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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미 꽃이었다.

꽃 에는 한 마리에 벌만 날아들지 않는다.

by 전성배

여름보다 더 한 빛이 었으나, 그것과 달리 뜨겁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날이었다. 햇빛을 피할 그늘조차도 무용지물이 었던 삼시三時. 태양은 가장 높은 곳에 걸려 있었다. 가을을 따라 구름과 함께 떠다니던 태양이 잠시 멈췄던 시간. 따뜻한 털을 두른 나는 숲을 헤집고, 낮은 벼를 가로질러 어딘가 옅게 풍겨오는 너의 향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발자국도 누군가의 목격도 없는 무흔無痕의 상황 속에서 오직 내가 아는 너의 향에만 집중한 채 나는 이곳을 헤맸다. 하나, 조금도 날갯짓에 조바심을 담을 필요는 없었다. 너의 향은 마치 나에게로 와서야 비로소 꽃이 된 듯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것이 었으니, 조금 천천히 간다 한들 누구도 너의 향을 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너의 향을 쓴맛이 죽어버린 달콤한 술을 마시듯 되뇌며, 날갯짓을 이어갔다. 그리고 곧 너의 고운 분홍의 자태가 보였다. 온통 초록빛에 림파林波속 이어서 였을까? 너는 마치 보석 마냥 더 특별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에 보이니 자연스레 날개에 힘이 들어갔고 이내 나는 힘차게 너를 향했다. 너의 향이 짙어짐이 느껴진다. 너의 가장 꿈같은 달콤함을 나는 세상 가장 신사적인 말투와 손짓으로 갖겠다. 이미 너의 곁엔 오직 나만이 전부일 것이긴 하나, 완벽히 나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한데, 바람이 날리는 모양새가 뭔가 이상하다. 나의 날갯짓 하나에만 곧은길을 그려야 하는 바람이 사방으로 엉뚱한 길을 그린다.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에 올곧게 너를 보던 눈을 잠시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화려운 무늬로 치장하고 강인한 날갯짓을 하는 또 다른 이가 나만이 알던 향을 쫓아 날아오고 있다는 걸.


너에게 가까워질수록, 수 만리에서도 느껴지던 너의 향이 짙어질수록 나의 작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내 머리 위로 그림자 지는 너의 입사귀는 거대했고, 잎사귀 사이로 분홍을 내비치는 너의 반듯한 꽃잎은 한쪽을 감아야 비로소 볼 수 있을 만큼 눈부셨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어찌 나만이 알 수 있었을까. 이토록 진득한 향을 어찌 나만이 알 것이라 생각했을까. 너를 쫓아 날아온 나의 모양새에 빛이 내리니 발아래에 그림자가 졌다. 나와 비슷한 또 다른 그림자가 보인다. 좀 더 작은 그림자도 보인다. 크고 뚜렷하며 화려한 그림자도 보인다.


이 모두는 너에게 날아 들고 있었다.

너는 이미 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향을 쫓아 나르는 벌이었음을 너에게 닿아서야 알았다. 크고 고운 색을 뽐내는 너를 쫓아 날아온 난 특별한 이가 아닌, 군중群衆 안에 흔한 이였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너에게 닿기까지 알지 못했다.


나에게로 와 비로소 꽃이 될 줄 알았던 너는 이미 진득한 향을 뱉는 유일무이한 꽃이었구나.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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