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사랑. 그 공평함에 대해서 ”
“그대로 읽기” 26편 『개구리』하(上) 편 모옌(Guan Moye)(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를 대신해서 아이를 낳아준다. 대리모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 돈이 걸렸다. 남아를 낳아주면 여아보다 액수가 더 높다. 그리고 더 지급하면, 대리모와 같이 살 수도 있다.
대리모는 ‘계획생육’과 정반대의 행태이다. 대리모는 아이를 계속 낳는 것이고 후자는 낳지 못하게 막는 것이니까. 종족 보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대단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돈으로 만들어지는 자녀를 계획생육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친구! 조직이니, 기관이니 모두 스스로 옭아맨 밧줄이야.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네 정자와 하나의 난자가 결합해 새 생명이 만들어졌고, 얼마 안 있으면 세상에 나온다는 거지. 인생 최대의 즐거움은 바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이 탄생하는 거야. 『본문』 중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가 등장한다. 공산주의에서 절대적으로 배격한 자본주의 그것도 천민자본주의가 잉태된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모두 새장에 갇혀 있었잖아. 그것뿐인가? 목에도 밧줄이 걸려 있었지! 지금은 모든 것이 자유로워졌어.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도 돼. 불법만 아니면 되지. 『본문』 중
자유가 나온다. 자유를 누리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작가는 공산주의와 중국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명국가라고 자부하는, 적어도 과거와 비교할 때 진화했다고 확신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운명에 더 집착하고 목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게 정상이지요. 가난한 사람은 자포자기하고 살아가지만 부자는 마치 엄청난 가치의 청화자기를 떠받드는 것처럼 자신의 부귀를 떠받들고 살아가거든요. 『본문』 중
인간의 생명은 존중하다. 그래서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그 목숨은 하나이며, 소중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생명의 가치도 돈에 달렸다. “깨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은 진정 옛말이 됐다. 구르고 싶어도 구를 수 있는 밭조차 없다. 누구에게 빼앗겼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을까?
그게 바로 문명사회거든.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연극배우, 영화배우, 탤런트, 만담가야. 사람들 모두가 연극을 하고 있잖아. 사회가 결국 거대한 무대 아니겠어? 『본문』 중
세계 초강국이라는 미국의 현실을 보자. 자유와 민주주의의 전도자를 자처한 국가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하며, 인종 폭력으로 여전히 큰 사회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최근에는 ‘코로나 19’의 최대 감염국이자 최대 사망국이라는 타이틀도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잘 못 된 것일까?
너흰 매일 진화를 부르짖지만 내가 보기에 너희는 퇴화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아기를 낳을 때 산도로 자연분만을 하지도 않고 젖도 안 나오는 거고! 자기가 할 일을 소에게, 양한테 시키는데! 우유 먹고 자란 애는 소 비린내가 나고, 양젖 먹고 자란 애는 양 지린내가 나! 『본문』 중
과거에는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가치보다 앞서는 게 있다. 그게 ‘돈’ 일 수도 있고, ‘권력’ 일 수도 있다. 정치가 그렇고, 일상 속의 서열이 그렇다. 과거와 비교할 때 분명 풍부한 의식주를 누리고 살아가고, 장수(長壽)하지만 ‘행복’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떠올리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유산 앞에 가려진 참혹한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기 원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
역사는 결과를 중시할 뿐, 수단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마치 사람들이 중국의 만리장성,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위대한 건축물을 볼 때 건축 이면에 자리한 수많은 백골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요. 『본문』 중
가진 자들 혹은 특별한 계층만을 위한 역사의 결과물들을 보면서 “와!”하면서 탄성을 내뱉는 문명인들. 현대인은 지하실로 눈치 보며 들어가 술을 마시더라도 간판만큼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기를 바란다.
문명은 좋은 것만 보고 나쁜 것은 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문명이냐고 묻는다. 문명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잃었다.
연애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사랑’이 주제다. 작가는 직설적으로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사랑’이 사라진 시대, 그리고 ‘사랑’보다 사상이 위에 있었던 시대를 비판한다. 그리고 돈이 사랑보다 위에 있는 현재도 비판한다. 그러면서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인류의 가장 장엄한 감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사랑들은 하나같이 모두 평범하고 저속합니다. 『본문』 중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요하다고 선언한다. 생명은 평등하다. 인종, 계급, 성별, 나이 등을 따지지 않는다. 오직 한 사람에 하나씩 있다. 그러나 이 생명의 주인이 ‘나’가 아닐 수 있는 게 역사였다. 여전히 문명국이라고 자랑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대한민국도 마찬 가지 아닐까? 세력을 부풀리기 위해서 공작하고 위해하고. 이데올로기를 활용하고, 종교를 활용한다. 코로나라는 전염병 체제 하에서 단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을 꾀한다. 하기야 전염병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어서 그렇게 욕심 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권력도 돈도 죽으면 끝인 것을 '사랑'하며 살면 안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