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었다.

중의적 단어

by 전성배

바깥보다 안이 더 분주한 날. 밖 보다 안의 밀도가 더 높아지고 '남'보다 가족의 유대가 더 깊어지는 날. 바로 명절이다. 일 년에 몇 번 보기도 어려운 먼 가족은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만 되어 있을 뿐, 그저 아는 지인 정도에 그칠 만큼 서먹서먹한 관계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명절은, 좋은 핑계가 되어 그들을 한 곳으로 끌어 모은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어찌 됐든 가족이지 않으냐"라는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문장으로 그들의 애愛를 빚는다.


명절은 또 다른 이름으로는 '가족의 날' 로써 과거부터 이어왔다.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타인과의 물질적 거리의 위화감이 죽어가는 세상이라 한 들, 명절이면 도심을 빠져나가는 차량과 불을 꺼둔 가게, 한산해지는 거리와 대비 적인 북적한 집안의 모습 만큼은 과거와 다를 바 없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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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은 "우리가 죽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작은 휴대폰 안에 온 세상을 가리켜도 모자랄 시선을 자의적으로 고정 시켜둔 채, 자발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정작 현실은 외면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편의와 효율에 가까워질 수록 적막함이 짙게 깔리는 세상.


하나, 그럼에도 명절 만큼은 변함없이 아날로그에 멈춰있다. 과거 어느 시점에서 성장을 멈춘 고리타분한 관념이 기분 좋게 이어지고 있다.

좋다 그 날이. 큼지막한 하얀색 달력에 눈에 띄게 빨간색으로 칠해진 '명절'. 그 날이 다가오는 요 맘 때부터 설렘이 가슴을 구름에 태운다.

하지만, 모두 다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한적한 거리에 남은 아스팔트와 불 꺼진 상가와, 엔진의 열기가 지나치게 식어버린 차량들처럼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의 쓸쓸함도 짙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친구 집에 덩그러니 자리한 금빛 보자기에 싸인 사과 한 상자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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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면 차례를 위해 구매를 하거나 선물을 받는 등, 갖은 이유에 의해 집집마다 사과 몇 알이 냉장고에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이 식사를 마무리하고 누구 하나 열외 없이 안방에 모이면 어머니와 이모는 소쿠리에 사과, 배, 포도 등을 담아 가져와 검지 손가락만 한 과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과일의 옷을 얇게 벗기기 시작 하신다. 이내 속살이 훤히 보이는 과일이 완성되면 먹기 좋게 조각을 내어 작은 포크로 하나씩 꿰뚫어 각자의 손에 들려 주신다. 그럼 자연스레 반년 동안 쌓인 이야기가, 이 작은 과일 몇 조각과 함께 장대하게 펼쳐진다. 화목을 불러와 각자의 기억에 또 하나의 정情을 쌓는다.


사과 뿐만이 아니라 과일은 이렇듯, 가족의 정情을 쌓는 하나의 심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반면, 그날 친구 녀석의 집에 빛이 바랜 금빛 보자기에 싸인 사과는 어떤 의미로 그 녀석의 입에 들어갔을까. 이것과 똑같은 모양의 사과는 어딘가에선 어떤 이들의 정情을 중적하고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쓸쓸함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 녀석이 투박한 손으로 깎아준 사과 한 알과 큼지막한 배 한 알을 둘이서 말없이 깨물었다. 좋은 맛을 내니 되려 이질 적이었다. 조금은 덜한 맛을 내도 됐을 것을. 투정이라도 부리며 먹으면 조금은 덜했을 것을.


그 날 녀석은 말했다.

명절은 매년 심심하다.

녀석이 말한 '심심'이라는 말에서 '쓸쓸'을 엿들었다. '심심'이라는 단어와 동시에, 들리지 않게 말하더라도 알아 달라는 듯 조용히 가슴에 들려왔다. 의중에 피어난 녀석의 본심이 느껴졌다. 소란스레 보내는 나의 명절을 말해줄 수 없었다. 조용히 사과를 씹기만 했다.


단 맛이 전부인 사과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목 뒤로 넘어가는 단 맛에 꽁무니를 뒤따라 왔다. 속 없이 발그레한 빨간 사과가 어딘가 에선 '정情'으로 어딘가 에선 '적적寂寂'으로 씹히고 있었다.

명절에 놀러 올게. 술 한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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