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인공지능 그리고 교회
앞에서 간략하게 빅데이터를 활용한 교회 모습을 상상해 봤다. 사실, 빅데이터 활용 여부와 상관없이 교회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영성을 강조하는 경우, 점차 많은 사람이 교회를 허구의 풍선으로 인정할 것이다. 과학 기술은 이미, 우주를 개척하고, 영화 속에서만 보던 것들을 하나, 둘씩 현실화시키는데, 교회는 20세기의 방법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교회를 다니는 많은 교인은 믿음을 우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믿음이 없다면 왜 교회를 다니는 것일까? 로버트 퍼트냄은 미국 교회를 분석해서『아메리칸 그레이스』라는 두꺼운 책을 출간했는데 교회가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문화 교류 단체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하나님을 만나러 교회에 다니는 게 아니라 문화 생활을 하고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복음은 간단하고 구원론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믿고, 누구나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싸구려 취급되기도 한다. 원래 인간은 쉬운 건 쉬워서 쉽게 수용하지 않는다. 싼 물건은 아무리 좋아도 그 가치를 폄하(貶下) 하듯이.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려우면 역시 '나와 격이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면서 포기한다. 영국의 기독교 변증론자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기독교를 믿는 건 어렵지 않으나, 제대로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설파하기도 했다.
첨단 과학 기술은 세계 이해를 위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인류는 과학 기술을 더 추종할 수밖에 없고, 신뢰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빅데이터 분석 아닌가?
대형마켓 ‘타깃’에서 미성년자에게 임신 용품과 관련한 쿠폰을 보냈다가 딸의 아버지한테 강렬한 항의를 받고, 사죄했는데 얼마 후 딸의 아버지는 사과하게 된다. 그 딸이 실제로 임신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사례는 별거 아니다. 모든 여론 조사 기관이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공표했지만, 오직 하나 빅데이터 여론 조사만이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다양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는 끊임없이 우리가 관심을 보이는 상품들을 홍보하고 쿠폰을 보내준다. 이 모든 것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것이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개념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고, 이제는 그 개념을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인간 삶의 영역에 어느새 침투해서 민감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내비게이션, 모바일 광고, 각종 애플리케이션, 가정의 전자제품 등에서 이미 공기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공기와 같이 익숙한 빅데이터는 교회 안에서는 볼 수 없다. 경건한 예배를 위해서 휴대폰의 전원을 오프해야하는 교회에서 정보수집은 불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추석 이후 개천절 쯤 집회를 계획했던 일부 수구단체들은 휴대폰 전원 오프를 전달했다고 한다. 코로나 전염을 방치하고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여전히 무거운 성경책과 찬송가를 지참해서 예배를 드리게 하는 고루한 방법은 이제 사실상 무위에 가깝다. 많은 청년과 청소년들, 그리고 장년층이 이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성경과 찬송을 본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맹목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교회의 메시지는 곧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인의 성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목회자의 설교는 받아들여지기 힘들고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빅데이터 등을 교회에서 활용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예를 들어 교인들의 성향을 분석해서 그들에게 간절한 설교를 준비해 줄 수 있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고 치자. 현재도 강단에서 목사들이 교인들이 좋아하는 설교를 해주는 경우가 꽤 있다. 예를 들어 ‘명품교회’, ‘웰빙교회’등을 선전하는 설교가 셀 수 없고, 엘리트주의와 성공 지향적인 설교를 했던 교회의 역사는 장구하다. 과거에는 교인의 성향을 분석해서 목회자가 주제를 정할 수 있는 정도로 교인의 스펙트럼이 좁았다면, 이제는 그 성향이 다양해서 과거와 같은 분석 방법으로 목회자가 준비하기 힘들다. 결론적으로 시대에 맞춰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설교 준비는 크게 기존의 방법에서 벗어난 게 아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빅데이터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그 분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대신 정리한 설교가 출현한다는 것은 목회자의 권위 중 가장 큰 부분이 위협받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알고리즘을 통해 나오는 설교 메시지가 교인들을 더 만족시킬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빅데이터의 사용은 설교 준비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목회자들에게 잉여시간을 확보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잉여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목회 방향의 핵심이 될 것이다. 종종 빅데이터가 만들어 낸 설교 대신 다른 설교도 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준비한 설교에 대한 교인의 만족도가 인공지능이 작성한 설교에 비해 떨어진다면 목회자의 자존심도 바닥을 치고, 자신감도 잃게 될 것이다.
사실, 현대 교회가 목회자의 설교 때문에 유지되는 것은 아니어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아메리카 그레이스』에서 현대 교회가 점차 문화적인 공유와 동아리 활동 등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교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문화적, 인간관계를 통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교회는 유지된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모델이 소망 교회의 '고소영(고대출신이면서 소망 교회를 다니고, 영남 출신)' 아니었던가?
설교는 이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통한 분석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교인들은 만족해한다. 그저 목회자는 주어진 본문을 감성을 살려 잘 전달하면 된다. 이러한 상황을 현재 목회자들이나, 기존의 교인들이 수용할 수 있을까?
