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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Jul 21. 2017

언어의 온도 - 인향人香

당신에게 남은 나의 인향人香이 조금은 궁금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향香'이 남는다. 그 향은 그리움과도 같기에 화향花香은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은 만리를 간다.

이 구절은 눈이 읽었으나 가슴에 박혔고, 만나는 이들마다 그들의 향기를 짐작하게 했다. 그들의 말투와 내뱉는 단어들, 그 모두의 시작인 목소리에서 특유의 향을 음미(吟味)해 보기 시작했다.


논쟁 속에서도 냉정히 최대한의 해답을 제시하는 그는 잘 벼려진 쇠와 같은 향이 났고, 하루가 막장으로 치닫는 시간에 지칠만 도 하것만, 생기 있게 재달 대는 그녀에게선 상쾌한 산내음이 풍겨왔다. 각자 그들이 가진 향이 있었다. 각각의 꽃향이 조금씩 다르 듯.


사람은 향으로 남는다는 구절에 발목이 잡혀, 꽤 오래 동안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자연스레 당신이 떠올랐다.


오래된 당신을 다시금 떠올리니 후회와 미안함이 베어 나왔다. 지금의 당신은 계절이 계절로 넘어가는 그 중간쯤의 향을 닮았다. 정확히는 저무는 계절의 흐릿한 향과 가깝다. 완연할 때 모르던 계절의 찬란함은 늘, 늘 거의 저물어 갈 쯤에 새로운 계절이 닥쳤을 때 비로소 깨달으며, 알고 있음에도 지겹도록 되풀이하는 난, 참으로 아둔한 이다.


진득한 향이 되어 남아있다. 시간과 공간을 제약받지 않는 듯 자유로이, 당신과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바람을 타고 밀려온다. 물리적 법칙을 무시한 채 곳곳에서 당신은 향과 함께 피어오른다. 당신은 갔으나 향은 남았다. 그것은 이내 추억, 미련, 그리움, 후회 같은 갖은 감정과 동화되어 피와 살에 진득이 베어 들었다.


인향人香이란 어쩌면, 고정된 고유의 향이 아닌 당신을 기억하는 상대방이 인식함으로써 확정되는 것은 아닐까. 대개 '향'이란 그 앞머리에 향을 정할 대상이 있기 마련이나, 인향人香은 그 앞에 누군가를 새기냐에 따라 다채로이 변모하니 말이다.


당신에게 나의 향은 어땠을까. 지금의 난 썩 괜찮은 향을 남기는 사람이 되었다. 적당히 그리울 만큼에 아쉬움도 베어 나오는 사람이다. 하나, 그 시절 무심했던 난 어떠한 향으로 당신에게 남았을까.


들릴 리 만무할 대답에 끝없이 물음을 남기는 것만큼 우매한 게 없으나, 당신에게 남은 나의 인향人香이 조금은 궁금하다.

화향천리花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꽃향은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은 그리움과 같아서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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