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13)
나이가 들면 몸이 달라진다는 말을 많이 한다. 20대가 다르고 30대가 다르고 40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대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선배들은 같은 20대를 살아가면서도 몇 살 차이로 몸이 다르다는 속된 말로 구라를 치곤 했다. 그러다가 30대 초반에 40대 후반을 보내는 선배가
“살아보니까, 20대 때 해둔 운동으로 30대를 보내고, 30대 때 한 운동으로 40대를 보내는 것 같더라고.”
하면서 30대 때 열심히 몸 관리하지 않은 자신을 반성했다.
지원은 40대가 조금 넘었지만, 밤을 새워도 다음 날 크게 불편하지 않고, 몇 시간 꼬박 앉아서 일해도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꾸준히 운동으로 체력 관리를 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비슷한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배도 덜 나오고 가슴과 어깨 근육이 탄탄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다만, 몸은 생각과 달랐다. 종종 성인 영상을 보면 말로는 거부하지만, 몸에 반응이 오는 장면들이 있는데 이럴 때는 도대체 기준을 어디에 두고 인간을 평가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말초적 자극에 반응하는 육체를 우선해야 하는지, 그런 상황에서 말로 계속 거부하는 인간의 정신을 대변하는 소리가 진짜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지원도 30대 후반부터 혈압이 올랐고, 체중이 늘었고, 잔병이 생겼다. 특히, 통풍이 생겼는데 발작할 때면 참을 수 없는 통증에 견디지 못하고 새벽에 응급실을 찾아야만 했다. 처음 통풍을 경험할 때는 통풍 인지도 몰라서 통증을 그대로 느끼면서 며칠 고생했는데 병명을 확실히 알고부터는 조기에 발작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통증을 안고 며칠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멍청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새벽에 갑자기 발작이 생겨서 발작 부위를 주무르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냉찜질을 하기도 했다. 결국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끙끙 앓다가 참지 못하고 세 시간 만에 병원에 갔다. 가자마자 진통제를 투여하고 진통소염제를 받아 들고 나올 때,
"그런데, 주사를 맞았는데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네요?"
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 질문을 받아준 간호사가
"그게 제일 강한 주사예요."
라고 답하니, 지원은 왠지 엄살을 부린 것 같아서 민망해하며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러고 나서 집에 오자마자 약 한 봉지를 얼른 뜯어 입에 털어 넣었다. '제발 통증아 멈춰 다오!'라고 외치면서. 한 반나절 고생한 후에야 조금씩 통증이 덜해졌고, 이후 병원을 찾아 다시 진료받아야만 했다.
“겉으로 볼 때는 통풍이랑 관계없을 거 같은데요.”
“벌써, 수년째 고생하고 있습니다.”
“운동하세요?”
“네. 운동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술, 담배는 드시죠?.”
“전 술 담배는 평생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간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일반적인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결국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시절부터 잠을 깊게 잘 수 없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런데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으니, 그저 마음은 원리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성경 말씀이 진리로 다가올 뿐이었다.
“어쨌든 일반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통풍 치료 방법이 잘 드니 통풍이 맞습니다.”
“네.”
‘일반적이지 않은 환자라? 도대체 일반적인 게 뭔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내가 오히려 일반적인 게 아닐까?’
세상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평소에 자주 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이라는 생각에 지원은 잔뜩 일그러진 인상으로 다닐 때가 종종 있었다. 서민들을 대변하는 정권이 맨 꼭대기에 있는 요즘 빈부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공평을 가장 중시해야 하는 법무부의 수장이 나가떨어지고. 다시 생각하면 권력자들이 밀려날 만큼 세상이 좋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는지.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화면을 보니 1분 이내에 도착한다고 뜬다. 택시가 도착했다. 해외에서처럼 우버가 없어도 택시를 마음대로 부를 수 있다. 오히려 요금을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들쑥날쑥하게 변동하는 우버보다 기본요금이 정해진 택시가 더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택시 기사가 환하게 맞아준다. 그러더니,
“요즘, 검찰 개혁 때문에 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택시 기사들이 언론 플레이에 관심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검찰 개혁’을 들이대니 지원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잘하면 가는 데까지 심심하지 않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 개혁하면, 기사님 살림살이 나아지십니까? 차라리 최저시급이나 잘 준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기야 그렇죠. 그런데, 최저시급은 잘 지켜지고 있지 않나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 주변에 있는 편의점, 그리고 다른 도시에 있는 편의점 몇 군데만 돌아도 그렇지 않은 걸 쉽게 알 수 있는데요.”
“아닙니다. 제가 천군 데는 돌아서 확인한 것입니다.”
지원은 치료받은 엄지발가락이 움찔하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인지, 진짜로 통증인지는 알 수 없다.
‘택시 기사가 거짓말을 한다. 굳이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한테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자주 볼 사이가 아니니 조용히 넘기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거짓말한 것이 멋쩍었는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한다.
“제가 경제학과를 나왔어요. 그리고 20년 넘게 대기업 노조에 있었고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한다. 지원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단, 기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감이 왔다. 기사는 자기가 택시 운전하고 있을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느 기사와 다르다는 걸 보여 주려고 알지도 못하는 사실을 과장해서 말했던 것이다.
본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승객한테 지기 싫었던 것이다. 과거 그가 속했던 노조는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 아니었다. 노동자 위에 있었던 조직이었다. 노조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노조 위원의 추천이 있어야 가능했다.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 어느새 노동자보다 자기들 이권을 위해 굴러가고 있었다. 지원은 노조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거짓말하세요? 천 군데 돌았다는 건 거짓말이잖아요?”
“거짓말 아닙니다. 2천 군데는 돌았어요.”
