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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달을 잡아먹은 날

그날 밤의 별은 찰나였지만, 인생 최고의 순간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by 전성배

많은 별을 한 순간에 본 인간이 얼마나 몽긍몽글해지는지, 이번에야 알았다. 마음이 말랑 말랑해져 뭉그러질 만큼 그 날밤의 별이 잊혀지지 않는다. 별이 달을 잡아먹은 날이었다. 손톱정도의 크기밖에 남지 않은 달은 흩어진 구름들을 호위 삼아 좀 먹혀 남은 자신의 몸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녀석의 빛은 절대로 반쪽짜리 일 수 없을 만큼 맑고 환하기는 했다.


그리고 그 곁을 포위하며 맴돌던 별들이 수 억 개는 되어 보였다. 이토록 많은 우주의 별을 티끌 조차 되지 않는 인간의 눈으로 한 순간에 목격하다니, 일생의 사건 같았다.


그날 밤, 별과 달빛이 산 중턱에 있던 펜션에 내려앉으니 모든 빛을 꺼뒀음에도 모든 것은 회색빛에 감싸여 눈에에 훤히 다 보였다. 잿빛이 밝혀주던 새벽 4시. 내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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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진다" "오늘은 별밤스럽다" 대체 어떤 말로 그 날의 별들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도통 이 작은 머리로는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들과 주말을 이용해 가평으로 놀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장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고 사내놈들 치고는 꼼꼼한 우리들이었기에 고기며 닭이며 그것에 필요한 부가 재료들, 하룻밤을 보내기 위한 필수 용품들까지 모하나 빠짐없이, 과함 없이 챙겼다. 출발 전부터 기분이 하늘 어디쯤에 있을 만큼 깔끔한 시작이었다.


2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펜션은 산 중턱에 있었다. 도착시간은 오후 3시 30분쯤. 해를 서둘러 데려가는 가을이기는 했으나 그곳의 낮은 벌써 부터 떠날 준비를 하는 듯, 펜션을 둘러싼 작은 산들을 그들 뒤에 더 높게 솟은 산을 이용해 그림자를 드리워 흑색에 물들였고, 더 키가 컸던 산에만 가을과 닮은 주황색의 햇빛을 내려앉혔다.

언뜻 보면 저 거대한 산이며 나무며 입사귀들이 우리와 우리가 머물 이곳을 감싼 듯했다. 음악은 자는 모든 것들을 깨우지 않으려 오직 잔잔한 곡만이 엄선되어 흐르고 있었다. 평화의 단면 같은 곳이었다.


한쪽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마리의 진돗개마저도 평화에 찌든 이 마냥 한 번에 짖음도 날뜀도 없이 멍하니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싱겁다 여길 수 도 있는 녀석들 마저 마냥 귀여울 만큼 우리도 곧 동화되고 말았다.

우리는 언뜻 보면 작은 섬마을과도 같은 그곳을 시간 단위로 걸어 다녔다. 숲에 놓인 의자들이며 돌 위를 가로질러 고여 있는 물가마저 모든 게 다 평화와 직결된 그곳을 걸어 다녔다. 해가 저물 때까지 이야기를 또 한 명에 벗으로 삼아 걸었다. 이 곳만의 저녁이 찾아올 때까지.

뒷걸음질 치는 햇빛에 맞춰 펜션에 들어가 오늘 하루를 근사하게 장식할 맛 좋은 것들 만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재료를 손질하고 친구 녀석은 요리를 준비하고 나머지 녀석들은 주위를 정리하고, 모든 역할이 누군가 정해주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어린 시절과 사뭇 다른 '알아서'라는 말 하나에 편하고 깔끔한 저녁이 준비되어갔다.

그 날의 밤은 그곳을 마치 호위무사처럼 둘러싼 산에 의해 따뜻함마저 입구에서 막힌 듯 추웠다. 테라스로 들어오는 냉기가 여간 차가운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린 각자 외투를 입고 자리에 앉았다. 고기를 굽고 준비한 요리를 먹으며 술잔을 맞댔다.


이 좋은 날 이 좋은 시간 이 좋은 자리에는 어떤 섭섭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즐겁고 웃음 나는 이야기. 너와 내가 했던 멋스러운 일들 만을 이야기했다. 그 날을 티끌 없이 최고의 날로 만들려는 우리 모두의 무의식이 만든 행동들이었다.


그렇게 술 취하는 밤이 무르익었다.

