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를 보자(2)
지역 사회의 발전 가능할까?
싱가포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싱가포르 국립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에 대해서 잘 모른다. 단순히 생각하면, 대한민국 인구 1/9밖에 되지 않는 국가에 있는 대학이니 수준이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가끔 만나는 교수님과 자녀 교육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는데, 싱가포르 대학교 수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계셨다. 본인이 미국에서 유학했기에 미국 교육 제도에 대해서 부러워했고, 그래서 자녀도 미국 교육 혜택의 옷을 입기를 바랐다.
현재 싱가포르 국립대학과 싱가포르 난양 공과 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는 아시아권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으며, 세계에서도 수위권에 속한 명문대학이다. 이런 결과를 낳게 한 원인으로 우선 오직 ‘실력’으로만 교수를 채용하는 원칙이 있다. 교육자 수준이 높으니 당연히 피교육자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다음으로 싱가포르 정부 차원에서 글로벌 인재를 발굴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육자와 학생 모두 수준이 높으니 대학 수준이 낮을 수가 없다.
대학 순위로만 본다면 서울대학교보다 훨씬 좋은 대학교이다. 참고로 대구·경북지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고, 경쟁력 있는 대학교는 경북대학교인데, 국내 대학교 순위는 19위이며, 이어서 영남대학교가 그 아래 있다. 다른 지역도 유사하다. 지역을 대표하는 국립대학교의 순위는 상위 10위 안에 들지 못한다.
이렇게 비교하면, 모든 자원이 집중해 있는 서울 탓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주장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다. 서울의 면적은 다른 도시와 비교할 때 크지 않지만, 인구는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으며, 대부분 자원이 서울에 몰려 있다 보니,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옛말이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재도, 경제도, 정치도 수도권 중심이어서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방분권을 통한 권력 이양과 탈중앙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지방분권에 찬성하는 측은 공평성, 효율성, 자율성 등을 이유로 지방분권이 현대 국가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방분권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역 수준이 서울처럼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경북대학교 수준이 SKY 수준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다. “어림없다!”
현재처럼 지역의 폐쇄성을 유지하고 토호 세력 중심으로 자원을 나눠 먹는 상황이 극복되지 않는 한 지방분권의 실행은 더 쇠퇴하는 지역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다양성, 개방성
새로운 시대와 어울리는 지역 사회의 발전을 바란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 ‘다양성 존중’과 ‘열린 마음(개방성)’이다.
세계적인 사회학자로 명성이 높은 벤자민 R. 바버(Benjamin R. Barber)는『뜨는 도시, 지는 국가』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도시는 네트워크화가 잘 이루어진 다문화적 대도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같은 책에서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 시장 슈스터는 “이번 세기에 성공적인 도시란 개방되고, 국제적이며, 진정으로 관용과 문화 간 대화를 진작시키는 도시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앞서서 싱가포르의 다양성, 개방성, 그리고 다문화와 관련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전했다. 작지만 강한 국가로 발전하기까지 싱가포르가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이다.
예일 대학교 로스쿨 에이미 추아(Amy Chua) 교수의 『제국의 미래』에서는 역사적으로 등장한 강대국의 특징으로 다양성과 개방성을 꼽는다. 강대국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방적인 게 아니라 이 두 요소가 국가를 강하게 만들었다는 게 핵심이다.
아울러 철저한 실용주의도 다양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한 원칙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능력과 업적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하고(몇 년 전 40대 참모총장이 임명된 적이 있다), 성별과 출신을 불문하고 인재를 선발해서 육성하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개방성이 부재하다면, 이러한 인사와 인재 선발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군을 지휘하는 40대 참모총장은 대통령이 나오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우리 지역 사회는 어떠한가? 정치적인 전략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지역감정으로 국론이 분열된 경우가 많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기 힘든 만큼 외부 사람이 지역 사회에 정착하기도 쉽지 않다. ‘끼리끼리’라는 말이 경계가 돼 다른 지역 사람은 받아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발전적인 토론은 물론, 제대로 된 비판적인 지역 분석도 힘들다. 지역 이기주의가 판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의 화두 ‘연결’과 ‘융합’은 말만 번지르 할 뿐 실행될 수 없다.
문화와 인식의 변화는 짧은 기간에 이뤄지기 힘들다. 그래서 장기적인 계획하에 실행하는 교육이 중요하고, 한 세대에 걸쳐서 사회적 분위기를 변화시키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몇 년 전에 특강을 마치고 해당 기관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박사님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하면, 대구가 발전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조금씩 바꿔간다고 생각하면서 추진하면 되지 않을까요?”
“네? 당장 1 – 2년 안에 변화할 방법은 없을까요?”
“제 생각에는 없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다. 급한 일을 천천히 해결하라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신중 하라는 말이다. 개인의 일 처리도 이러할진대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사는 지역 사회의 일을 단시간에 해치울 수 있을까? 세계적인 교육의 메카로 인정받는 핀란드도 수십 년에 걸친 개혁이 필요했고, 싱가포르도 1990년대부터 개혁한 결과가 현재 나타나고 있다. 기적이 없는 한 단기간에 변화할 방법은 없다. 아울러 일부 지역 토호 세력이 지역 자원을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에서의 발전은 애니메이션《엄마 찾아 삼만리》에 나오는 주인공의 역경만큼이나 돌고 돌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