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하여
4차 산업혁명은 생산력의 향상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과 동시에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목표로 한다. 공유 경제에서 말하는 잉여 역량을 활용하는 이유도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물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자체가 에너지 효율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오로지 성장만을 향하면서 주어진 자원을 무자비하게 소모하다가 그 한계점에 이르렀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연이 그 정화 능력을 넘어서자 지구의 환경은 급속도로 오염됐다. 기후 온난화가 그 대표적인 폐해라고 할 것이다. 뒤늦게 이를 수습하기 위해 세계적인 노력을 하고, 다양한 협정을 맺었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최근 세계적인 고립주의는 이러한 세계적인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다시 자원의 효율성과 관련해서 살펴보자. 『제6의 물결』에서는 자원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다양한 실례를 보여준다. ‘에코 네이티브’라는 개념까지 주장하면서, “미래 세대는 태어나자마자 수돗물을 잠그고, 자원을 아껴 쓰는 것을 접하면서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자원의 확보가 주된 관심이 아니라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인간만을 위했던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이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생각으로 그 시선을 옮기고 확장시켜야 한다. 코로나 19도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자원과 에너지 낭비는 지구의 수명을 줄게 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인류 문명에 큰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제6의 물결』에서는 쓰레기조차도 에너지원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보여주는데, 가까운 미래에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대신 ‘버린 쓰레기, 다시 쓰자!’라는 표어로 바뀔지도 모른다.
이미, 공유경제를 통해 필수품을 나눠 쓰고, 중고품도 기꺼이 재구매해서 사용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러한 공유경제 시스템이 더 발전할 것이고, 저공해, 저 에너지 상품들로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기간에 하늘이 참 맑았다. 중국에서 매년 몰려오던 황사조차 없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런 하늘을 유지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대부분 사람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대부분 사람에게는 웰빙의 삶을,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는 생존을 위한 포용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정치적, 경제적)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민주주의를 더 심화해야 한다. 그래서 심의민주주의와 같은 토론으로 대부분 사람의 심신의 건강과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웰빙, 그리고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 사회를 위한 정치적 합의와 경제적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다음은 생존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보존을 포함한 말이다. 즉, 인간의 생존과 더불어 자연보호를 의미한다. 1980년대 제러미 리프킨은 본인의 저서 『엔트로피』의 끝에 ‘청지기’ 적 자세를 촉구한다. 이미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이 심각해졌던 시점이어서 저자는 태양광 같은 대체 에너지 자원을 말하면서 인류의 청지기 자세를 요청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과 더불어 환경 보전이 융합된 혁명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영은 고사하고 생존조차도 힘들 것이다. 코로나 19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즉,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에 대한 불안함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 역시 일부 국가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노력과 합의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세계화는 중요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예측된 혁명이다. 그래서 대비해야 한다. 모든 산업혁명은 진통을 겪었다. 이러한 역사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서, 새로운 산업혁명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조금 느리게 보일지라도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하는 것이다. 몰라서 불안해하고, 디스토피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논의하고 이해해서, 함께 웰빙-포용 사회를 기대하는 시공간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빅토르 위고는 그의 대작 레미제라블을 통해 진보라는 말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진보는 인간의 방식이다. 인류의 일반적인 생명을 진보라고 부르고, 인류의 집단적인 걸음걸이를 진보라고 부른다. (중략) 진보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아까 그것을 말했다. 국민들의 영원한 생명” 『레미제라블』 중
필자는 새로운 진보의 방향은 ‘웰빙-포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보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서로 포용하고, 행복하게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진보가 우리 국민의 ‘생명’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