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사라질 수도 있다
진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발전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기독교의 역사를 훑어보면, 공의회, 교리 논쟁, 전쟁 등을 통해 진보한 듯하지만, 오히려 중세 시대를 볼 때는 퇴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故 움베르토 에코라는 중세 전문가는『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를 통해 중세와 포스트모던과의 유사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단순히 중세를 암흑으로 볼 게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분명 기독교 자체만 놓고 본다면, 암울했던 시기이다.
초대 교회의 단순한 교리는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졌으며, 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이론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정은 속세 최고 권력자들이 관여했다는 부분에서 과연 하나님의 뜻이 반영된 것인가?라는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AD313년에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것도, 이후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삼위일체론’에 대한 아타나시우스파의 인정 등도 교회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해 황제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정작 이 모든 것에 영향을 끼쳤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죽기 전까지 세례를 받지 않았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당시 풍속을 반영해서 안식일을 현재 일요일로 대체했다. 물론, 일요일은 지금까지도 ‘주일(主日)’로 거룩하게(?) 지켜지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일요일을 ‘주일’로 선포하고 지키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는 전자가 더 정통성 있는 주장일 것이다.
어쨌든 기독교 역사는 물 흐르듯, 아무런 소용돌이 없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거센 파도와 폭풍우 같은 논쟁을 거쳐 형성됐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종교였기에 선혈이 낭자한 논쟁이 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기독교가 절대 권력이 되었을 때 논쟁은 종식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독교의 끊임없는 역동의 역사는 이번에는 기어이 종교혁명을 일으키고 만다.
1517년 10월 31일에 루터라는 수도승의 95개 조 반박문을 시작으로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다가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개신교는 확실하게 인정받게 된다. 가톨릭의 권력이 과거에 비교해서 약해졌고, 그만큼 타락했기에 정당성을 상실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기까지 수많은 종교전쟁(가톨릭과 개신교의 전쟁이니 기독교 자체 전쟁이라 할 수 있다)이 무고한 생명을 살육했고 전쟁을 마무리하고 나서도 개인의 종교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영주의 종교를 따랐을 뿐이다).
이런 전쟁을 거쳤기에 프로테스탄트교 자체는 ‘저항’이라는 의미를 태생적으로 품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 내에서의 논쟁과 분쟁은 당연하다. 그 자체를 막거나 좋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잘 못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의 의미와 함께 반동적인 태생적 특성이 있었으니, 바로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저항과 권력은 항상 양날의 검처럼 존재한다. 개신교가 저항이라는 본능이 있다면, 권력은 모든 인간과 조직의 본능이다. 결국,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계속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인물, 저항의 상징 루터도 결국에는 영주들의 편에 섰으며, 칼뱅도 위정자의 편에서 통치적인 교리로 기독교를 정리했다. 물론, 절대 권력 자면서 종교 권력자였던 교황의 권력과 비교해서는 파격적인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의 봉기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시각은 저항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즉, 그들도 어느 정도 권력을 획득하고 나서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려 했다.
개신교 자체가 새로운 권력층이 된 이후 교회는 분열되었고, 경쟁이 시작됐다. 세속 권력은 이 경쟁을 잘 이용해서 최종 권력을 획득해 나간다. 기독교는 세계의 보편적 종교에서(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뜻이 ‘보편적’이다) 이제 영주의 권력을 상징하는 경계선이 됐다. 국가 위에 존재했던 신을 숭배했던 종교가 이제는 철저히 세속 군주 아래 놓이게 된다. 그러다가 이제 국가와도 분리돼 철저히 세속화되었다.
세속화된 프로테스탄트교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권력자와 결탁하거나, 비위를 맞추면서 세력 유지를 도모했다. 20세기 2차 세계대전 즈음에 나치즘과 결탁했던 독일교회가 대표적이며, 한국 교회도 일제 억압기 동안 신사 참배를 했고, 해방 후에는 독재 정권의 안위를 위해 구국기도회를 개최했으니, 독일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세계 선교에 있어서 최고라 하는 미국도 자본주의 정신에 기독교 윤리가 적용돼 해석되었으니, 세속화된 것이다. 그리고 세속화된 기독교는 철저히 부자의 편에 섰다.
그래서일까? 과거 세계 선교 1, 2위의 영예를 얻었던 미국과 한국의 지니계수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높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한국에서 유교에서 추구하는 ‘입신양명(立身揚名)’ 이 ‘고지론’으로 변했고, 미국은 ‘부’를 이루는 것이 청교도적인 정신의 실현이라고 하면서, 부자가 되는 것을 은혜이자, 청교도로서의 삶을 제대로 사는 거로 인정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조차 종교적으로 원천봉쇄해버렸다(실제로 자선 행위를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앙적 논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적 논리는 노예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이 됐고, 현재까지도 인종차별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는 데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우리가‘천민자본주의’라고 할 때 미국식 자본주의를 말하는데,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에서 그와 반대되는 이미지가 형성됐는지 관련해서 따져보면, 미국 기독교 정신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독교가 이렇게 돼 버린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십자가 해석도 이유 중 하나다. 십자가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지만, 속죄양 의미가 있다. 이 속죄양 의미를 쉽게 해석하면, 누군가의 희생으로 다른 공동체 구성원이 '잘'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인류가 구원받았다는 의미의 적용이다. 이러한 십자가는 결국 희생양을 선택하게 만들고, 경제적 논리로 변형되면 누군가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이 풍요롭게 살 수 있으니 희생은 당연하다는 논리가 된다. 이 논리대로라면, 적은 수의 희생이 필요한데, 현실은 99% 이상이 그런 희생자가 되고 있으니, 맞는 이론은 아닌 듯하다.