빅데이터를 수용하지 않으면, 세상에 대해 무지한 목회자의 현실과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목소리만 음향기기를 통해 예배당을 떠돌게 될 것이다. 결국,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렇다고 빅데이터를 수용하게 되면, 성경의 말씀을 권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목회자의 가장 큰 힘이 사라진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등장 사물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바둑 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이세돌 9단을 포함해서 당연히 인간이 승리할 걸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체스에서는 1997년에 딥 블루가 세계 챔피언을 이겼고, 2011년에는 제퍼디라는 퀴즈 쇼에서 왓슨이 인간 챔피언을 압도적으로 눌러버렸다.
당연히 인공지능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알파고의 압승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둑만큼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역시 인간의 편향적인 생각이다. 이세돌 9단도 인공지능에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다섯 번의 대국 중 첫 세 판을 인공지능이 승리했고, 인간은 네 번째 판에서 무려 한 판을 이겼다.
당시에 많은 시청자와 대중매체를 통해 결과를 전달받은 대중들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인공지능과 관련한 보도는 댐의 수로를 개방해서 물이 온 지면을 덮듯이 공중파를 비롯한 케이블, 포털 등에서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에는 인공지능의 승리에 대해 경악했었지만 2년이 조금 지난 지금, 오히려 이세돌 구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한 번 이긴 것에 대해 더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이후 세계 바둑의 일인자 커제와 다시 대국이 벌어졌는데,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길 당시보다 더 압도적으로 이겼고, 더 이상의 대국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인간과 바둑을 대결해서 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논쟁은 모든 일이 그렇듯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긍정적인 측면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인공지능이 더 확실하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계산을 하거나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 등을 연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자율주행자동차도 인공지능으로 운행되는 것이다. 대부분 하드웨어에 인공지능이 탑재되고,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고, 업그레이드하면서(기계학습, 딥 러닝 등)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은 우선, 인간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미,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세계경제포럼에서의 보고서가 있다. 이미, 제조업계에서는 독일을 비롯하여 ‘스마트 팩토리’로 전환하는 국가들이 증가하고 있고, 따라서 인건비가 저렴한 제3세계에서 모국으로 리쇼어링(Reshoring)하는 기업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고 가장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는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이 기계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다.
분명, 인공지능의 발전은 가속화되고 있고, 현재는 특정한 분야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수준이지만,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 이후 슈퍼인공지능(Artificial Super Intelligence, ASI)이 도래하면, 인공지능이 현실 세계에 미칠 영향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SF영화와 픽션들이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 속의 일들이 실제로 현재 현실 속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인공지능의 수준은 인간으로 따지면, 유아기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아기 수준을 보고도 많은 사람은 놀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한다.
어떤 대상이 두렵다는 것은 실제로 그 대상이 두려운 대상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예를 들어 공룡이 도시에 나타났다고 가정한다면, 그 강력한 힘과 포악스러움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려움의 다른 원인을 하나 더 보자면, 무지(無知)에서 비롯한 것이다. 알지 못하니 두려울 수밖에 없고, 유언비어에 쉽게 동요된다. 인공지능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범람한 상황이니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알아보고자 한다면, 충분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데, 대중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저 대중매체에서 전달해 주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전하는 기자의 음성에 귀를 대고 그대로 믿어 버린다.
대중매체는 속성상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더 많이 전한다. 시청률을 고려할 때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건 긍정적인 미담보다는 흉악범이 저지른 사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화성 살인 사건 용의자와 관련한 보도가 연일 모든 뉴스에서 전파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미담이 이처럼 많이 다양하게 전해질까? 과거 포스트 시즌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의 승리도 그날 하루에 그쳤다.
무지한 인간은 두려움을 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대자연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천재(天災)를 해석하기 위해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독교를 믿는 교인들은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역사해석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믿는 기독교 역사에 관심을 두고 제대로 학습해 본 교인들도 별로 없다.
혹, 관심을 두고 뭔가를 한다고 하면, 항상 교역자들을 대동하거나 팩트조차 확인할 수 없는 과거의 유산을 가르치는 신앙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으려 한다. 이런 경우 배우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대표적인 게 창조과학과 ‘어 성경’등을 활용한 모임이다. 창조과학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어 성경’에서 가르치는 내용 자체가 극보수적인 관점의 해석인데, 이러한 내용을 아멘으로 혹은 지식으로 받아 넣는 성도들이 꽤 있다).
