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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혁 Oct 27. 2022

der Traum, das Trauma


한때 내 꿈은 큰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한때 내 꿈은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또, 한때 내 꿈은 매일 저녁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었고,

한때 내 꿈은 행복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었다.

한 때는 그 집에서 웃고 있는 사람이, 그때 내가 만나고 있던 그 사람이길 꿈꾸기도 했었다.


그 모든 꿈은 한 때 나를 설레고, 더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때가 떠나고 낯설게 남아있는 지금,

나를 맴도는 꿈은 어떤 모습인가.

내 몸을 감싸 안고 가슴 뛰게 하는 그 날개는 어떤 모습인가.


자면서 난 많은 꿈을 꾼다.

새벽 한가운데서 나를 현실로 몰아붙이는 섬세하도록 섬뜩한 꿈이 있는가 하면,

아침 알람 소리와의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꿈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힘을 주는 달콤한 꿈도 있다.

꿈속에서 난 내 몸의 일부를 잘렸다가 되찾기도, 학교와 일터를 한 건물에서 경험하기도, 마주치기조차 싫은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모든 꿈을 깬 뒤에도 기억할 수 있지는 않지만, 하루가 다되도록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는 장면이 있기도 하다.

오늘의 꿈이 어제의 꿈과 전혀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내일의 꿈과는 이어지길 바란다.


오늘 난 어떤 꿈을 꾸었다.

근 5개월은 일어나지 않았던, 새벽녘의 나에게 깊은 꿈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그런 꿈이었다.

여느 때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그 꿈이 꿈이었다고 깨닫고 나서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행복한 꿈이 새로운 꿈으로 덮여지게 될 오늘 밤이 오는 게 두려워졌다.

오랜만에, 울었다.


그 사람을 놓친지도 벌써 10개월 가까이 흘렀다. 감정의 파도가 잔잔해졌다 믿었을 무렵, 이성을 소개받기도 했고, 만남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새 만남을 시작하고도, 아무 설렘조차도 없었다. 나는 파도를 타기보단, 물 빠진 뻘에서 꼼지락대는 망둥어를 조용히 바라보며 눈을 간질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이제 첫걸음을 기억해 낼 수 없는 내 보폭을 또다시 새로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어떤 공간에서 행복함을 느끼며 바라본 옆자리에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기 싫었던 건지, 나는 그 다른 사람과 만날 때에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자연히 상대도 이를 느끼게 되었고, 오늘에서야, 그 꿈의 강한 향수를 느끼고 나서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왜 나는 관성적으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내 모든 상황이 바뀌었는데, 내 꿈의 형태는 이전의 그것을 고집하고 있었을까.

마지막 내 꿈이었던, "그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한 가정"에서, '그 사람'이 빠진 문장을 기계적으로 읽고 있었을까.


오늘 밤에도 난 잠을 잔다. 늘 그래 왔듯, 꿈을 꾼다. 어떤 꿈일지는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그래도,

꿈을 꾸자. 꿈을 꿔보자.

이번에 꿀 꿈에 무엇을 얼마나 갚게 될지는 몰라도,

꿈을 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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