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인 선택이 미래가 되는 삶.
귀신의 퀄리티에만 목을 매고, 공포심을 자극할 장면을 어디에 끼워 맞출지 고민만 잔뜩 묻어난다.
물론, 영화가 무조건 적인 메시지와 뜻을 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 두 시간을 웃음과 공감 같은 즐거운 감상만을 준다면 그것 또한 '영화'로써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셈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포영화만큼은 좀 다르다. 공포물에 취약한 나에게 이 장르는 그저 놀라게 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줄거리를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간 뼈다귀 마냥 방치하는 듯한 느낌이 역력한 장르다. 물에 빠졌다가 구해지자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처럼 다소 어처구니없는 요구일 수 있으나, 확실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갈망하게 된다. 그런 것도 없다면 공포물은 나에게 그저 두 시간을 매 순간 긴장하며 봐야 하는 불편한 장르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았던 작품의 수가 적으니 각종 공포물을 섭렵한 친구 녀석과 달리, 폭넓은 식견으로 평가는 할 수 없으나 이 영화 'IT(그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간간히 향처럼 퍼지는 미소가 관내에 꾸준히 풍겨 났다. 안쓰러움이 표정에서 심심치 않게 드러나기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어떠한 이야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긴장감이 풀어지고 다음을 궁금하게 하는 공포 영화 라니.
단일화된 공포의 대상을 표출하지 않는 영화, 각자가 소유한 공포를 들추어내다.
이십 대 후반의 나이라면 알법한 공포물 '전설의 고향'. 회차마다 새로운 귀신과 이야기를 선보이며 안방을 서늘하게 했고, 때론 눈물짓게 했던 프로그램이다. 회차를 쌓아가며 이야기를 절정으로 끌고 가는 드라마가 아닌, 한 회에 일련의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던 프로그램. 몇 주 방송을 놓치더라도 편히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번 주가 무서웠던 회차라 해서 다음회도 같은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던 프로그램이다.
저 귀신은 안 무섭다. 난 저번 주에 나온 내 다리 내놔 귀신이 진짜 무서웠다니까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니, 개성처럼 공포심이란 것도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사람에게 내장되어 있음을 간파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하면서도 간과했던 정의를 영화 '그것'은 개성이 사라진 채 단일화된 귀신 혹은 악마의 존재만으로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던 타 공포물과 달리, 각자의 공포심을 자극하며 맞춤형 공포 서비스를 제공한다.
어른이 된 다는 건, 빛이 바래진다는 것일까.
어렸던 우리가 제법 어른 냄새를 풍기며 세상에 부딪힐 때, 때때로 우리는 말한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 온전히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사회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은 '허튼소리'에 불가하고 심하게는 어른 답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버리기에, 우리는 자신이 가진 특정 대상에 대한 '겁'을 숨기고 자신을 남들과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높낮이 없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공포'에 국한된 것이 아닌 더 넓은 의미로는 개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가, 실제론 반강제적으로 자신의 구조를 강요하고 우리가 개성이 아닌 보편화된 일원이길 바라는 속내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언젠가 JTBC의 '말하는 대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하이퍼 리얼리즘 화가 정중원'씨는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예술 작품으로, 반짝반짝 빛이 났었죠. 그러나 우린 평생을 걸쳐 자신을 공산품화 하며 살다가 죽습니다. 그럼 적어도, 한정판 정도는 되어야 덜 억울하지 않을까요?"
작가의 이 발언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통용될 수 있는 말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영화는 작가의 말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각자가 가진 공포가 실체화되다.
극은 초반부터 일명 '루저 클럽'의 일원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한두 명도 아닌 다수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쓰지만, 단 한 명의 아이도 멋있게 그려내지 않았다. 말을 더듬는 빌, 뚱뚱한 벤, 결벽증 에디, 까무잡잡한 피부의 마이크, 여자로서 모욕당하기 일쑤인 베벌리와 겁 많은 스탠까지, 각자의 약점을 노골적으로 그려내어 극의 주변 인물을 더불어 관객에게까지 표출시킨다.
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약점을 끄집어내어 극심하게 몰아넣는 '헨디'라는 인물과 '페니 로이즈(광대)'까지 등장시킴으로써 아이들을 더욱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자신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가 그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타인 앞에 노출된다면, 약점은 공포심으로 각성하게 된다. 그 순간을 광대는 놓치지 않고 약점을 실체화하여 그들을 압박하고, 공포심을 키워 그것을 취한다. 결국 아이들은 점차 공포에 무릎이 꺾이고 도피를 희망하게 된다.
한정판으로 살 것인가 공산품으로 살 것인가
영화 속 아이들과 어른들의 차이는 명과 암처럼 확연한 대비를 보여준다. 겁 많고 약점 투성이의 루저 클럽 소속의 아이들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도, 근심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오직 그 순간에 온 힘을 다해 즐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절벽 끝에서의 다이빙과 속옷만 입은 채 행하는 물장난. 자신들을 괴롭히는 녀석에게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까지. 아이들은 매 순간 친구를 우선에 두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더러운 것은 더럽다 말하고, 자신의 달콤했던 첫 키스를 당당히 말한다. 좋아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시詩로 들러내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한계'란 존재하지 단어였다.
반면 어른들은 달랐다. 그들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영상은 어둡고 칙칙했다. 아이들을 자신의 판단하에 두어 휘두르기 바빴다. 아이들이 보내는 시간과 그들의 의견은 불필요하고 낭비 같은 것이라 치부했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를 본채 만채하며 지나치고, 자신의 울타리 안에 아들을 가두고, 자식의 말이 아닌 타인의 말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며 어른들은 '한계'에 갇혀 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친구를 구하지 않은 채 떠난 다면, 평생을 평범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 죽게 해줄게. 하지만, 지금 친구를 구하려 한다면 너희들을 모두 죽일 거야.
광대는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평범함을 유도하고 개성의 상실을 강요한다. 그의 의견에 긍정을 표한다면,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름없는 한계에 갇힌 삶을 살게 되어버린다. 하나, 한계를 부정하고 맞선 다면 진짜 '삶'이란 것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의적인 선택이 미래가 되는 삶을 말이다.
난 더 이상 네가 두렵지 않아.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매 순간 긴장감을 조성하여 관객을 웅크리게 한채 끌고 가지 않는다. 때때로 이질적일 정도로 밝고 화사한 장면과 베벌리의 미소 같은 순수를 영상에 펼치고, 꾸밈없는 아이들의 언행으로 긴장감을 해하고 편안한 웃음까지 선사한다.
'공포물'이라는 생각을 망각하게 할 정도로 말이다. 하나, 눈치라도 챈 듯 긴장감이 풀어질 때쯤엔 무방비로 노출되는 여우비처럼, 공포물임을 자각하게 하는 장면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관객과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이러한 부분이 영화의 여운을 더 키웠다고 생각한다. 그저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끝을 어둡게 마치는 타 영화와 달리, 관람 후에 아이들의 맹세와 성장, 베벌리의 미소, 한 편의 시詩를 남기며 가슴을 채웠다. 잔잔한 미련을 남겼다.
한 사람의 긴 강연 하나를 본 듯한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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