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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Oct 07. 2017

보은군 중티리

가을 아침, 이미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을 살고 있을 지도.

이 뛰는 가슴을 어떻게 글로 담을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감고 그날의 아침과 그날의 바람을 느끼고 싶다. 글로 담아내는 동안 뜨고 있어야 할 내 눈이 아쉬울 만큼. 이미 지나간 과거에는 개의치 않으나, 이번만큼은 그날에 사로잡혀 죽고 싶을 정도로 그리움이 너무도 크다.


나는 오늘 그곳의 글을 쓴다. 글을 담아내는 동안 뜨고 있어야 할 눈이 아쉬우나, 그 날을 내가 아는 모든 말로 멋지게 기록할 것이다.


하늘과 가장 근접한 성지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 닿기 위해 전날 밤까지 달렸던 그 긴 시간들은 지치고 힘들었으나,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풍경은 분에 넘치는 보상이 되어 다가왔다.


시리에게 아침 6시에 깨워 달라 당부를 해두고 잠들었다. 밤에 마신 소주 한 병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꽤나 벅찼기에 기절 하 듯 그 밤을 잠들었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퍼런색의 빛이 반 투명한 유리창을 뚫고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시간은 5시 54분. 시리에게 부탁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눈을 떴다.


참 오랜만이었다. 얼마 자지 못한 아침이 이리 개운 했던 것은. 나는 눈을 뜨자마자 가방 속에서 칫솔과 스킨, 수분크림, 수건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에는 겨울 아침에나 느낄 법한 서슬 퍼런 냉기가 자욱했다. 몽롱했던 정신이 눈을 뜨는 듯한 느낌. 그리고 한쪽 벽면에 자그맣게 뚫린 창문에는 중티리에 산세가 보였다. 지금껏 보았던 어떤 그림 보다도 멋진 한 폭의 동양화처럼 신비롭고 근사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씻은 다음 두툼한 니트를 입고 나가야 했다. 선선한 아침을 서둘러 만끽하기 위해.

씻은 다음 전날 입었던 옷을 한번 더 입고 밖을 나섰다. 자줏빛의 구름이 산 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피아노의 가장 높은 건반을 치듯 쩌렁쩌렁하게 들려왔고, 다 늦은 계절이었으나 매미도 한몫을 보태며 울고 있었다. 저 언덕 위에 위치한 축사에서는 소가 닭을 대신에 아침 울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새벽의 냄새에는 풀내음이 진득하게 배어 있고, 아스팔트의 도로에는 차 한 대가 다니지 않았다. 유년 시절에나 밟아 보았던 이런 곳을 나이가 들어 다시와 걸으니, 황홀해 죽을 것만 같았다. 가을 무렵이면 매일 아침 찾아올 이곳의 이런 날들이 너무나 부럽고 우러러졌다.


걷는 내내 걷고 싶어 졌다. 보는 내내 보고 싶어 졌다. 사랑하게 되니 더 사랑하고 싶어 졌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챙겨가지 못한 DSLR 대신 아이폰의 작은 카메라로 모든 걸 담았다. 퍼런 우물가, 쓸쓸한 정류장, 인위적인 아스팔트 길을 이겨내고 갈색의 흙에 보기 좋게 피어난 코스모스 까지. 모든 게 예뻤다. 휴대폰으로 나오는 아이유의 '가을 아침'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순간들 뿐이었다.


그녀가 부르는 삶은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 평범한 가을 아침을 깨우는 바람과 새의 울음, 빛을 끌고 오는 구름들이 만드는 풍경과 새벽이 물러가기 전 남기는 흔적 같은 냄새들만 있다면, 그만한 기쁨은 없는 것이라 말하는 그녀의 노래는 그날의 아침을 미친 듯이 각인시켰다.


특별함과 멋스러움을 갈망하는 삶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나, 그러한 삶을 갈망하는 동안 지금의 내가 지치고 주저앉아버리기 일 쑤 라면, 정녕 그 삶을 동경하며 살아가는 내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중티리의 아침은 그 물음을 던졌다. 자신이 선사해줄 수 있는 최고의 아침은 이것이라 말하며 말이다. 그리고 나는 보기 좋게 그 언변에 한순간에 동화되었고, 동경하게 되었다. 인생의 최고를 그 순간 이룬 것 같은 성취감이 들었다. 이만한 삶이라면, 난 이미 충분히 살아낸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좋았다. 인생의 최고점을 맛본 듯 황홀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는 당신에 비해 나는, 콧웃음 칠 정도로 썩 멋지지 않은 꿈을 좇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멋스러운 옷으로 치장하고 멋진 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높은 빌딩 사이에 가장 멀끔한 길을 걸어 번듯한 식당가에서 보내는 저녁은 인생에서 분명 정점을 찍는 최고의 순간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탑을 쌓고 지키며 살아가는 삶 보다, 쌓아 올리기만 하려 했던 이 땅을 좀 더 사랑해야 함을.


이미 우린 최고의 순간을 살고 있다. 먼저 살아낸 그분들이 늘 말했던 '고향'이라는 이름의 정취가 말하는 근본적인 의미는, 근사한 것들을 세워 편리와 윤택한 삶만을 갈망하는 것이 아닌, "이 땅 위에 자고 깨는 것 또한 어떤 아름다운 것보다 감명스럽고 행복한 것"이라는 것이다.

밟고 있는 곳. 쥐고 있는 것. 이미 충분한 순간을 살고 있다는 의의


당신과 내가 사는 이 순간이 이미 최고임을 믿는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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