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그대로 읽기" (30)

소크라테스와 디오게네스

by 조작가Join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상(上) 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Jorge Mario Pedro Vargas Llosa)(201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소크라테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1도 없는 디오게네스의 자유 함”


남미 문학을 접하면


남미 문학을 처음 접한 것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erquez)의 『백 년의 고독』이었다. 굉장히 낯설고, 읽어도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생소했다. 그런데도 그 느낌은 끈적끈적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부터 복잡했고, 내용은 생소해서 쉽게 읽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영미, 유럽 등을 벗어난 작품이어서였을까?

이후 마르케스의 여러 작품을 읽었고, 노벨 문학상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페루 군대와 관련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


아마존 수비대원들의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페루 군부가 조직했던 ‘특별봉사대’ 소설의 이야기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작가의 말』 중


사실적인 내용만으로도 독자가 빨려 들어갈 만한데, 거기에 위트 넘치는 표현,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사이비 종교 -‘방주’- 를 추종하는 자들과 군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주인공을 계속 병치하는 서술에 필자는 몇 시간 넋을 잃고 끈적끈적한 여름의 독서에 빠질 수 있었다.


배설로서의 성욕과 광신(狂信)


인간의 대표적인 욕구 세 가지는 수면욕, 식욕, 성욕이다. 이 중에서 수면욕과 식욕은 큰 문제의 여지가 없다. 많이 잔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은 없다. 다만, 본인의 게으름으로 인생이 어려워질 수는 있다. 식욕도 본인의 능력만 되면, 충분히 입맛 당기는 대로 먹고살 수 있다. 단, ‘지방이’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건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성욕은 다르다. 욕심을 부리면, 인생이 피폐해지는 건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아울러 최근 ‘성(性)’은 권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투 운동”의 파고가 높아진 것이다.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 한 분이 대학에 들어간 필자에게 조언을 해주셨다.


“남자는 세 가지 뿌리를 조심해야 해! 우선, 혀뿌리. 말 한 번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단다. 다음은 손 뿌리. 남의 것을 탐내면 안 된다. 감옥 가기 딱 좋다.”


여기까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게 있어. 바로 좆 뿌리. 남자는 이거 잘못 놀리면, 패가망신한다.”


갓 성인이 된 제자에게 유익한 조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이었을까? 필자는 이 세 가지를 조심하면서 살고 있다.


소설은 세 가지 중 성욕을 다룬다. 그러면서 종교를 다룬다. 종교와 성욕, 둘 다 배설로 바라본 것일까? 작가가 말한 종교에 대한 인간의 욕망 또한 성욕과 다르지 않음을 즉, 패가망신할 수 있는 첩경임을 주장하려 한 것은 아닐까? 사이비 종교에 푹 빠져 헤엄치는 많은 광신도를 볼 때 크게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인 것은 맞는 듯하다.

군대라는 종교와 사이비라는 종교


군 조직은 주인공에게 ‘특별봉사대’를 조직할 것을 명령한다.


“간단히 말하면, 금욕은 수천 명의 가련한 인간들을 부패시킨다네.” 빅토리아 장군이 말한다.

“그리고 사기를 저하 시키고, 신경쇠약에 냉혈한으로 만들지."

"판토하, 그 굶주린 인간들에게 먹을 것을 줘야 하네.” 『본문』 중


그는 우수한 군인이었고, 그 자질을 인정받았기에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수행할 자격을 얻은 것이다. 그는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군인이었고, 그동안 본인에게 맡겨진 명령은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에게 군대는 신과 같은 조직이었고, 그 명령은 신의 말씀과 다를 바 없었다.


본인은 상관들에게 위임받은 임무를 가장 완벽하게 완수하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심지어 본인의 육체적 건강에 피해를 입고 가정의 평화가 깨질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씀.

향후 중간 지휘관인 부사관들도 수국초특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것으로, 본 경험이 하사 및 일반 사병들의 생리적, 육체적 안정에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점에 의거하여 본인 역시 이런 요청이 받아들여지기를 제청하는 바임. 하느님의 은총이 깃들길. 『본문』 중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판토하 대위는 본인의 육체와 가정의 화목까지도 포기한다. 그를 움직이는 건 군대의 명령이었다. 물론, 그 스스로 명령을 최대한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설 초반부에 의아함을 지녔고, 본인도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임무였지만 그는 묵묵히 명령을 열정적으로 수행한다.

한편, 당시 유행했던 사이비 종교가 지역사회의 주민들을 현혹한다. 십자가에 동물을 박아서 죽이기도 하다가, 어느 날 아이를 제물로 삼아 십자가형을 벌인다. 대부분 사람이 이런 잔혹한 행위에 대해 분노하고 정신 나간 짓이라 비판했지만, 이 종교를 추종하는 사람한테 이런 행위는 큰 일탈 행위가 아니었다. 코로나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굳이 교회에 나오라고 부추기는 행위는 정상적인 종교 모습은 아니다.


