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대(4)
“후보님 정 총재는 지지를 철회했습니다. 이제 다른 방법이 있으신지요?”
“음. 어쩔 수 없지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잖나? 혼자서 갈 때도 있지. 그리고 이제 정치를 해야 할 때 일세.”
“네?”
이튿날 정 총재는 후보 단일화를 철회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업가 기질이 넘쳤던 그에게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같이 하기에는 너무 생각의 차이가 심했습니다. 앞으로 선전을 기대합니다.”
간략한 발표와 함께 여러 질문이 있었지만,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당 후보 역시 기자회견을 열어서 심정을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덩치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가리듯이 정 총재의 기자회견 자체는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자신의 회견이 조금이라도 부각되길 간절히 바랐던 정 총재한테는 아쉬움이 남는 일이었지만, 반대로 여당 후보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하나가 죽으면, 하나가 올라가는 게 세상의 이치이니 말이다.
“참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담대한 모습을 보이려 해도 위기는 위기였다. 그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긴장이 땀방울처럼 가득 맺혔고, 기자 회견장이 아닌 TV로 지켜보는 사람도 안쓰러움을 느낄만한 표정이었다. 지지자들은 안타까움의 탄식을 길게 내뱉었지만, 반대자들은 ‘쫄보’라고 생각하면서 이번 선거는 야당의 승리라고 확신하면서 승리의 쾌재를 부르짖었다. 정해지지 않은 승리의 기쁨을 현재에 나누는 사람들, 이들은 후에 자신들이 그렇게 지지한 후보가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현재를 사는 동물이지 한 치도 앞을 내다볼 줄 모른다.
“축하드립니다. 후보님”
“무슨, 허허.”
평소에는 단단한 콘크리트 같았던 야당 후보의 얼굴이 오랜만에 환하게 핀다. 그 역시도 승리가 멀지 않았음을 진심으로 믿었다.
‘이제야, 내 세상이 오는구나!’
단합이 깨지자마자 야당 후보 선거 본부에 축하 전화가 밀려왔다. 그러지 않아도 여당 후보의 열세를 점친 상태에서 단합마저 깨졌으니, 선거 결과는 투표를 하나 마나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골리앗과 다윗이 대결하는 다윗의 물맷돌을 잃은 격이라 할만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당연한 일이었지. 무슨 단합이 되겠나?”
“맞습니다. 이제 후보님께서 청와대에 편히 들어가시는 날만 기다리시면 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 사람, 너무 앞서 나가는구먼.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여당 후보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인권 변호사 시절을 거치다가 정치를 시작했고, 여당에 합당하는 기존 당에 불만을 품고 당을 옮겼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새로운 당에서 비주류의 서러움을 견디고, 총선 때는 항상 당선이 어려운 지역구에 출마해서 아무런 실적 없이 정치적 명분만 꾸준히 쌓고 있었다. 이런 그의 정성을 옳게 여긴 지지자들이 생겼고, 비주류에서도 인물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그를 대선 후보로 만들어 주었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참았던 후보였기에 지금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5년 전에 사용했던 카드를 다시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야당 후보는 지난 대선 때도 아들의 병역 문제를 명확하게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국군을 통수해야 하는 대통령 아들의 병역기피가 확실하다면, 60만 국군장병에게 어떻게 당당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지지율은 조금 하락 세였지만, 크게 멀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선거 2주 전이 되자 공개적인 여론 결과는 공표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각 선거 본부가 여론 조사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각자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시점이어서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져 양측 모두 승리를 맹신하고 있었다.
“어허, 저 후보 또 병역 카드를 꺼내 들었네!”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아들의 병역기피는 좀처럼 해소할 수 없었다. 지난 선거에 낙선한 후 흥분해서 아내한테 불만을 표출했다가 오히려 좋지 않은 소리만 들었다.
“그때는 누구나 그랬어요! 당신이 힘써서 빼내지 않았으면, 누가 우리 애들 뺐겠어요? 그런데 인제야 저한테 그 책임을 지라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스산하게 온몸을 감싼다. 5년 전에도 느꼈던 느낌인데, 또 야당 후보의 정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좋지 않다. 음.’
이번 선거는 자신의 표를 잠식한 제3 후보가 없음에도 압도적으로 여당 후보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5년 전부터 차기 대통령 1순위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 없는데도 여당 후보와 경합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병역 문제가 또 등장하니 그동안 없었던 불안감이 파고처럼 스며든 것이다.
병역 카드는 똑같은 카드라고 생각해서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카드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리고 지난 선거 때 경험한 유권자에나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뿐이다. 대한민국 병역 기간은 2년이 채 안 된다. 대부분 20대 초중반임을 고려할 때, 그들은 대체로 처음 투표하는 유권자이다. 5년 전에 군 복무를 수행했던 장병들의 분노가 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듯이 이제 새로운 장병들의 분노가 여당으로 표 몰기를 부추기고 있었다.
“뭐, 아들이 군대도 안 다녀왔다고?”
“그 아들이 신의 아들이구먼.”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되지.”
군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장병들은 야당 후보 아들의 군면제 사실을 듣고, 자신들의 처지를 더 우울하게 여겼다.
“우리 아들은 전방에서 개고생하고 있는데, 대통령 될 사람의 자식은 군대를 면제받았다고?”
“그러게요, 우리 아이들 생각하면 매일 밤이 눈물이에요.”
삼삼오오 모인 군대에 자녀를 보낸 여성들은 영 기분이 나쁜 게 아니다.
“후보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또?”
“예. 지지율이 박빙인데, 군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영남권은 우리에게 힘을 실어 줄 거 아닌가?”
“그렇긴 한데, 중부에서 어떤 분위기일지 모르겠습니다.”
“음.”
치열한 선거 공방전을 거쳐 결국 새로운 대통령은 여당 후보로 결정됐다. 5년 동안 잠재적 대통령으로 지지를 받던 야당 후보는 또다시 패배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것도 이번에는 지난 선거보다 더 적은 표 차이로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단순히 군 장병 표 차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한시도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부모들을 생각하면 병역기피 카드는 박빙이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역전 카운트 펀치였다.
대통령 당선 문턱 앞에서 야당 후보는 아들들의 병역기피로 다시, 한 번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