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의 중장기 계획인 지역 계획(Greater Cambridge Local Plan)이 의견수립 막바지 단계*에 있다.
* 현재 초안(Reg 18) 의견수렴 단계. 2026년 말까지 정부에 제출 후, 심사를 거쳐 채택 및 발효 예정.
분위기를 느껴볼 겸 계획 설명회(consultation)에 다녀온 김에 영국의 계획제도에 대해 적었다.
영국의 계획제도는 재량형 계획제도의 대표 사례이다.
비교를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제도를 먼저 소개하겠다.
한국의 계획·개발 제도는 최상위의 국토종합계획 아래 공간의 위계에 따른 하향식 계획 수립 체계 안에서 개발을 하려는 자가 허가권자*(자치단체장)로부터 국토계획법에 따른 개발행위허가, 건축법에 따른 건축허가 등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하위 계획은 상위 계획에 반하여 수립될 수 없으며, 모든 행위 허가는 상위 계획에 구속되며(계획에서 정한 사항에 따라야 한다) 허가권자의 재량 영역이 있더라도 법령이 엄격히 인정한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
* 행정법에서 "행정청"이라 불리는 행정기관(처분의 주체). 건축허가 주체는 일반적으로 시장·군수·구청장.
반면 영국의 계획제도는 엄격한 위계적 계획체계에 기초하기보다는, 개별 개발행위에 대한 지방계획당국*(Local Planning Authority, LPA)의 재량적 판단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영국에서는 법정계획(Development Plan)이 개발허가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지만, 계획이 곧바로 개발권을 부여하거나 기계적으로 인허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각 개발신청에 대해 계획정책, 국가 정책, 환경·교통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 사안마다 판단하는 방식이 기본 구조를 이룬다.
* District Council, Borough Council, Unitary Authority 등 지방자치단체가 Local Planning Authority(LPA) 역할을 수행한다. 영국은 의원내각제 국가이며 지방자치 수준에서도 의회와 행정부가 통합되어 있다. 계획 수립과 심사는 전문성을 갖춘 planning officer(공무원)가 담당하고, 최종 정책 채택과 개별 허가 결정은 선출직 의원으로 구성된 planning committee가 수행한다.
영국의 인허가 판단은 「Town and Country Planning Act 1990」 및 「Planning and Compulsory Purchase Act 2004」 제38조(6)에 따라 원칙적으로 development plan에 부합하여 이루어지되, 동시에 ‘material considerations’라 불리는 기타 중요 고려사항을 함께 반영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동일한 계획구역 내에서도 개발 내용, 입지 여건, 공공성, 환경 영향 등에 따라 서로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으며, 이는 계획의 기계적 집행보다는 지방계획당국(LPA)의 전문적 재량을 중시하는 제도적 특성을 보여준다.
또한 영국의 development plan은 한국의 도시관리계획과 같은 세밀한 규제 중심 계획이라기보다는, 개발의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는 정책계획(policy-led plan)의 성격이 강하다. 구체적인 개발 가능 여부와 조건은 계획 자체보다도 개별 계획허가*(planning permission) 단계에서 종합적으로 판단되며,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 환경영향, 공공시설 부담, 국가 정책과의 정합성 등이 폭넓게 고려된다(주의: development plan은 법정 계획이므로 법적 구속력은 인정되며 다만, 계획허가 단계에서의 재량이 큰 것임.)
* 개발을 허용하는 행위로서 한국 법체계의 "건축허가"에 해당.
이와 같은 구조로 인해 영국의 계획제도는 계획의 예측가능성은 한국의 법정 조닝·상위계획 구속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개별 개발안의 특성과 지역 여건을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반대로 한국의 계획제도는 상위계획에 의해 토지이용과 개발가능성이 사전에 엄격히 규정되어 개발의 예측가능성과 행정의 일관성은 높으나, 개별 사안에 대한 탄력적 대응에는 제약*이 존재한다.
