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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UIT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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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Oct 10. 2017

곶감과 감말랭이

빛이 귀한 거리에 흔들리던 감나무

얼마 전 이었다. 슈퍼문이 뜰 거란 소식은 분명 없었음에도 큰 달이 떡 하니 밤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씨가 될 말이 있어야 기대감이 생기고, 기대감이 있어야 대상에 도달했을 때 성취감도 생기 것 만, 기대하지 못한 등장에 그저 놀라 발을 멈춰 넋을 놓고 볼 뿐이었다.


짙은 노란색의 달은 표면에 거뭇거뭇한 바다를 내세우며 위용 같은 것을 뽐내고 있었고,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번화가의 빛은 밤하늘마저 희끗희끗하게 좀 먹으려 하였으나, 큼지막한 저 달은 파고드는 낯선 빛에 으름장을 놓으며 더 크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저 달이 더 강해질 수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곧 집집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가 한 그루씩 서있는 주택가에 들어 섰다.


고장난 가로등이 띄엄띄엄 자리해 있어 빛이 귀한 거리였고, 그 곳에서 달빛은 제 집 안방인 냥 더 강대해졌다. 바람도 눈치를 챈 듯 달빛이 나노는 골목까지 파고 들었다. 점차 집집마다 자란 나무의 머릿결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드문 드문 노랗게 익은 감도 무거운 몸뚱이를 점잖게 흔들기 시작했다.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곶감처럼 천천히, 천천히. 


곁을 걷던 당신의 갈색 머릿결도 함께 흩날렸다.

pexels

곶감과 감말랭이가 늙어가는 계절


시간을 들여야 완성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수 천 번의 손길을 주어 열로 빚는 도자기가 그렇고, 굽어진 허리와 휜 손가락의 역경이 무치는 김치가 그렇고, 땅이 키워 바람이 빚는 곶감과 감말랭이가 그러하다.


요즘은 계절이 가을을 차려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속해서 맵시를 고치지만, 계절이 떠나는 뒷모습을 신경 쓸 때쯤이면 그 날 밤 커다란 달빛 아래 흔들리던 나무에 달린 감처럼 말라갈 녀석들은 상주에서는 곶감으로, 청도 에서는 감말랭이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 맘 때 청도와 상주에는 감이 익어가며 드러내는 시설(말린 감 표면에 생기는 흰 가루) 덕에 단내가 지천에 깔리겠지.

이 둘은 공통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이면서도 다른 맛을 내는 특이한 녀석들이다. 곶감과 감말랭이는 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다는 건 같지만, 말리는 방법과 완성된 모습에서 차이가 나서 인지 확연히 다른 맛을 낸다.


곶감


이전에 칼럼 '곶감' 편에서 언급 했듯이 곶감은 상처 없이 무르지 않은 단단한 감 만을 추려 껍질을 깎아 전용 꼬챙이에 꿰거나, 전통 방식인 실에 엮는 방법을 이용해 감을 줄줄이 달아 가을 바람이 잘 불어오는 장소의 공중에 걸어 두면 사람의 역할은 대부분 끝난다. 나머지는 바람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며 완성으로 이끈다.


그렇게 약 45일이 지나면 수분 함량이 절반 정도로 떨어진 반건시 상태의 곶감을 맛볼 수 있으며, 말리는 시간을 더 들인다면 수분이 더 날아간 건시 상태의 곶감을 얻을 수 있다.

짙은 갈색의 촉촉한 속살이 내는 달콤함. 긴 날 동안 쏟아낸 정성 탓에 더 귀한 맛을 내는 작품 같은 과일로 변모한다.
pexels

감말랭이


감말랭이도 단단하고 무르지 않은 감을 이용하는 것 까지는 곶감과 같으나 (약간 무른 감도 가능하다), 감의 껍질을 깎아 통으로 말리는 상주 곶감과 달리 껍질 깎은 감을 4~8등분을 내어 말리며, 소요 시간과 방법에서도 곶감과 다름을 보인다. 감말랭이는 조각 낸  살점을 말리는 것이기에 곶감보다 더 빨리 말릴 수 있고, 자연 건조한 맛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기계를 이용하여 말리는 것 또한 가능하다. 즉, 건조기만 있다면 가정집에서도 감말랭이를 만들 수 있다. 


감을 말리는 마음은 곶감과 다를 바 없으나, 시간과 정성은 곶감보다 덜하기에 말랭이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래도 소비자가 기준 500g당 7천 원~1만 원 정도다.)


귀한 맛을 내는 곶감과 달리 감말랭이는 분명 가볍지만, 과자보다 더 맛 좋고 건강하게 심심한 입을 달랠 수 있어 불편하지 않은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와카레미치' iPhone 7

똑같은 시작, 다른 칭호


상주의 곶감은 씨가 있는 감을 사용하는 반면, 청도의 감말랭이는 씨가 없는 감을 쓴다. 씨의 유무가 곶감이 되느냐 감말랭이가 되는냐를 결정 짓지는 않으나, 청도의 감은 '청도 반시'라 이름 붙을 만큼 씨 없는 감으로 유명하기에 껍질을 깎아 조각 내는 작업이 용이해 감말랭이를 주로 만들어 출하 한다고 한다. (씨 없는 연시로도 유명하다.)


반면, 상주의 감은 대부분 씨가 있는 것이 많고, 최고 품질의 곶감을 얻을 수 있는 지리적 특성이 작용한 덕에 두 지역은 서로의 장점을 인정이라도 한 것처럼, 청도 감말랭이와 상주 곶감이라는 타이틀을 나눠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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