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를 보자(3) : 새로운 것을 막아서는 구태의연한 것들
풍부한 싱가포르, 부족한 지역 사회
『싱가포르에 길을 묻다』에서 저자는 “싱가포르에서 2주 동안 즐길 수 있는 계획을 세워달라는 부탁이 들어오면, 수 시간 내에 매 끼니 다르게 먹으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계획을 세워 줄 수 있다”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1주일 계획을 세워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심각하게 고민한다고 한다.
저자의 조금 과장된 발언이긴 하지만, 실제로 싱가포르에 다녀오면,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많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도시 규모는 작지만, 속은 꽉 찬 열매 같다.
우리 지역 사회는 지역마다 다양하게 먹거리를 홍보하고, 볼거리를 홍보하고, 자랑거리를 홍보하고 있다. 홍보하는 대로 찾아다니고 먹고, 즐긴다면 싱가포르보다 10배 이상 풍부한 콘텐츠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정도 풍성한 문화 자원이 있다면, 세계적인 관광 국가가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류의 영향으로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세계적인 관광 국가 타이틀과는 거리가 있다. 아울러 과거 일본 문화가 전 세계를 헤집고 다녔다가 최근에 거의 안방 문화로 소멸했듯이 한류도 언제까지 순풍을 타고 세계를 누빌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먹거리 천국이라고 하는 싱가포르도 원래부터 많은 먹거리가 있지 않았다. 실제로 한 세대 전만 해도 국가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다. 그런데도 국가가 나서서 콘텐츠를 개발했다. 어떤 빌딩도 유사한 빌딩은 없도록 해서 빌딩만으로도 볼거리를 제공하는 도시가 됐고, 랜드마크가 없으니, ‘머라이언(Merlion은 lion(사자)에 mermaid(인어)를 합성한 단어이다)’이라는 사자와 인어를 합성한 상징물을 만들어 싱가포르에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도록 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차드 로드(Orchard Road)’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백화점만으로도 관광 명소를 만든 아이디어가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큰 도로 양쪽으로 2.2Km정도 백화점 릴레이가 이어진다. 우리나라 백화점도 철마다 때마다 장식하고, 이벤트를 열어서 소비자를 유혹한다. 그런데, 그런 백화점이 양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으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싱가포르는 좁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기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빌딩 하나, 백화점 하나, 호텔 하나를 새로 짓더라도 그들은 허투루 땅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야기가 없으면 이야기를 만들고, 볼 게 없으면 볼거리를 만든다. 콘텐츠가 없으면, 새롭게 창조한다. 어차피 척박한 자원으로 시작했기에 새롭게 만드는 거 자체가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자. 한 지역에서 근대문화가 뜨자, 너도나도 근대문화와 관련한 길을 조성한다. 어디서 어떤 축제가 뜨자, 바로 다음 해에 여러 도시에서 유사한 축제가 만들어진다. 몇 년 전에는 야(夜)시장이 뜨자, 우후죽순 비슷한 시장이 만들어졌다. 어디를 가더라도 대한민국임을 알 수 있다. 말투만 다르지 한민족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서울 이외에 다른 지역을 관광하려 하는 외국인들이 많지 않다. 유학생들도 대부분 서울을 동경하는 이유가 특색 없는 지역 색깔을 경험하다 보니, 그나마 가장 화려한 서울을 선호하는 것이다.
독일의 소장 철학자 노베르트 볼츠(Norbert Bolz)의『놀이하는 인간』에서는 “19세기는 생산자의 시대, 20세기는 소비자의 시대, 21세기는 놀이하는 사람의 시대”라고 예측하면서, “많은 문제를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듯 풀어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즉, 많은 사람이 흥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는 게임화(Gamification) 방법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소수 전문가가 내놓는 해결책보다 더 낫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게임화’와 ‘집단 지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민관의 소수 두뇌가 모여서 일방적으로 방향을 제시하지 말고,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지역의 특색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실험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건설적인 자세를 지향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 퇴보하고 있는 지역 문화를 살리고, 지역 경제와 특색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막아서는 구태의연함
싱가포르는 1년이 아니라 몇 개월마다 새로움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것이 건축일 수도 있고, 사업일 수도 있다. 실제로 싱가포르를 여러 번 방문했는데, 계속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아울러 국제 행사가 줄기차게 이어져 있었다. 어느 순간 아시아 국가의 선진화를 체험하려면 싱가포르를 떠올리는 수준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 사회는 어떤가? 최근 들어 많은 건축이 이뤄지고 있다. 단, 랜드마크가 아니라 아파트 재건축이다. 도대체 저 많은 아파트는 어떻게 분양될지 걱정이 될 정도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부족하고, 인재도 부족하다. 아울러 경제적 상황도 좋지 않다. 반면에 지역 사회의 허례(虛禮)는 수도권 이상이다. 참고로 인구 대비 외제 차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가 대구광역시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려면 당연히 외부의 자원을 끌어들이고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폐쇄적이다). 자발적으로 새로운 시도도 하지 않는다(구태의연하다). 그리고 끼리끼리 모인다(카르텔을 형성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역 사회 발전은 무리이다.
호주연방 과학원 사무총장 제임스 브래드필드 무디(James Bradfield Moody)는『제6의 물결』에서 “혁신은 어떤 일을 하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정의하면서 그 조건을 아래와 같이 나열했다.
1. 새로운 ‘기술’의 발전
2. ‘시장’의 변화, 즉 새로운 기술, 기존의 기술에 대한 요구
3. 1과 2를 연결하고 결합 되도록 하는 ‘제도’의 변화
위의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기술은 이미 기하급수적으로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현재 기술은 오히려 다른 분야의 발전을 훨씬 앞선 상태이다. 즉, 위의 1, 2항목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다.
다음은 ‘제도’이다. 『제6의 물결』에서는 “혁신의 물결은 중요한 시장 기회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고 제도적 변화가 갖춰져야 한다”라고 하면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신기술의 등장 자체가 혼자 악수를 위해서 내민 손처럼 무안해질 수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4차 산업혁명 준비가 철저하다. 최근 몇 년 순위에서 세계 1, 2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지역 사회는 어떤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혼선을 가져오고, 담당자조차도 변화하는 기술의 생태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르면 규제하고, 알아도 규제한다. 괜히 개발자들이 ‘네거티브 규제’를 외치는 게 아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에서 “전 세계 각국 정부의 고질적인 문제는 주요 이니셔티브를 관련 부처와 기관에 연결하지 못해 각국 정부는 사회의 전반적인 증진의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내고 있지 못하고, 거시적인 접근 방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도적인 구태의연함이 새로운 시대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서울과 격차가 큰 지역 사회의 모습은 더 심하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가 도입되더라도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한 10년쯤 수도권에서 유행한 후에 지역 사회에서 모방하기도 한다. 전국을 여행하다 보면, 1980년대 세트장 같은 거리도 쉽게 볼 수 있고, 5G 이동통신이 확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 지역 사회의 보급률은 원활하지 않다. 사용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스마트 시티를 실험적으로 운용하려 해도 사용자 수준이 미흡하니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이 모든 게 새로운 것의 도래를 막아서는 구태의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태의연함은 지역에 따라 ‘꼰대’, ‘끼리끼리’, ‘허례(가오)’, ‘수구(守舊)’의 모습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