과거 성경은 라틴어로만 돼 있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성경을 감히 읽지 못했고, 성경이 있어도 언어를 몰랐기에 읽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성경의 무지에서 비롯한 외경심이 있었기에 사제들이 전달해 준 말씀이 곧 진리가 돼버렸다(실제로 무식한 사제도 많아서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발달은 성경 번역에 박차를 가했고, 모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성경을 구해서 읽을 수 있었다(여전히 평민들에게는 비싼 수준이었을 테지만). ‘만인 제사장’으로서 성도들은 ‘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파격적인 권리와 의무가 생겼다. 물론, 당시 민중들의 문맹률을 고려한다면, 성경이 지금처럼 많이 읽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성경은 모든 사람의 것이 됐다.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보편적인 것이 된 것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성경이라고 한다(참고로 2위는 『마오쩌둥 어록』이며, 3위는『해리 포터』라고 한다). 지금도 수많은 성경책이 팔리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 교회에서 성경통독 대회를 하고 나서 주는 상품이 성경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은 학년이 바뀔 때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도 성경이다. 성경, 찬송을 앱을 통해 볼 수 있어서 무거운 성경과 찬송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비트(bit)의 형태가 아니라 원자(atom)의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이제 성경은 어디서나 구해 볼 수 있는 흔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성경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원래 흔한 것은 그 가치가 떨어지는 법이다. 그토록 어렵게 성경을 개인이 읽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했지만, 현대인들은 그 권리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그러니 호기심이 있을 수 없다. 혹 있다고 해도 호기심 그 수준은 유치하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 그 비평도 자유롭지 못하니, 중세 말기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경에 대한 무지의 향연과 성경 비평에 대한 두려움은 한국 교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또 다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알지 못하면 불안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도 무지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성경이 가까이 있어도 읽지 않아서 항상 낯설고, 감히 해석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아닐까?’ 하면서 자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인공지능과 관련한 소프트웨어와 기기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서 알게 모르게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한 적이 없기에 대중매체에서 전하는 부정적인 목소리에 설득당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교회에 유익할까? 아니면, 그렇지 못할까? 현재를 기준으로 인공지능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교회에 유해할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설교
앞에서 빅데이터를 정리했다. 인공지능이 활용하는 데이터가 바로 빅데이터이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많은 데이터를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내리거나 정답을 찾는다.
아무리 뛰어난 목사라 할지라도 성경 66권, 전부를 외우지 못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성경을 다 외울 수 있다. 그것도 현재까지 번역된 모든 성경을 토착 언어로 모두 저장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성경 버전(version)이 있는데, 역시 모두 저장할 수 있다. 그리고 원하는 본문을 인간보다 훨씬 빨리 찾을 수 있다. 성경과 관련한 해석은 물론 필요한 자료를 찾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 처음에는 더딜 수 있지만, 성능 좋은 인공지능은 기계학습(machine leaning)을 통해 계속 발전할 것이다.
이제 설교자가 말씀 제목만 부여하면 인공지능은 멋진 설교 문을 작성해서 줄 것이다. 설교자는 그 말씀을 조금 보완해서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목사가 전달하는 설교보다 인공지능이 전하는 설교가 교인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줄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교인은 모른 채 말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교회 목사의 성향과 기존 설교 내용을 분석해서 현재 시무하고 있는 목사처럼 설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설교하는 교회에서 목사가 필요할까? 현재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설교를 인공지능이 대신해 주는 시대에는 새로운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 목사의 ‘일의 언어’는 ‘설교’에서 다른 영역으로 전환하거나 혹 전환하지 못한다면, 목사라는 직위와 직업이 사라질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설교자로 등장하는 데까지는 여러 토론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인공지능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이론적으로 신을 알 수는 있을지 몰라도 믿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설교문을 완벽하게 작성하더라도 설교에 관여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반발은 거셀 수밖에 없다.
성경 공부
성경 공부와 관련해서도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다. 현재 주일 학교 교사들의 수준은 높지 않다. 그래서 디지털기기를 사용해서 학습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학생들이 교사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신뢰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교사들도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교역자를 통하지 않고 인공지능을 활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설교와 같이 성경 공부도 교사를 통해서 진행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설교와 성경 공부가 인공지능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교회 존재에 대한 커다란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지금처럼 세대 간 격차가 크고, 점점 사회와의 담을 높게 쌓기만 하는 교회의 현실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그나마 필자가 생각한 인공지능은 교회의 상황을 반영한 상상이다. 사회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은 교회와 성경을 정밀분석할 것이다. 오류를 발견하고 비평하고, 역사적 기원을 훑고 세밀한 철학적 사고를 분석해서 기독교를 가루로 만들어서 손 위에 올려 ‘후~’하고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 특이점 주의자들이 말하는 세상이 현실로 다가오면, 신을 믿는 인간은 정신병자 취급받을 수도 있다. 그들이 말하는 특이점의 도래는 2045년이다. 그리고 범용인공지능(AGI)의 도래는 2047년인데, 그 기간도 매년 더 줄고 있다. 이런 상황을 한국 교회는 그대로 지켜만 보고 있다.
코로나 19 시국에 집회를 하겠다는 당참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현실을 방종하는 것도 온전히 교회를 지키는 모습이 아니다. 교인 중 일부는 수구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껴서 교회를 떠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은 교회의 구태의연한 모습에 실망하면서 떠난다. 새로운 각성과 도전, 그리고 새 시대에 맞는 신앙의 지표를 제시하지 않으면 인공지능 시대에 교회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