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23)
목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막힌다. 퇴근 시간이니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는 게 당연한데, 장 변호사는 자신의 마음의 답답한 만큼이나 꽉 막혔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목적지에는 도착할 것이고, 길은 뚫릴 거니…….’
“씨팔! 뭐야 저 병신은?”
갑자기 끼어드는 자동차에 놓았던 정신을 다시 가져온다. 제각기 바쁘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도, 차들이 놓여있는 도로의 한숨 쉴 공간도 없다.
누구나 운전하면 한 번씩 겪는 일이다. 특히, 혼잡한 도심을 지날 때는 원치 않는 양보도 해야 하고 염치없이 끼어드는 운전자도 넣어줘야 한다. 그들도 처음에는 민망함과 고마움으로 깜빡이를 켜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오랜 기간 운전하다 보니, 이제 그런 겉치레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얼굴도 모르고 만나지도 못할 사람 아닌가? 인간을 익명성으로만 관찰하다 보면, 결국 본성은‘성악(性惡)’에 가깝게 느낄 수밖에 없다.
방금 전 장 변호사도 끼어들기를 했고, 바로 뒤에 붙은 운전자가 크랙션을 크게 울리면서 불만을 표시했던 게 기억났다.
‘하기야 나도 끼어들었지. 그래도 그렇지 그 새끼는 반응이 너무 그랬어.’
뻥 뚫린 도심을 달릴 기회가 평생 얼마나 있을까? 특히, 퇴근 시간에 목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집회가 자주 열리는 도심을 지나쳐야 하기에 그 더딤이 바닷 거북이 육지에 올라왔을 때보다 더 느렸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승리한 거북이를 빼고 현대인이 좋아하는 거북이는 찾아 기 힘들다. 그나마 장 변호사는 목사를 빨리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헛웃음을 지어본다.
“띠리링~”
자동차 블루투스에 연결된 벨이 울린다. 슬쩍 눈을 돌려 쳐다보니 목사다.
“변변치 못한 노인네 같으니, 그새를 못 참고 전화질이네.”
욕설을 입에 가득 물고, 얼굴은 불만으로 색칠했지만, 목소리만큼은 차분하게 정돈하고 스위치를 누른다.
“네. 목사님!”
“장 변 오고 계신가?”
“네. 가고 있습니다. 차가 워낙 밀려서요.”
“그럴 법도 하지. 고생이 많구먼. 그래도 모두 다 대의를 위한 길 아닌가?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위한 길이기도 하고. 허허”
“네. 몸은 좀 어떠세요?”
“그러잖아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야. 그래서 장 변이 와도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네.”
“네. 건강 조심하셔야죠. 아무튼, 잠시 후 도착하니 그때 말씀 나누시죠.”
“그래. 그렇게 하지.”
결국,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목사의 말투로 봤을 때 확진이 확실하다. 혹시나 아니길 바랐던 기대가 공든 탑 무너지듯이 무너져 버린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던데. 이놈의 탑은 이리도 잘 무너지는가?’
장 변호사는 그동안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쓴 돈과 시간을 계산한다. 성공만 하면, 수십 배로 돌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합류한 것인데,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지금은 일 날의 희망도 거의 포기한 상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아시스인 줄 알고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해 뛰어갔는데, 신기루였던 것이다.
재건축 준비로 한 창인 교회 근처는 어수선했다. 그리고 밤이 되니 인적이 드물었다. 괜히 걷다가 뒤를 쳐다보게 될 만큼 으슥한 느낌이 든다. 혹, 누군가라도 보이면 본능적으로 걸음을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 장 변호사는 차에서 내려 교회 후문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보이는 인터폰을 들자, 잠시 후 음성이 들린다.
“변호사님이시죠?”
“네.”
“들어오세요.”
“딸각!”
창백한 차가운 문의 굳은 잠금이 열리면서 틈이 억지로 벌어진다.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간다. 수없이 많이 오른 계단이지만, 오늘따라 더 어둡고, 좁게 느껴진다. 층계참에 오르자, 안내인이 꼿꼿하게 서 있다. 그리고 장 변호사를 보자마자,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그런 다음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한다. 정중하지만, 차갑다. 왠지 인조인간이 안내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차라리 차가운 게 낫다. 뭐 따뜻한 상황은 아니니까.’
인조인간 같은 사람이 목사 방문을 두드린다. 기분 탓인지 울리는 노크 소리도 실제 소리가 아니라, 환청처럼 느껴진다. 장 변호사는 본인이 있는 시공간이 아닌 곳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똑똑!”
“목사님! 장 변호사님 오셨습니다.”
“그래, 들어오시라 해!”
거칠고 탁한 목사의 음성이 들린다. 평소에도 둔탁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쇳가루라도 갈아 마신 듯 더 거칠다. 확실히 병에 걸린 듯한 목소리다.
“안녕하세요?”
“보시다시피.”
그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목사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어. 그러니 생각한 걸 말씀하시게나.”
“네?”
“맞아! 확진이야. 곧 이송 준비를 해야 해. 그러면 기자들이 몰려들겠지.”
“아!”
잠시 시간이 멈춘다. 몇 년 동안 목사와 지냈던 시간을 떠올려 본다. 인품이 좋거나, 행동거지가 올바른 사람은 아니었어도 사람을 홀리는 재주는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뭘 믿었는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병에는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 마스크를 쓰고 있고,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자신을 부른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당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말인데…….”
잠시 말을 끊는다. 보이지 않는 목사의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가 번지고 있음을 장 변호사도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자주 본 표정이었기에 마스크로 가려 있어도 왼쪽 입꼬리가 치켜 올라간 능글맞은 미소를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네. 말씀하세요.”
“일단, 북한 놈들이 바이러스를 뿌렸다고 하자고.”
“네? 무슨…….”
속으로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개소리”라는 말이 바로 입술로 터져 나오는 걸 억지로 삼켰다.
“왜? 안 될 거 같아?”
“그게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아니지, 오히려 우리 편들은 더 좋아할 거야. 싫은 데는 이유가 없어. 특히 빨갱이들 싫어하는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은 다 빨갱이 짓이라고 생각하거든.”
목사는 오랜 목회 생활을 하면서 직업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추종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오직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고, 편리한 대로 생각하고 싶기 때문임을 목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장 변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야지. 뭐 할 게 있겠나? 내가 편지 하나 써 놨으니, 대독하고 이놈의 정권이 실수한 내용을 대충 훑으라고.”
“네. 알겠습니다.”
장 변호사는 목사의 어두운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물 쏟아지는 모습을 본인도 옆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빠져나가기도 늦었다. 이미 소모된 에너지는 다시 돌이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사람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이제 끝난 거 같구나!’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만일에 하나 얻게 될 수 있는 기대마저도 날리는 셈이었다.
중독 중에 제일 무서운 중독이 도박 중독이라고 한다.
옛적에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처음부터 도박에 빠진 사람은 없었겠으나, 어쨌든 한 번 빠지게 되니 재산을 탕진하고 처자식을 팔아먹고, 이제는 자신의 손목까지 걸었단다. 당연히 제정신이 아닌 도박꾼은 두 손까지 잘렸고, 주변 사람들은 이제는 도박을 하지 않겠거니 생각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도박꾼 방에서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두 발로 화투장을 잡고 있더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도박꾼은 두 발목마저 잘려 이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화투를 잡을 수 있는 입이 있었다. 결국, 그는 화투를 볼 수 있는 두 눈을 잃고 나서 도박을 끊을 수 있었다.
‘빠져나갈 수 없다. 여기서 빠지면 모두 끝이다. 어차피 인생은 도박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