군대가 군인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민간인 – 대체로 창녀들 – 을 ‘특별봉사대’로 조직하는 것과 종교적 행위로 살아 있는 생물을 십자가에 다는 일 중 뭐가 더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자신의 신분을 떳떳이 밝히지도 못하면서도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철저한 분석과 통계를 바탕으로 한 자료를 상부에 보고하면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그가 생각했을 때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적어도 그자는 그걸 엉망으로, 그러니까 아주 불완전하게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바보는 특별봉사대를 육군에서 가장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본문』 중


마찬가지로 사이비 종교 집단도 나름대로 세력을 확장하며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비이성적인 행태를 자행해도 광신자들은 스스로 합리화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군대의 명령을 따르는 군인, 그리고 교주의 말을 그대로 추종하는 신도. 그들은 왜 정상적인 상황 아닌데도 추종하는 것일까? 인간의 일탈 본능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성공이 곧 패망의 지름길


성공이 실패라는 말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있어도 그 반대말은 없다. 그러나 작품은 ‘성공이 실패’라는 공식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임무 성공은 곧 문제를 일으킨다.


“잘 들었나? 병사들과 시민이 싸움을 했단 말이네. 납치범들은 부대에서 두 명의 여자를 데리고 나가는 데 성공했네. 싸움은 마을 한가운데서 벌어졌다네. 그리고 네 명이 부상을 당했어. 어느 순간에라도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 있어, 티그레. 그놈의 빌어먹을 특별봉사대 때문에 말이야.” 『본문』 중


성욕 해소를 위해 군인과 민간인이 다툰다. 민간인을 겁탈한 군인도 문제였지만, 이제 ‘특별봉사대’를 두고 군인과 민간인이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원래 군대는 민간인을 지키는 게 임무인데, 이들이 지키는 중요한 대상은 오로지 창녀들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이비 종교도 마찬가지다. 세력이 커질수록 기존 종교 세력의 견제를 받아야 했고, 정상적이지 못한 행위로 공권력의 투입되기까지 이르렀다. 부분적으로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아무리 말려도 신의 이름을 빙자해서 모이는 부류들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왜 군대는 무모한 명령을 내렸고,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를 믿어야만 했을까? 그들은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성욕의 해소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별봉사대가 존재한 이후, 우리의 모든 병사와 하사관들은 보다 더 훌륭하게 복무하고 있으며, 보다 효율적이며 군기가 잡혀 있고, 밀림에서의 생활을 보다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본문』 중


그러나 합법적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 불법을 합법화했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성욕이라는 은밀한 밤의 욕망을 당당하게 대낮에 가능하게 해 주었으니, 이제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시대 디오게네스가 광장에서 수음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단, 전자는 철저히 욕망에 짓눌렸고, 후자는 이성적 억압을 극복했다는 점이 다르다.


낮을 지배하는 소크라테스, 그러나 밤은 디오게네스의 것이다


이데아의 존재를 처음으로 생각했던 소크라테스(플라톤). 그와 그의 제자들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이성, 정의, 도덕 등을 개발했다. 이들의 철학은 인간을 낮으로 인도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어둠, 밤 등은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들에게 “이래라 저래 라 하지 마!”라고 선언한 철학자가 있으니, 바로 디오게네스이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봤을 때 낮의 사람이 아니었다. 낮에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디오게네스는 낮의 인물은 아니다. 단, 그의 철학은 어둠과 밤을 상징하는 욕망과 연결된다. 소크라테스 이후 이런 욕망을 터부시 하고, 자제하고 눌러야 할 것으로 가르쳤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밤 문화가 낮의 문화를 넘어서고 있다.


‘특별봉사대’ 사용 욕구는 처음에는 사병한테만 적용됐지만, 곧 부사관, 하위 장교를 넘어 고급 장교들에게까지도 요청받게 됐다. 쉽게 말해서 봇물 터진 것이다.


“하지만 불장난을 하면 불에 데는 법이니까 그리 놀랍지는 않아 사람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자연히 더욱더 많이 원하는 것이네. 우리는 시작부터 실수를 범했어. 이제 이 사태를 멈추게 할 수는 없네 갈수록 요청이 쇄도할 걸세.” 『본문』 중


사이비 종교도 처음에는 그 존재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작은 집단이다. 그러나 성장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들러붙게 된다. 많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신천지’를 보라! 그리고 세계적인 이단 ‘통일교’를 보라! 인간을 신격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신격화된 인간이 신이 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그런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특별봉사대’가 남성의 육체적 배설 욕구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면, 후자는 인간의 정신적 배설 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욕구를 해결하는 방법이 사회에 범람하고 도를 넘어서면 여전히 소크라테스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디오게네스가 질 수밖에 없다. 더 정확하게는 디오게네스를 낮으로 끌고 오는 이유가 ‘해방’이 아니고서는 참 디오게네스를 데리고 올 수 없다.


“어쨌거나 아마존에 존재했던 두 가지 악몽은 영원히 끝나 버렸어.” 스카비노 장군은 바지 단추를 푼다. “판토하는 침묵을 지켰고, 예언자는 죽었고, 특별봉사대원들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방주’는 해체되었지. 이제 이곳은 다시 과거의 평안했던 시절처럼 조용한 땅이 될 거야.” 『본문』 중


가장 정의롭고 선해야 할 거대한 조직에서 벌이는 위법, 그리고 위법을 합리화하는 추종자들. 그들은 과연 자유를 원해서 배설 욕을 드러냈던 것일까? 그들은 자유가 아니라, 억압된 자로서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욕구를 해소하길 바랐다. 군인들은 명령, 광신자들은 교주를 방패 삼았다. 이런 숨겨진 욕망, 억제된 상황에서의 배설의 명분 등은 인간을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배설조차도 명령을 따른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디오게네스의 자유 함이 1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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