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한국 교회(20)

소비하는 개인, 세속화된 교회

by 조작가Join

권력을 따라


19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가 전해졌다(물론 기독교를 접한 거 훨씬 더 오래전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스타일의 교회가 세워진 건 아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볼 때, 교회가 국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과 상호작용해서 정착했음을 알 수 있는데, 복음이 보편적인 성격이 있을지는 몰라도 정착할 때는 국가나 사회의 특수한 상황과 어우러질 수밖에 없다.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로마 시대에도 교회는 당시 권력과 교류하면서 제국을 유지시킬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한국 교회 또한 아래로부터 시작한 종교가 아니라, 위에서 시작한 종교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개신교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떠난 퓨리턴들의 바람이었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그들의 위치도 상층부였다.


그나마 일본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교회의 방어벽이 있었기에 꽤 많은 민중이 교회를 찾았고, 그런 가운데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한 민족 기독교의 기틀을 성립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동휘처럼 전도사의 삶을 살다가 공산주의로 전향한 사례를(박헌영도 승동교회를 다녔던 사실이 있다) 볼 때 당시 민족 기독교 정신의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권력은 물리적 힘이 강한 쪽으로 이동한다. 서양의 침공, 조일통상조규 등 외세의 공세 앞에 권력의 기반이었던 유교가 무너지고 그 공백을 다양한 사상이 채우게 되는데(대종교, 동학, 천주교, 개신교 등) 당연히 서구의 힘을 앞세운 기독교가 새로운 권력의 주체로 성장했다.

만약 당시 조선이 독립국이었다면,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일제 치하에 놓여 있었던 교회는 그 본성상 권력 친화적일 수밖에 없었기에 교회는 제1계명을 어기는 신사 참배를 거절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의 공산주의로의 전향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권력과 타협하고, 체제를 개혁하기보다는 유지할 수 있도록 조력했던 한국 교회는 산업화 시절 독재 정권과도 유사하게 타협했고, 덕분에 교회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 기독교는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정권의 반공 기치를 후원할 수 있는 강력한 지지기반이었고, 초기 통역 정치를 할 때도 기독교인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교회는 일사불란한 조직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고, 교인들을 관리했다. 대부분 교회는 작은 단위의 모임을 조성하고, 그 작은 모임들이 모여서 더 큰 단위의 모임으로 커지게 된다. 작은 단위의 모임은 주로 가정주부가 대부분인데, 1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서 구역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이러한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장’들을 교역자들이 관리한다.

교회의 조직관리는 철저했고, 당연히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다.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세련됐고, 문맹이었던 사람들도 성경을 보고, 찬송가를 따라 부르면서 글을 깨치는 일도 있었다. 교회 건물은 일반 성도가 사는 집에 비해 깨끗하고 화려했으며(예를 들어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교회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실제로 교회에 다니면서 부자가 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은혜였겠지만,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을 생각할 때는 당연한 일이었다.


개인의 등장과 교회의 세속화


교회의 철저한 조직관리와 기복신앙에 의지한 성장은 한계에 직면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개인’이 등장한다. 인간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건 성경적으로 볼 때는 선악과 이후가 된다. 그전까지 인간은 창조된 신과 같았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이 모든 걸 말해준다.

그리고 철학적으로 신의 자비로운 테두리를 벗어나기 시작한 건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였을 것이다. 인간의 사유마저도 신의 통제하에 있었다는 신본주의는 데카르트 이후 조금 줄어들었다. 조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인간이 점진적으로 신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어쨌든 인간의 사유를 앞에 내 세운 데카르트조차도 당시에는 신을 완전히 부인하지 못했다.


반면에 21세기의 한국 교회는 신성의 거룩한 테두리에 겸허히 놓여 있는 상황이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지만, 신을 바라는 보는 시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신본주의 신론이다. 즉,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신은 세상을 창조했고, 그 운행에도 간섭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의미는 현재 한국 개신교 성도 대다수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잘 되든, 그렇지 않든 성도는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내 탓은 존재할 수 없다. 다 하나님 탓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유 의지’는 어디에 존재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이신론이다. 세상이 신의 창조물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 운행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로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한 신론이다. 그러나 이때도 신 대신 새로운 우상이 있었는데, ‘이성’이었다. 사실, 인간의 이성이 신을 대체한 것이어서 인간 자체를 신의 경지로 상승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어쨌든 신적인 존재를 만들어 놔야 마음이 편해지는 동물인가 보다.


