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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강을 읽어야 할까?

by 조작가Join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쯤, 필자는 습관처럼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속보 한 줄이 꿈결에 스쳐 가듯이 보였는데,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수상자의 반열에 오르더라도 몇 년 후로 생각했기에 눈을 의심하면서 바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서 기사를 검색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진위를 파악하는 데까지 실제로 걸린 시간은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진짜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한강이었다. 한강은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이어서 아시아 최초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영예도 안게 됐다.


한강 열풍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도 각종 미디어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그 덕에 서점에서 《채식주의자》를 고르는 손길도 빈번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품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판매고를 올렸다. 작가 작품은 100만 부를 넘어서 200만 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인터넷 서점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아시아 최초 여성이자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의 힘은 그녀의 작품에 전혀 관심 없던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전국 어디서나 책이 있는 곳이라면 한강 브로마이드를 볼 수 있었고, 작가의 견해는 곧 지상파 뉴스에 소개될 정도로 언행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또한, 작가가 졸업한 연세대학교에서는 민족시인 윤동주 시비 옆에 한강 기념비까지 세운다고 하니, 한강은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를 다 누렸다고 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물론, 새로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등장해도 한강이 받았던 관심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아울러 이후 작가의 후속 작품도 튼튼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반석 위에 세워질 테니, 영예와 부가 계속 자동으로 축적될 것이다.


열풍의 소멸

필자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한 열풍의 혜택을 입었다. 기존 노벨문학상 작가를 소개한 《노벨문학상필독서30》이 2쇄를 찍고 그 판매고가 지지부진하던 중, 한강 작가의 수상 덕분에 한강 작가를 추가한 《노벨문학상필독서31》이 개정판으로 나왔고, 이어서 작은 크기의 책 《작가 한강 읽어보기 1》을 출간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글을 쓰고, 쓴 글을 출간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의 많은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심 이전에 개인적인 뿌듯함과 동시에 계속 글 쓸 수 있는 작가 동기부여의 모터를 돌리는 일이어서 한강 작가는 필자에게 정말 고마운 존재이다.

그러나 작가 한강의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쩌면 노벨문학상이라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필연적인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은 문학상 중 최고의 상이지만, 대중성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는 친근하게 다가가기 어렵다. 물론, 1901년부터 수상자를 선정한 이래로 현재까지도 고전으로 읽히고 있는 작품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동화와 뮤지컬로 계속 전해지는 작품도 있고, 영화로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케이블에서 종종 방영해 주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작품은 수상 작가도 알 수 없을 만큼, 대중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다르게 이해하면, 전문가들이 주로 찾아보는 작품인 셈이다. 그래서 한강의 열풍 기간도 2025년 봄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수그러든 열풍은 곧 미풍이 되고, 현재는 소멸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 다시 노벨문학상 선정 시즌이 돌아오면 한강과 관련한 바람이 조금씩 일긴 할 것이다.

한강을 읽어야 한다

한강의 열풍과 그 열풍의 소멸과 상관없이 우리는 한강을 읽어야 한다.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해 보자.

우선, 한강은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더불어 아시아 최초 여성 수상자이기도 하다. 기존 아시아 수상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일본에서 2명의 수상자가 나왔는데, 94년에 오에 겐자부로가 마지막 수상자였으니, 30년 전 이야기다. 인도의 타고르는 우리가 기억조차 하기 어려운 시절 이야기다. 중국에서도 중국 국적으로 수상한 사람은 모옌에 불과하다. 남성 전유물이라고 불렸던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여성이 자주 선정되고, 아시아 최초로 한강이 선정된 것은 분명 유의미한 역사적 반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수상자 작품과 한강 작품을 비교해서 읽어본다면, 흥미로운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성 작가의 역사 인식과 여성의 역사 인식, 그 내용은 유사할지 몰라도 문체가 다르다. 남성은 역사의 주체였고, 여성은 주체로 살아오지 못했기에 약자를 이해하는 감성과 그들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모옌의 《붉은 수수밭》을 읽으면, 그 시대의 잔혹함을 느낄 수 있다. 동족을 죽이고, 이웃을 죽이고. 참혹한 시대를 훑어보면서 공포의 전율을 느낀다. 그러나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잔혹과 끔찍함으로 인한 공포보다 죽음 앞에 아픔과 슬픔이 느껴진다.

