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교육, 움직이는 학습

3류 부모가 만드는 우리 미래(아이)(25)

by 조작가Join

멈춰있는 교육(Education)


개인적으로는 교육과 학습을 구분합니다. 교육은 참여자가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개념으로, 쉽게 생각해서 학교 교실 수업을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반면에 학습은 참여자가 능동적으로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관심 분야에 몰입하는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교육학에서 의미하는 교육은 조금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동양적인 의미는 ‘맹자(孟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 교육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오는 곳은 맹자(孟子)의 진심장(盡心) 상편(上篇)으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有三樂)’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 군자의 즐거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맹자는, ‘온 세상의 뛰어난 인재를 모아놓고 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군자가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큰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답변했습니다.

조금 더 낱말을 풀어 보겠습니다. ‘교육(敎育)’이란 단어는 ‘가르칠 교(敎)’와 ‘기를 육(育)’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교’는 ‘윗사람이 베풀고 아랫사람은 본받는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부모나 어른이 자녀나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육’은 ‘자녀를 길러 착하게 만든다’, 혹은 ‘자녀를 착하게 살도록 기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교육이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자녀나 아이를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육성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유교 문화권의 특성상 수직적인 분위기가 드러납니다. 어른이 아이를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다음은 서양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서양에서 교육을 뜻하는 대표적 단어로는, 영어의 pedagogy와 education, 불어의 léducation 그리고 독일어의 Erziehung이 있습니다. 그중 pedagogy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aidagogos인데, 이 말은 어린이를 의미하는 Paidos와 이끈다는 의미의 agogos가 결합된 합성어로서 ‘어린이를 이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영어의 education과 불어의 L’éducation은 그것의 동사인 educate가 라틴어의 educare에서 유래돼 educare는 ‘밖으로’라는 의미의 e와 ‘이끌어내다’는 의미의 ducare가 결합돼 ‘밖으로 이끌어 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독일어의 Erziehung은 동사 erziehen을 명사화한 것으로 ‘밖으로’라는 뜻을 나타내는 e와 ‘이끌어낸다’는 의미의 ziehen이 결합된 것입니다.


서양의 교육의 의미는 결국 아이의 내면과 잠재능력을 이끌어 주려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서양 교육의 개념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동양은 아무래도 장유유서 등이 강조된 위계질서에 적합한 외양적인 부분을 강조한다면, 서양은 아동 능력의 발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최근 국내에 등장하는 교육 서적은 거의 서양의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자왈, 맹자왈’하기보다는 과학적으로 접근한 서양 교육학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둘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사는 세상은 동양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다른 동양, 서양과 교류가 활발한 동양이라는 차원에서 둘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동서양 교육의 공통점도 있는데, 결국 누군가 – 성인 – 의 일방적인 가르침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죠.


물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기에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육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로 과거의 유산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변하는 게 더 많습니다. 특히, 우리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더 빨리 변합니다. ‘도대체 보편적인 게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현재와 같은 교육제도는 적절한 교육 방법이 아닙니다.


둘째, 교육은 (뒤처진)표준화입니다. 현대는 누가 뭐래도 개성시대입니다. 과거 연예인들의 인기 기준은 기본적으로 ‘선남선녀’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육은 표준화를 지향합니다. 즉, 평균을 중심으로 상하로 나눕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위권은 국가나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 부합하는 인간형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준은 세상의 변화 속도가 지금보다 느릴 때나 가능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표준은 2차 산업혁명 시대, 3차 산업혁명 시대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새로운 표준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셋째, 교육 자체가 변화에 민감하기 어려운 거대한 공룡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학교는 쉽게 변하지 못합니다. 저는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부모 운영위원으로 등록했습니다. 그래서 현재도(2년 내내)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 운영회의가 있어서 학교에 방문했던 날, 추억에 잠시 빠졌습니다. 시설이 조금 청결해지고 비품이 좋아진 걸 빼고는 달라진 게 거의 없었습니다. 여전히 칠판과 분필이 있었고,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도구를 활용해야 했습니다. 학부모 운영위원회가 열리긴 하지만, 두툼한 안건 목록을 형식상 통과 시키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제가 다녔던 시절과 뭔가 달라졌으려니 기대한 게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교육은 쉽게 바뀌기 힘듭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아이들은 사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교육도 과거와 다르게 접근하지 않으면, 결국 시대착오적인 교육이 될 뿐입니다. 사교육과 관련해서는 후에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학습 Learning


저는 아이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 시간보다 학습 시간이 더 많아야 아이가 잘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아웃라이어』에서는 연주자들의 레벨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벨 결정 요인은 연습 시간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엘리트 수준은 그 바로 아래 단계의 연주자보다 하루에 평균 30분 이상은 더 연습했다는 통계를 제시합니다.

그들이 같은 학원에 다니고, 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차이는 연습 시간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하루 30분은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여도 1년 이상 쌓이면 무시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1년을 300일로 계산해도 9,000분에 이릅니다. 시간으로 150시간이며, 150시간은 1주일이 넘는 시간입니다.

최근에 “뭉치면 쏜다”의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는 허재 감독은 자신의 성공은 20%가 재능이고 80%가 노력이었다고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고 들어간 날도 남모르게 더 연습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차이가 대한민국 최고 선수가 되게 한 것입니다.


예일대학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Amy Chua)의 『타이거 마더』를 읽다 보면, 그녀의 자녀 교육 방법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결국 두 딸의 ‘남다른 연주 실력은 남다른 연습량에 달렸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저는 이런 연습을 학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습(Learning)을 생각하면 교육이 떠오르면서 학교에서의 공부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학습은 이보다는 넓은 개념입니다. 태어나서 학습 없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별로 없습니다. 인간은 학습을 통해서 다양한 행동들을 배워갑니다.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모방하는 것, 대부분이 학습의 범주에 속합니다. 조금 그 영역을 좁히면, 부모님, 선생님 등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배움의 영역이 아닌, 혼자서 해야 하는 배움의 영역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주도적학습’이 대표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습은 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치의『창조적 학습사회』에서는 앞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의 조건은 바로 학습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와 사회에서 제공했던 교육의 영역을 넘어서야 미래에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여전히 구태의연한 교육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 교육 방법의 출처는 본인의 경험과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출처 없는 이야기입니다.

자녀의 교육은 학교, 학원에서도 이뤄질 수 있지만, 학습은 부모가 관리해줘야 합니다. 그 첫 단계가 바로 부모 학습입니다. 누군가에게(지인, 주변 인물, 인터넷 등) 듣고, 훑어본 자료로는 제대로 된 학습 지도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부모입니다. 엄마만, 아빠만이 아니라 둘 다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자녀에게 적합한 학습 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남의 자녀를 근거로 한 남의 이야기는 참고만 하는 게 좋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정보 교류하기 보다는 혼자서 관련 도서를 찾아보는 게 더 유익합니다.

좋은 아빠 TIP


1. 우리 자녀는 새로운 표준이 적용된 세상을 살 게 됩니다. “라떼”를 잊어야 합니다.

2. 학습 지도를 위해서 부모가 먼저, 학습해야 합니다.

3. 카페 교류가 아니라, 혼자 학습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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