세 번째, 무신론이다. 세상은 빅뱅으로 만들어졌으며,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진화론도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 사실, 대부분 인간은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하면, 인정하기 싫어한다. 원숭이와 조상이 같고 내가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운명이 아니라 우연이라면, 살아야 할 목적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현대 물리학은 불확정성 원리에 손을 들어줬다.


결론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생각은 이 세 가지가 다 존재하는 세상이다. 필자는 창조론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우주가 운행되고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모든 걸 하나님이 정해 놨다고 하는 무책임한 고백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아울러 진화론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포함된 일부라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믿으면서 명백한 진화론을 거짓이라고 믿으려고 발악하는 일부 개신교인의 무지함을 비판한다.

그런 부류에게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를 그들만의 시간 대에 가둬뒀다. 하나님을 말하지만, 실제로 신은 그들인 셈이다. 코로나를 기도로 치유하려고 하다가 온 교인이 코로나에 전염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애국과 신앙을 볼모로 잡아 교인을 모이게 하는 현재의 희극도 알고 보면 그 안에 신이 없다.


다시, 개인으로 돌아오자. 인간 개개인의 등장은 오래됐지만, 주체로 활동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국가가 등장하고 민족이 탄생하면서 인간은 신에게서 벗어났으나 공동체에 귀속됐다. 국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민은 여전히 드물고, 우리나라는 민족 이름 앞에서 거룩해진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이제 공동체를 강조하기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중요시되고, 조직의 힘보다는 개인의 인권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조직보다 공동체(말로만 공동체)를 강조했던 교회는 턱없이 무너지게 된다. 예를 들어서 문화 분야에서 교회는 좀처럼 대중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해서 청소년들을 내어주게 된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건 합창이 아니라 아이돌이었다.

아이돌은 단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거 같지만, 따져보면 각자만의 개성을 어필해서 팬들에게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무지개 속의 한 가지 색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외로운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SNS를 이해하지 못했다. SNS가 인간의 자유와 표현을 확대하고 향상한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플랫폼이 만들어진 이유가 일부 창업자들의 수익 창출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위키피디아 등과 같은 공유 지식의 산물도 있지만, 대체로 영리가 목적이다. 아무리 검색 기능이 좋은 구글이라 하더라도, 구글의 목적은 수익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철저히 소비자로 구분돼 분석되고 있다.


교회의 기본적인 인간 이해는 불쌍한 영혼,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재정에 도움이 되는 구성원이다. 물론, 이러한 이해는 무신론자들의 방식일 수도 있다. 떠도는 신에 대한 왜곡을 담은 동영상 등은 일반인들의 기독교 이해를 방해하고 급기야 교인마저도 교회를 떠나게 만든다.

정보화 시대, 개인의 등장에 교회는 별로 대응하지 못하고 대책 없이 당하고 만다. 재정에 도움이 되는 성도들의 유출은 당장 크지 않았지만, 차세대를 생각하면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차세대로 일컫는 청소년들은 개인화를 넘어서 스스로의 정체성마저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실을 분석하고 원인도 어느 정도 알지만,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교회는 연합된 조직이 있지만, 가톨릭처럼 통일된 지침에 따라 운용하지 않는다.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고, 수준이 다르니 획일적인 표준을 적용하기 힘들다. 아울러 교회 조직이 파이프라인 형태로 관리했기에 하루아침에 스타트업과 같은 “파괴적 혁신”을 주장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현재 많은 대기업도 조직 운영의 신속하지 못함과 의사 결정의 더딤을 인정해서 아예 스타트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회는 작은 교회를 인수하거나 대안 조직을 흡수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전국에 있는 교회 중 100명을 넘지 못하는 교회가 대부분임을 고려했을 때 위의 내용도 일부 교회에 해당할 뿐이다.

대형 교회는 개인의 등장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없는 구조이고,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교회도 별로 없다. 그러니 해결 방법은 기도, 말씀, 전도, 부흥 등이다.


분명 맞는 말인데, 왜 공감하기 힘든 것일까? 같은 말씀, 기도, 전도, 부흥이라고 하더라도 그 언어의 통시성이 있을 텐데 공시성만을 강조하기에 좋은 말들이 한낱 관용구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문제들이 정말로 심각하다고 인식될 때쯤에는 교회에 남은 성도가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체감할 때일 것이다. 더 답답한 건 이런 문제들은 현재 많은 비판을 받고 대중의 주목을 받는 목사들이 타계해도 쉽게 극복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절대적인 권력의 수양아들로 양육받은 자들이 교회의 담임 목회자로 서게 된 지금 앞으로도 혁신을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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