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이들이 부럽다
여섯 살을 앞둔 바다, 다섯 살을 앞둔 알송이와 달송이는 각종 캐릭터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주말에 먹일 간식을 고르다가 '티니핑'과 콜라보한 몽쉘이 눈에 띄었다. 장난감이 식료품으로 영역을 확장한 게 흥미로웠다. 좋아할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떠올리니 미소가 번졌다. 흔쾌히 주문했다.
잘 먹고 많이 먹는 알송이가 두 개의 몽쉘을 해치우고 말했다.
"엄마, 티니핑 빼빼로도 이써. 그거 주문해."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닦아주던 내 손이 잠시 멈췄다. '잘 먹겠습니다.'를 가르쳤다고 끝나는 게 아니구나.
"아빠가 너희를 위해서 열심히 번 돈으로 사는 거야. 공손하게 부탁해야지."
그렇게 말했지만, 천진난만한 대답이 돌아왔을 때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공소니가 몬데?"
"예쁜 말투로, 예의 바르게 말하는 거야. 너희가 번 돈이 아니잖아."
"우리는 어리니라서 돈을 벌을 수가 없쟈나! 아빠가 벌어야지."
알송이의 당연한 말에, 나는 서운하면서도 씁쓸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은 내가 어린 시절 꿈꿨던 것보다 훨씬 풍족하니까.
당연하다는 그 어투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천국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꼬셔서 데려온 건 나라서, 모든 사랑을 쏟으며 키우지만 그 사랑이 늘 감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따금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생일에 선물을 받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이지만, 누리고 있는 것들에 적어도 감사하는 태도를 갖길 바랐다. 나의 육아는 아직도 구만리가 남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니 막막했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겸손과 감사를 가르치고 싶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때로는 아이들의 무구함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순수함이 너무나 빛나서, 가끔 깊은 곳에 묻어둔 결핍을 비춘다. 내 아이들이 부럽다. 키울수록 자주 샘솟는 마음이다. 나는, 갖지 못할 걸 알아서 함부로 욕심내지 않는 아이였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내 아이들처럼 무언가를 당연히 누리는 것을 꿈꾸지 못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시장 안에 천막이 빼곡히 늘어섰다. 생선비린내가 코끝을 스치고, 뻥튀기 기계의 '뻥!'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흥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엿장수의 노랫소리가 뒤섞여 장터는 늘 소란스러웠다. 즉석에서 만드는 꽈배기, 옷을 늘어놓은 좌판, 내 키 반만 한 삼치가 누워있던 생선가게를 지나서 하천 옆의 공터로 향했다. 무릎을 간지럽히는 강아지풀을 밀어내고 계단을 내려가면, 흰색이나 군청색 트럭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무지개파라솔이 보이면 어김없이 각설이 분장을 한 엿장수가 '세상은 요지경'을 부르며 흥을 돋웠다. 그 옆에는 대포소리를 내는 기계를 손질하던 뻥튀기 아저씨. 제일 끝에는 해적판 어린이도서를 팔던 하얀 트럭이 있었다. 가격은 사장님의 기분에 따라 달라졌고, 책의 상태도 제멋대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삽화도, 제본도 엉망이었다. 보름정도 읽고 나면 누런 본드가 떨어져서 책장이 후드득 분리됐다. 하지만 아빠는 늘 그 트럭에서 책을 사주셨다. 아빠의 주머니가 허락하는, 나를 위한 작은 행복이었다. 나는 그 책을 옆구리에 낀 채 김치와 채소, 과일을 파는 부모님의 장삿길에 따라나섰다.
여덟 살 여름, 엄마가 처음으로 피자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손을 꼭 잡고 따라갔는데 피자집이 아니라 치과였다. 이를 뽑고 엄마는 피자빵을 사주셨다. 횡단보도에서 나는 발을 구르며 울었다. 배신감에 눈물이 차오르는데, 피자빵도 처음이라서 그걸 든 채로,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말없이 나의 다른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스물아홉이던 엄마도 속으로 울었으리라. 처음으로 피자를 먹은 건 열 살 무렵이었다. 맛은 기억나지 않고, 나를 바라보던 엄마 눈빛만이 한 조각 남아있다.
어린 시절 내 기억과 나란히 놓고 본다면, 이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여전히 부족함이 많지만,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소박한 행복을 내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이만큼, 무서운 순수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나중에 내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된다. 티니핑 빼빼로도 먹고 싶다는 말은 물색없는 무지일 뿐, 두고두고 나를 울릴 말은 아니지 않은가.
엄마는 종종 택배를 보낸다. 상자를 열면 마트를 통째로 털어온 것 같이 다양한 종류의 과자와 젤리, 초콜릿이 들어있다. 항상 세 아이몫을 똑같이 셈하여 3의 배수로 챙겨주신다. '뭐 샀다 하면 한 박스야 엄마는.'하고 자주 핀잔을 줬다. 어쩌면 외동딸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이 아쉬웠던 오늘의 엄마가, 어제의 나에게 보내는 뒤늦은 사랑은 아닐까. 엄마의 택배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은 모두 채워주고 싶다. 비록 그 사랑을 지금은 당연하게 여길지라도, 언젠가 이 마음을 헤아려주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