지원의 말에 당황한 택시 기사는 얼떨결에 더 큰 거짓말을 한다. 여기서 간단히 산수를 해보자. 택시 기사가 하루에 몇 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시급 받는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근거리에 거주하는 사람일 테니, 택시 탈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2천 군데라고 했으니 하루에 한 명씩 만났다 치더라도 7년 정도는 꾸준히 만나야 한다. 그렇게 꾸준히 만났다 하더라도 기사가 “시급 제대로 받아요?”라고 질문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렇게 따져보면, 1주일에 한 명이나 될까? 그러면 기간이 일곱 배로 늘어나니 거의 50년 정도는 택시 운전을 해야만 한다. 혹, 일부러 시급 현황을 조사하고 싶어서 편의점과 식당에 가서 밥 먹으면서 물어봤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본인 운행 루트에 있는 식당과 편의점 수준일 테니 인원이 크게 늘지 않는다.
결론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은 ‘나는 평범한 기사가 아니야!’라는 쓸데없는 자존심의 발악인 셈이다.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해야 했을까? 그리고 거짓말을 바로 잡을 수 업다고 판단하면 인간은 거짓말을 스스로 믿어 버린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도 될 수 있다.
과거 감옥에 들어갔던 정치인들을 보라. 특히, 최근에 감옥에 들어간 전직 대통령들은 여전히 무죄를 주장한다. 무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까?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정의’ 그 자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하면 모든 게 정의고, 남이 하면 불의가 된다. '내로남불'뿐만 아니라 '내의남불'도 존재한다. 내가 하면 정의고 남이 하면 불의라는 의미다. 내로남불은 한 가정을 파탄 내지만, 내의남불은 한 국가를 망칠 수 있어서 더 큰 문제가 된다. 코로나 시대 의를 주장하면서 모이는 종교인들이나 교회의 모습이 내의남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불의가 정의의 탈을 쓴 시대가 바로 코로나 시대이다.
“제가 호남지역을 빼고는 다 일해봤어요!”
느닷없이 지원한테 다양한 지역 경험을 운운한다. 그러나 지원은 이미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에 그런 수작으로는 말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편의점 운운하다가 전국에서 일해봤다는 말은 논리적이지도 않다. 택시 운전 시작은 얼마 되지 않았고, 그가 노조에 있었던 지역도 영남이었기에 다른 지역으로 파견을 갔다 하더라도 장기간 체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도 호남을 제외하고 제주도까지 다 일해봤습니다. 혹시, 제주도에서 일해 보셨다고 하니, 물어볼게요. 제주도 대졸자 초임이 얼마인 줄 아세요?”
“허허. 모릅니다.”
“최저시급이 안됩니다.”
“그러면, 신고하면 될 텐데.”
노조 간부로 살면서 일보다는 규정 등을 살폈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대접받으면, 그 아랫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마디 나눠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은 신고하고 싶어도 신고하기 힘든 사람들이 더 많다. 노동청에 가면, 약자 편을 들어준다고 들었다. 그러나 대체로 합의를 권한다. 물론, 받을 돈 받는 게 신고자들의 목적이어서 돈만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신고를 철회한다.
그러나 따져보면, 돈은 제대로 받는 게 당연하고, 신고했으니 위법상황에 맞는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못할까? 공무원들이 착해서? 아니다. 그렇게 하면, 대부분 소상공인이 영업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한 건물주가 열심히 세금 신고를 했더란다. 그랬더니 어느 날 세무서에서 건물주를 불러서 한마디 했다고 한다.
“다른 데와 비슷하게 하세요. 혼자만 그렇게 하시면, 나머지 건물주들이 힘들어요.”
결론적으로 법을 잘 지키기보다는 불법적인 균형에 맞추라는 말이다. 법치 국가라는 무대 뒤 편에 평등한 위법 국가가 존재한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에 등장하는 화려한 무대, 하지만 그 뒤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실상처럼.
택시 기사는 대기업 노조에 있었으니 하청 기업이나 소규모 기업의 상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제발 거짓말하지 마세요!”
지원은 정말로 택시 기사의 거짓말에 화가 났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짜증 내면서 말했다. 그러면 그 입을 닫을 줄 알았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팩트를 제시해도 우기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아마 이 택시 기사는 계속 돌아다니면서 경제학과 나온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난 대학 나온 사람이고 대기업 노조에 있었던 사람이야! 나 무시하지 마!’
택시 기사라고 해서 무시당하는 게 아니다. 그가 거짓말하기에,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진실이 잘못됐음에도 바로 잡으려 하지 않기에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미터기는 왠지 조작됐을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노조 시절이 그립고, 택시 기사가 볼품없다고 느껴졌으면, 택시 운전을 하지 않으면 됐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계속 일해야 하는 상황이니, 스스로 하찮게 여겼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노조 간부 역할도 별로 좋지 않았다.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 입장을 두둔하다가 결국, 쫓겨난 것이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후반 부에는 직립보행(直立步行)하는 돼지가 등장한다. 네 발로 걷던 돼지들이 인간 흉내를 낸다. 원래 동물들이 단합해서 그들을 착취했던 인간을 쫓아냈는데 이제 돼지들이 인간 흉내를 내면서 새로운 착취자가 된 것이다. 노조가 타락하면 마찬가지로 기업 간부 흉내 내는 돼지가 될 수 있다.
역사 속에서 돼지들이 지배한 농장은 붕괴했다. 노조의 간부였던 택시 기사와 동물 농장의 돼지는 뭐가 다를까? 돼지는 직립해도 돼지며, 아무리 인간을 흉내 내려해도 꿀꿀 소리 이외에는 나오는 소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