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포드의 상상력이 없었다면, 자동차의 보편화는 당연히 더 늦어졌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더 빠른 마차를 원했으니까. 지금쯤에는 자동차가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자동차 산업 발전은 좀 더디지 않았을까?
이후 GM이 시도한 할부제도가 없었다면, 자동차는 지금처럼 필수품이 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일시금으로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자·작곡한 “사랑할수록”이 그야말로 “초대박” 치자 그랜저를 일시금(현금)으로 샀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일시금으로 자동차를 구매한다는 건 쉽지 않다.
조금 더 상상력 이야기를 하자. 소니(Sony)의 모리타 회장이 워크맨에 대한 상상력을 현실화하지 않았다면, 현재 우리 주머니 속에 뭐가 들었을까? 아직도 두 손으로 카세트를 움켜쥐고 다니면서 음악을 들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근래로 들어와서 생각해보자. 스티브 잡스와 같은 ‘크리에이터’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2G 폰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답답하지 않은가? 인터넷 따로, 통화 따로, 영상 따로, 모든 게 구분돼 있었던 시절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조금 부연하자면, 2000년대 초만 해도 검색하기 위해서는 모니터 앞에 앉아야만 했고, 통화는 핸드폰으로 했다. 영화를 보고 싶다면, 노트북이 필요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던 시점은 2010년이 넘어야 했다).
‘블록체인’ 역시 사토시 나카모토의 상상력이 없었다면,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의 현실화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현실 속에서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기술로 등장한 기기들을 생활 속에서 만끽할 수 있는 ‘사용자’가 필요하다.
우선, 기술적인 요소를 살펴보자. 최초로 비행기를 설계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날고자 했던 꿈은 에디슨을 거쳐 라이트 형제에 이르러서야 이뤄진다. 현재 많은 자동차 기업이 주력 상품으로 내놓는 전기자동차도 1873년에 휘발유 자동차보다 먼저 개발됐지만, 배터리의 중량이 무겁고 충전 시간이 너무 길어서 상용화할 수 없었다. 즉,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상상력은 꿈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다음은 사용자다. 상상해보자. 조선 시대에 핸드폰이 나왔다 한들 얼마나 사용했을까? 구한말 테니스 치는 선교사들을 보면서 조선의 양반들은 “저런 건 하인들이나 시키지, 왜 힘들게 직접 하시오?”라고 질문했다고 하니, 아무리 좋은 기술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사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기술상품은 인간의 사용 욕구와 실사용이 잘 매칭 됐을 때 혁신적인 제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스마트 시티’가 좋다고 해서 스마트 실증단지를 2015년에 부산과 대구에 선정하고 실행했으나 실패했다. 이유는 사용자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도, 대구에 “수성 알파 시티”가 조성되고 있다는 건 왠지 석연치 못하다).
2017년에 스마트 시티 순위를 매겨보니 서울이 21위였다. 1위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인데, 가장 아날로그적인 “휘게(Hygge)”의 국가에서 최첨단의 지표 스마트 시티 1위를 했다는 게 언뜻 보면 이해되지 않는다(참고로 아시아에서 가장 순위가 높았던 국가는 싱가포르였고, 세계 2위였다).
대체로 유럽 선진국이 최상단의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몇 년 동안 순위는 큰 변화가 없었다. 종종 혜성처럼 등장하는 국가나 도시가 있지만, 전체적인 상위권은 그들만의 리그다.
왜 그럴까? 기술개발은 기업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인식과 사용 수준은 현재 시민 수준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에서도 개발될 수 있지만, 보편적 사용자 수준은 하루아침에 향상될 수 없다는 의미다.
블록체인의 연원은 10년 정도이다. 길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을 아는 시민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비트코인’ 이상 떠 올리지 못하는 시민이 대다수이다.
인터넷이 현시대 최고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인터넷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인터넷”이 뭔지는 알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조차도 현재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인터넷은 안다.
물론, 블록체인 기술 수준이 나아가야 할 길은 멀다. 여러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먼저, 잠재적 사용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비트코인 투자(기)로 큰 손해를 보고 땅 치고 후회한 사람들은 쉽게 긍정적인 시각으로 전환하기 힘들 것이다.
아울러 심한 규제가 있어서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한다. 수개월 전에 블록체인 6개 강소국(스위스,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싱가포르, 홍콩)을 설명하는 글을 연재한 적 있는데, 블록체인을 제재하는 국가들의 특징은 규모가 크고, 중앙집권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음을 설명했다.
과거 인터넷이 등장하고 발달할 때도 국가의 통제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넷은 통제가 가능한 구조였다. 중국처럼 차단하면 된다. 구글이 아무리 중국에 들어가고 싶어도 중국 정부가 막아서면, 방법이 없다.
더욱이 공룡 포털은 이윤이 목적이어서 추상적인 가치를 위한 일에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모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의 발달이 민주적인 기능을 발전시킬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빙자한 포퓰리즘을 확산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고, 소수의 새로운 엘리트를 양산하는 데 도움을 줬을 뿐이다. 더 공격적으로 인터넷 기술을 비판한 작가도 있는데, 타일러 코웬은 『거대한 침체』에서 “과거 세계 경제를 성장시켰던 파괴적인 기술은 새롭게 등장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혁명이라는 말에 찬물을 끼얹는 주장이다. 인터넷은 그저 소비를 부추겼을 뿐이라고 냉소하고 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주장하는 건 낭설이라는 말이다.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풍성하게 해 준 건 맞다(그중에서 가장 많은 게 포르노다). 그러나 세상이 바뀐 건 아니다. 혁명이라는 말이 계속 언급됐지만, 누구를 위한 혁명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어떨까? ‘거버넌스 블록체인’ 혁명은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