둘째, 한강 작가의 작품을 통시적으로 읽어본다면, 한강만의 문체 그리고 한강 문학이 추구하는 주제를 알 수 있다. 문학적 기법으로는 운문과 산문의 적절한 혼용, 마술적 사실주의를 통해 ‘역설적 긍정’이라는 주제를 표현한다. 이런 주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한두 권이 아니라, 더 다양한 작품을 읽어야 한다.

한강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의 대부분은 작품의 그로테스크함에 당황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 알려진 《채식주의자》를 필두로 대부분 작품이 어둡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아래 회색빛 빌딩들로 가득한 도시, 그 속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개성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삶을 영위하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작품을 통시적으로 읽다 보면, 작가가 이런 세상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이런 세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숨겨두고 있다. 《채식주의자》 역시 그렇다. 동물의 세계, 약육강식 사회를 거부하고 식물의 세계, 공존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공존의 세계는 사랑과 평화를 두 축으로 한다. 물론, 작품 속 주인공(채식주의자 주인공)은, 마치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속에 나오는 지상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그들만의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지만, 작품은 강한 동물만 살아남는 육식 사회를 거부하고 있다.

셋째, 한강만의 독특한 문학 기법이 정착됐다. 한강은 시인으로 데뷔했다. 초기 소설에서는 ‘시어’가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작품에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는 산문과 달리 압축적이다. 글이 짧아서 빨리 읽을 수 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작가는 운문과 산문을 적절히 배열해서 작품을 이어간다. 그리고 작품은 그 부피와 관계없이 여운을 남긴다. 생각할 거리를 준다. 빨리 읽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국내 기존 작가 중 한강보다 더 대중적이고 더 유명한 사람이 있을 수는 있어도 한강처럼 운문과 산문을 자유자재로 작품에 활용하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교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섬세하게 인물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된다. 작가 작품을 읽으면서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이런 섬세함 때문에 섬찟 놀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강은 발전하는 작가이다. 작가가 다루는 소재는 개인의 아픔으로부터 시작해서 역사, 사회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아픈 개인을 존재론적으로 다루기도 하고, 사회적 부조리함을 다루면서 그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들은 대안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열린 결말이다. 그러나 한강은 ‘역설적 긍정’이라는 주제를 심어 놨다. 단, “눈 있는 자는 볼지어다.”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려야 할 만큼 작품에 심취해야 한다.

아울러 독자와 관련한 스펙트럼도 보편적이다. 많은 여성 작가처럼 페미니즘에 기대고 있지 않다. 한강은 좁은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듯이 스펙트럼을 제한하지 않았다. 물론, 작품 내 인물 구성에 있어서 여성이 약자로 그려지고, 남성이 권력자로 표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작가의 한계라고 할 수 있으나, 이런 부분에만 매몰돼 작가를 페미니스트로 이해하는 것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작가 한강 읽어보기”를 마무리하며

한강 작가의 수상과 더불어 기획한 《작가 한강 읽어보기》는 2024년 10월부터 시작됐다. 작가가 출간한 열두 작품을 읽었고, 읽은 소감을 꾸준히 연재했다. 연재 초기에는 작품에 강하게 몰입돼 우울감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그 정도로 작품이 부여하는 부정적 무게가 상당했다. 그러나 연재 후반에는 오히려 ‘역설적 긍정’이라는 언어를 추출할 수 있었고, 작가가 독자와 나누고 싶은 그것이 고통의 무게나 우울감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가 안고있고 시대가 짊어지고 있는 짐을 덜고자 하는 방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한강 작가 작품의 목적이 왜곡되지 않도록 필자는 연재한 글들의 절반을 추려서 《작가 한강 읽어보기 1》을 2024년 12월에 출간했고, 이제 나머지를 모아서 그 후속 작품으로 독자들과 나누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20년 가까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읽어 왔는데, 이번에 한국 작가를 다룰 수 있어서 기뻤고, 한강 작가처럼 사회적 논쟁이 있는 작가를 다룰 수 있어서 흥미롭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작가가 독자와 나누고 싶어 한 이야기의 주제와 목적을 필자가 얼마나 잘 이해해서 본서에 담았는지와 관련한 부담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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