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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Oct 16. 2017

스마트팜

척박해질 세상

"가을과 겨울 무렵의 이른 아침은 파란색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이것으로 간밤에 어둠이 참아낸 냉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지.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건 햇빛 대신에 파란색일 정도로 그 색은 상당히 짙어.


피곤한 몸과 무거운 눈꺼풀을 떼어내기는 힘들지만, 현관문을 열어 바람 소리보다 큰 새의 지저귐과 정신을 때려 깨우는 냉기를 느끼면 순식간에 온몸의 리듬이 깨어나게 돼. 그럼 이제 어둠과 함께 남몰래 밤의 추위를 참아낸 자식들이 어디 아픈 데는 없는 지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누구보다 빨리 시작한단다. 농부의 삶은 그런 것이야. 평생 어린 자식들을 키우는 것과 같지.


매일 매일을. 허리가 굽고 손가락의 마디는 두꺼워지고, 머리가 하얗게 세지더라도 이 어린 자식들을 키워 내는 것이지. 농부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란다."

이런 농부의 삶을 원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자발적으로 평생을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생生'을 온전히 자식 만을 키우며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들을 보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다른 생을 위해 살아가는 마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삶이 생각보다 빨리 가벼워지고 그저 '생'의 한 부분으로 그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한다.

스마트 팜의 등장

최근 몆 년 사이 농업계에 화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얘기이다. '스마트 팜'이란 'IOT'라 불리는 사물 인터넷 기술을 이용하여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설의 온도·습도·햇볕량·이산화탄소·토양 등을 측정 분석하고, 분석 결과에 따라서 제어 장치를 구동해 항시 최적의 상태로 유지 함으로써 작물을 이상적으로 키워내는 무인 기술을 말한다. 이것은 모바일 기기와도 연동됨으로써 실시간으로 원격 관리도 가능하게 하는데


이전까지는 그저 실현은 가능하나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던 기술이었으나, 급속도로 빨라지는 유행의 전환처럼 기술의 진보 또한 지체 없이 달리는 덕에 일부 기업에서는 소규모로 스마트 팜을 실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업계는 빠른 미래에 시간, 인력, 비용 부분에서 자유로운 농부의 삶이 가능하리라 예상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이건 차가운 겨울이건 매일 아침 농작물을 살피기 위해 집을 나서고, 넓은 재배지에 인력과 농기계를 투입해 관리하는 수고가 아닌 충분한 수면으로 아침을 자연스럽게 눈 뜨고, 식사를 하는 식탁 위에서 신문을 펴는 것이 아닌 모바일 기기를 꺼내 작물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편리한 삶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기술은 맛의 예측이 어려운 농작물의 단점을 보완하여 맛의 평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향후 비용, 인력 문제에서도 자유로워져 궁극적으론 사람이 키워내는 것보다 더 저렴하고 맛 좋은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 된다.


하지만, 마냥 달갑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난 불현듯 지난 날 보았던 인공지능이 시를 지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마이크로 소프트 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샤오빙'이 수 천편의 시를 학습한 뒤 2,760시간 동안 1만 편이 넘는 시를 지었고, 이 시를 담은 시집이 발간까지 되었다는 기사였다. 당시 기사의 첫 머리에 실렸던 한 편의 시는 "어떤 이가 지었을까?"라는 물음이 생길 정도로 수 차례 되뇌며 좋았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시를 기계가 지었다니.. 이젠 인간이 동물과 기계보다 궁극적으로 우위를 점 하는 근본인 '정서'마저 카피될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 순간 한숨이 나왔다.


나는 생명이 갖는 특질과 감성이 소실되는 것이 두렵다. 기술이 발달해 더 이상 사람의 손이 아닌,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와 스마트한 교육 환경이 조성 됨으로써 언젠간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사실이 덜컥 겁이 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를 형성하는 공감 능력과 사람을 울리는 기술인 감성은 사람이 사람에게 즉, 오직 생명이 생명에게만 전승할 수 있는 '초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명이 생명에게 전하는 것이 아닌, 생명에게 배운 무생물이 다시금 생명에게 전한다니. 그것이 맞는 걸까?

말은 입을 통할 수록 와전 된다. 진실은 왜곡되고 불확실한 사실들이 기정사실화 되어 말에 살을 찌운다. 하지만 인간은 그럼으로써 옳고 그름에 대해 고뇌하고, 실수를 범하나 후회하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싸운다. 모든 인류가 반드시 겪는 사랑과 비슷한 평생의 과제 같은 것. 


평생을 걸쳐 수행하는 과제는 모두 다 다른 답을 찾아내기에 인간은 한명 한명이 다 다른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혹여나 찾지 못한 답은 선대가 후대에게 맡긴다. 이것은 생명이 이어지는 동안 계속 해서 전해지는 누군가의 '질문' 같은 것이다.


하나, 기계가 사람을 가르치게 된다면, 정서의 소실을 넘어 선대와 후대를 잇는 연결점의 끊김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영화 '매트릭스'가 최후의 미래를 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이 같은 것을 그리는 척박한 세상.


나는 사물 인터넷을 통해 길러질 '농작물'이라는 생명에 인간의 '생'을 대입해 봤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사람, 다소 엉뚱한 사람, 다정한 사람 등 셀 수 없이 많은 개성의 사람들이 엉켜있는 세상이 오직 '좋은 사람' 하나로 통일 되는 것이 이상하다. 


생명은 늘 좋은 인물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악과 선에 기댄 사람, 정의와 불의에 수긍하는 사람 등을 엉키게 함으로써 불완전하지만 위대하기도 한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 생각한다.

마냥 편하고 맛 좋은 농작물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자식을 키워 내는 부모의 고난처럼, 농작물에 담기는 농부의 '정情'이 진정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곧 농업이 갖는 인간과 같은 '특별함'이 아닐까.


기술의 발달이 그 특별함의 소실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하지만 미래를 달리는 세상이 마냥 뒤를 돌아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부디, 정신 만은 이어지길 바란다.


※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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