2000년대 초반에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에 전작이 잘 팔려서였는지 『잘 되는 나』를 출간했고, 이 책은 전작의 신비주의를 넘어서 어떤 분야에서든 1등이 되지 않으면,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언어도단과 같은 오류를 저질렀다.
오스틴 목사의 기독론은 성공을 위해 예수의 십자가를 철저하게 자본주의식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부분은 미국의 보수적 신앙관에 빗대어 볼 때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울러 한국 교회의 성장론과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 과거 국민일보에 서울대 법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을 크게 보도한 적 있는데, 좋은 대학에 입학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근거는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논리대로 따지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은혜받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기복론을 바탕으로 한 신비론은 코로나 시대에 많이 무너졌다. 아무리 기도 해도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고, 아무도 고치지 못했다. 오히려 목사와 그의 가족까지 전염됐다.
신약에서 예수는 가난한 자, 여인, 어린이, 병든 자들의 친구였지, 성공한 사람들의 친구는 아니었는데, 도대체 성공 중심적인 인생을 은혜로 전파하는 교회의 교리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기독교는 권력의 최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타의로 겸손히 몸을 낮추게 된다. 그리고 군주들의 휘하에서 잘 적응한다. 그래도 국가는 교회가 필요했고, - 통치하기 위해서는 사상적인 뒷받침이 필요해서 - 교회는 국가를 위해 충분히,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주었다. 이러한 교회의 역할은 혁명이 발생하면, 성난 군중들이 왜 교회를 파괴하는지에 대한 원인이 된다. 발전적 보수주의자였던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 성찰』을 통해 혁명의 부당성과 한계를 지적하면서 교회를 침탈한 민중들에 대해 이성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버크의 비판은 부분적으로 타당하다. 프랑스는 명확한 미래에 대한 설계 없이 권력층과 교회를 붕괴시켰다. 그러한 무주공산 가운데 공포정치가 들어섰고, 결말은 나폴레옹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한 것이었다.
교회가 중세 시대 절대 권력의 일선에서 밀려난 건 사실이지만, 핵심 권력층이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 사실만으로도 권력의 지각변동이 발생하면 민중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교회는 민중의 편에 서지 않고 권력의 편에 서 있었다.
서구 혁명 시대는 교회 권력을 축소(소멸) 시켰고, 마르크스주의 등장 이후에는 더 혹독한 돌팔매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에릭 홉스 봄의 『혁명의 시대』는 이러한 혁명의 모습을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으로 잘 분석하고 있다. 정치권력에서 밀려나 기독교는 이제 경제 분야로 이전한다.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권력이 ‘돈’ 임을 깨달았을까?
특히, 미국에서 기독교는 정교분리의 원칙으로 인해 직접적인 권력을 장악하지는 못했지만(실제로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제 윤리를 제공함으로써 록펠러와 같은 불한당 자본주의자들을 기독교의 영웅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었다.
기독교는 수많은 분쟁과 전쟁을 겪으면서 생존했다. 그래서 그 생존력이 여타 기관과 비교했을 때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아울러 종교개혁 시대까지는 전쟁과 분쟁은 진보의 자극제였다. 왜냐하면, 많은 논쟁을 통해 교리가 발전했고, 전쟁 등을 통해 신앙의 보편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명 시대에 권력의 일선에서 물러선 후에는 진보하기보다는 권력에 기생하기 위한 간책(奸策)으로 버티고 있다. 아직도 수많은 교인과 자본이 있다. 엘리트 계층의 수많은 자원을 확보한 기독교의 영향력은 여타 종교를 크게 압도한다. 진보하지 못한 가톨릭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프로테스탄트를 낳았고, 유럽의 기독교를 본다면, 권력과 야합하다가 권력과 함께 몰락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발전이 없는 모든 것은 결국 소멸한다. 생물체, 기관, 기업, 국가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고,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기독교는 성공과 성장을 강조했다. 꼭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는 집단처럼 성공을 염원했다. 일단, 성공하면 다 나눠 줄 것처럼 성도를 속였다. 목사는 외제 차를 타고 다니고, 비자금을 조성하지만, 대부분 성도의 삶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 받음을 알면서도 무시했다. 최근에 여러 죄목으로 실형을 구형받은 전 00 목사도 일반인은 생각하지 못할 보석금을 낸 적이 있다.
왜냐하면, 부를 쟁취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 자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교회에서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교인들의 기도 내용은 회개, 혹은 현재의 비참함으로부터의 구원됨을 간구한다. 회개는 현실 속에서 은혜받은 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을 회개하는 것이고, 현재의 비참함은 취업도, 결혼도, 자녀도 포기하고 그저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외롭게 살아야 하는 처지에 대한 아픔이다.
청년들은 교회를 배척하고 있고, 교회와 정서가 맞지 않는 교인들은 개종한다. 과거와 같은 유혈 혁명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진보하지 않는 교회의 문은 강제든 자발적이든, 닫게 될 것이다. 경제 수준이 일정 수준 도달한 국가의 국민 중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이 부분은 교회가 경제적 성공을 은혜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역설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파쇼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진보하지 못하는 비민주주의적인 교회는 당연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