* 건축위원회 심의 대상 건축행위의 범위가 넓어 한국 역시 사실상 재량적으로 운영된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이러한 재량적 계획제도가 계획수립부터 허가까지 장기간 소요되고 주택 공급에 친화적이지 않아 주택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며, 계획제도가 주택 공급을 제약해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일어 계획제도 개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 주택난의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지목되고 있지만, 근본적 원인은 수요(인구 증가, 이민 증가) 대비 공급 부족일 것이다. 그외 원인은 이전 글 참고(세계의 도시들 - 1. 영국의 단기임대 규제)
** 계획 제도 개편 논의는 Planning for the Future 백서와 LURB(Levelling-up and Regeneration Bill) 이후의 제도개선 참고 바람.
케임브리지 지역 계획은 개발행위에 대한 허가 기준인 development plan을 구성한다.
이는 지방계획당국(LPA)이 수립하는 법정 토지이용·개발 계획으로서 일정 기간(보통 15~20년)을 대상으로 주택 공급 목표, 개발 가능한 부지, 녹지 보호, 교통과 기반시설 방향을 정한다. 실제 계획허가(Planning Permission)는 개별 심사로 이뤄지지만, 그 판단의 기준이 바로 Local Plan 및 하위 neighborhood plan을 내용으로 하는 development plan이다. 즉, Local Plan은 ‘도시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 것인가’를 정리한 기본 설계도에 가깝다.
* 현재는 Cambridge City와 South Cambridgeshire District에서 수립한 각각의 지역계획이 시행 중이나, 새로이 수립하는 지역 계획은 두 지역이 공동수립하여 전체 공간을 범위로 시행된다(우리나라의 초광역권, 자치단체 통합 등과 같은 효율성 차원의 인접지역 간 협력·통합 추세는 영국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Greater Cambridge Local Plan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다른 행정구역에 속한 두 지방계획당국이 공동으로 하나의 생활·노동권역 단위의 도시 성장을 다룬다는 점이다. 주요 배경은 다음과 같다.
케임브리지의 지속적인 인구 증가
대학·연구단지 중심의 고용 확대
주택 부족과 주거비 상승
새 계획은 향후 약 20년 동안 수만 호 규모의 신규 주택 공급, 새로운 성장 지역 지정, 교통 인프라 확충, 기후 변화 대응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는 초안 단계와 공공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2026년 말 혹은 2027년 이후 시행되어 기존 계획을 대체할 예정이다.
눈여겨볼 것은 영국 전역의 뜨거운 감자인 주택 공급이다. 케임브리지는 영국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주택가격과 임대료를 보이는 지역 중 하나이며, 공급 부족 문제가 오래 지속돼 왔다. 새 Local Plan은 대규모 신규 주택 부지를 외곽과 신도시 지역에 배정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개발 확대와 함께 그린벨트와 농지, 경관 보존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었다. 주택 공급은 그린벨트 외곽의 부지를 활용하나, 일부 연구단지(R&D 캠퍼스) 계획이 그린벨트 내 입지로 검토·논의되고 있다.
신규 주택과 일자리를 수용하려면 교통 인프라가 함께 확충돼야 한다. Local Plan은 철도역 신설, 버스 노선, 자전거 인프라 강화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미국, 일본, 한국의 조닝 중심 도시계획이 '어디에 무엇을 지을 수 있는가'를 미리 세밀하게 정한다면, 영국의 도시계획(지역계획)은 도시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개별 사업마다 허가를 통해 조정하는 방식을 택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계획 설명회는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다.
마을회관을 빌려 도면을 갖다놓은 정도였고 잠깐 와서 질의를 하고 간 주민 한명 외에는 케임브리지 시 공무원 2명과 필자 밖에 없었다. 계획 도면과 도서를 보며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잡담을 하다 종료시간이 되어 작별했다(이미 여러차례 온오프라인 설명회를 시행하였고 특히 지난주에 인근에서 설명회를 개최하여 — 이 날은 주민 30명 이상 참석 — 오늘은 사람이 안 온 것 같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