속적인 성장의 고속도로가 열리면서, 혁신과 개혁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그렇다면, 왜 고지를 열망했을까? 고지에 대한 열망은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정치 권력과 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물리력이었다고 생각했으니, 교인 중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부자가 많을수록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까울 거라는 단순한 생각을 한 것이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점으로 탄생한 개신교는 목표했던 고지에 도달하자 종교개혁, 혹은 종교혁명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당시 가톨릭의 부패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 부, 성장 등 흔히 말해서 세속의 성공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어느덧 고지 자체가 목적이 됐다.

세상은 당연히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고지에 오른 자들의 실수와 비윤리적인 행태로 기독교의 이미지만 추락했을 뿐이다.


그래도 산업화 시대에는 큰 문제 없었다. 왜냐하면, 교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경제성장의 떡고물을 충분히 맛볼 수 있었고, 그 모든 것을 ‘아멘’으로 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밥은 ‘아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절대적인 요소였다. 세상의 높은 지위와 부의 영역을 확보하면 할수록 기독교는 더 절대시 될 수 있었다. 교회를 다니면서 부자가 되고, 정치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자 세속적 성공에 환호하지 않는 교인은 별로 없었다.


독재 정권이 끝나고 나서도 교회는 꾸준히 성장한다. 1980년대 ‘천만’이 등장했고, 이러한 성장에 힘입어 1990년대 한 목사는 대통령에 출마하기도 했다. 목사가 왜 정치인이 되고 싶었을까? 그 기원은 한국 교회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헌국회에서도 목사 출신 의원이 있었으며, 기독교 지도자이면서 정치인이었던 인물은 수도 없다. 정치를 향한 갈망이 한국 교회의 DNA라고 단정한다면, 억측일까(세계 교회 차원에서도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는 항상 권력의 핵심이었다)?


고지에 대한 열망은 몇 차례 대통령을 선출하고서도 그치지 않았다. 여전히 고지가 기독교의 목표처럼 보인다. 아직은 고지에 오를 힘이 남아있다(여전히 기독교 인구, 네트워크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적인 비판에 대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지금 교회는 곧 구시대의 유물처럼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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