새벽과 밤이 교차하는 12시. 간단한 불꽃놀이까지 마친 우리들은 거실에 앉아 소소한 게임과 수십 번은 봤을 영화 '타짜'를 보며 영화의 모든 대사를 예언자 마냥 떠들었다. 스스로가 웃길 정도로 토씨 하나 틀림없이 완벽하게 대사를 구사하던 우리는 참 엉뚱하고 웃겼다.


모든 게 완벽한 날이었다. 딱 하나, 그 밤을 수놓을 거라 기대했던 별의 부재만 뺀다면.


빼곡할 별들을 기대했으나, 펜션의 외벽마저 빛이 운명한 12시였으나 밤하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얀 입김이 혹여나 밤하늘을 가릴까 숨을 참고 고개를 빳빳이 들어도 별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이 컸다.


하나, 그 밤에 보이지 않는 별들을 소리치며 불러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체념한 채 피곤함이 우리를 재울 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새벽 3시를 넘겼다. 하나 둘 녀석들이 잠자리에 누웠다. 나 또한 피곤한 몸을 눕혔다. 그리고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끄지 않은 테라스의 불이 생각나 녀석들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레 휴대폰 빛에만 의지한 채 테라스로 나가 스위치를 내렸다. 그런데, 꺼진 불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환했다.


별은 분명 부재였고, 여명이 밝을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던 4시였다. 그런데 어찌 밝을 수 있었던 걸까.


테라스에서 밖을 통하는 문을 열고 나섰다. 겨울이라 착각할 만큼 냉기가 피부로 스며들었지만, 참고 이 빛의 시발점을 찾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곧 입이 벌어지고 두 발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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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보다 더 많은 빛이 하늘에 빼곡히 떠있었다. 달빛은 어디 가고 오직 별만이 가득했다. 은하수를 그릴만큼의 양이 아님에도 하늘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흥분한 나머지 선잠에 빠졌던 친구들을 깨웠다. 분명 이 별들은 인생에서 쉽게 보지 못할 장면을 그리고 있었으니, 함께한 이들과 함께 봐야만 했다.


우리는 이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꺾인 고개가 뻐근해질 만도 하것만 누구 하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별은 제 밝기에 따라 등급으로 나뉜다고는 하나, 단 한 번도 별의 밝기의 차이를 밤하늘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 밤은 모든 등급의 별들이 제 각기 빛나고 있었다. 어떤 별은 독단적인 성향을 가진 듯 홀로 빛났다. 가장 여린 것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리를 지어 빛나고 있었고, 어떤 별은 규칙적으로 정렬하여 '별자리'라는 한 단계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고개를 하늘에 고정한 채 펜션 주위를 도니 건물의 모서리에 가려져 있던 초승달도 보였다. 주변에 잔 구름을 호위 삼아 좀 먹힌 자신을 지키는 달은, 반의 반쪽이 난 몸에도 불구하고 별빛보다 환했다. 별의 수가 이토록 많지만 않았다면 이 밤도 지난 밤과 다를 바 없이 달이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그날 밤만은 별빛이 완벽히 달을 이긴 밤이었다.


별 하나하나에 가장 예쁜 칭찬이 될 수식어를 붙여 주고 싶었다. 수 천만 수 억 개가 된다 한 들 하나하나 예쁘다 말해주고 싶은 밤이었다. 별과 별을 선처럼 잇는 별똥별까지 보였다.


진정 영화 안에 있다고 해야 맞을 밤이었다.


여행의 완벽한 완성이 된 밤. 우리는 얼마간의 시간 동안 말없이 각자가 알고 있는 모든 예쁜 말을 동원하여 별들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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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삶에 꿈이나 목표, 이상 같은 것을 세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이유를 산정하고 지닌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결국 '행복'을 지향한다. 모든 것에 최종 도달점은 '행복'이라는 말로를 맞이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그 날 아주 잠깐 최종 도달점에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우주에서 티끌 조차도 되기 어려운 인간인 우리가, 하나하나가 우리 위에 서 있는 신神보다 더 거대할 별들을 일 순간에 전부 목격했으니 말이다. 가슴이 벅차다 서로 입을 모았다. 그 말 밖에 우리는 하지 못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행복에 도달했던 이들이 하나 같이 말했던 가장 평범한 대답을 우리도 하고 있었다. 우린 그날 밤, 각자 최고의 행복에 찰나였으나 분명 도달해 있었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7 / 별 사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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