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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UIT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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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Dec 09. 2017

제주 감귤

슬프고도 찬란한 날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노을과 바람조차 특별하게 만드는 제주에서, 조금 다른 걸 보고 싶었다. 한라산과 산책거리, 분위기 좋은 카페나 음식점 같은 일상적인 명소가 아니라, 그 땅에 모든 걸 맞으며 자라는 귤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동안 봐왔던 예쁘고 고운 자태로 상자에 담긴 귤이 아니라 예쁜 녀석 못난 녀석 구별 없이, 높고 낮음의 신분 없이 매달린 최초의 귤을 보고 싶었다. 


그 생각 하나로 나는 제주의 한 면과 닮은 바다 근처 인천에서 천혜의 땅으로 향했다.

늦은 밤 도착한 제주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묶고, 이튿날 아침 일찍 귤밭으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던 아침은 선선한 바람이 사방에서 들이쳤고 햇빛은 봄날의 어느 순간을 그대로 베껴 놓은 듯이 따뜻하기만 했다. 버스 타기와 걷기를 두 번 가량 반복하다 마지막은 주인 모를 귤밭 사이에 만들어져 있던 낮은 담장의 길을 걸으며 최종 목적지에 닿았다.


도착한 그곳에는 담장에 가려져 머리만 보였던 귤나무들이, 가림막 없이 파란 하늘 아래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온통 초록의 잎새였고, 하늘은 구름이란 장식이 거추장스러웠는지 죄다 밀어내어 밋밋했으며 햇빛은 자제력 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별거 없는 숲 속의 한 장면과 유사했다. 하나, 그럼에도 장관이었다. 가장 평범한 것이 아름답다 말한 이는 분명 이러한 광경을 맞닥뜨리고 말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성능을 가진 카메라 라도 이 광경을 똑같이 담을 수는, 아무리 솜씨 좋은 미술가라도 이 순간의 벅차오름까지 담아 낼 수 는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걸 알게 되니 욕심 많은 사진기를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나는 걸쳤던 코트를 한쪽에 벗어두고 가벼운 가디건 차림으로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귤밭을 하염없이 거닐기 시작했다.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는 이미 귤이 노랗게 익어 있어, 작업을 하는 할머님들의 손길이 이른 시기부터 제법 빨리 움직이셨다. 컨테이너 박스에는 귤이 수시로 부어지고, 박스는 차오르기 무섭게 한 쪽 공터에 키 높이 만큼 쌓여갔다. 그동안 귤을 제 몸에 아슬아슬하게 달아두었던 나무들은 쉼 없이 잎새를 치대며 소리 내어 울었다. 자식들을 보내는 어미의 낮은 탄식과 같이.

농부님은 귤을 따는 날이면 매번 이렇다고 말했다. 하늘이 청렴하고 바람이 점잖게 불어올 때만 작업하기 때문이란다. 한데 수십 년을 반복하니 이제는 귤을 따는 날에 맞춰 하늘이 알아서 끝없는 푸르름을 앉히고, 잎새가 울 정도 만큼의 강하지 않은 바람을 불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듣기 좋았다. 이 땅에 자라는 모든 것은 그 만큼의 생명을 갖고 태어난다 믿기에, '나무'라는 어미에서 '자식'이라는 열매를 따내는 슬프나 기쁜 일을, 하늘이 알고 위로 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주는 가림막 역할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어딜 가도 바람이 강하다. 햇빛은 시시각각 빛의 양과 방향을 바꾸어 예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귤을 따내는 날이면 그리도 하늘이 점잖고, 포용스러운 날이 없다고 한다.


어미에서 자식을 떼어내는 슬픔까지도 끌어 안을 만큼.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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