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VIE ESSAY

강철비가 죽이고 살린 것들

영화 <강철비>

by 전성배

픽션 안에 녹인 진실만큼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없다. 누군가는 분명 북한과 남한이라는 이름의 자국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본디 하나였던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을 것이다.


'독재 정권, 굶어 죽어가는 국민, 상습적 도발, 핵 실험' 북한을 떠올리면 하나 같이 부정적인 단어들 뿐이다. 국제 사회 속에 북한은 이미 국가로써의 기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세계를 위협하는 무자비한 핵실험 국가로 분류되고 있고, 일각에서는 '무법 국가'라 말하기도 한다. 연평도 도발이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2011년의 군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공포심이 병사들 사이에 나지막이 깔려 있었다. 엄연히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이었고 각종 사건은 정치적 이득을 위한 권력자들의 횡포이니 만큼, 북한 국민 전체를 향해 날을 세우면 안 되었지만, 이미 우리 마음 어딘가에는 북 전체를 향한 증오심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개봉 전에는 어쭙잖게 핵과 북의 내란이란 살얼음 판 같은 문제를 다룬다면 보기 좋게 무너질 것이란 평이 지배적이었던 이 영화는 개봉 직후 많은 이들에게 정반대의 평을 받았다. 감독의 오랜 준비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묵직하면서도 현실적인 전개로 이어져, 우리에게 당장에라도 일어날 수 있는 국가적 문제를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정우성과 곽도원이라는 대형 배우가 연기한 '철우'라는 인물은 두 사람을 완전히 흡수하여 배역 그 자체만을 사람들에게 남겼다. 그것은 분명 허구로 치부할 수 없는 현실적인 주제 또한 한몫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자연스레 영화가 다룬 남북문제 안에 녹아 있는 감독의 타협점과 신념은 관객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해져, 각자가 견지적인 시선으로 자신만의 남북문제에 대한 의견을 고찰하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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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전체를 하나로 묶어 전쟁 위험으로 간주하는 현직 대통령과 원래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역사적 당위 앞에 북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차기 대통령의 대립 속에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갖고 움직일 것인가.

영화 <강철비>는 <변호인>을 감독했던 양우석의 두 번째 영화로 다른 영화가 갖지 못한 '대담함'이 있다. 그가 웹툰 '강철비'의 시나리오를 쓰며 쌓아왔던 남북 간의 이야기들로 오랫동안 칼을 갈았다는 듯, 타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노골적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의형제, 공조, 은밀하게 위대하게, 베를린> 등과 같은 다수의 작품 또한 남북문제를 다뤘지만 대체적으로 인물과 인물의 대립으로써 그려지기만 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그에 반해 <강철비>는 마치 기존 영화들이 일부러 멀리했던 현실과 직결된 문제인 '핵과 북 내의 반기, 남북 전쟁위기'를 주제로 접근했다.

영화의 대사 중 곽철우와 CIA 요원이 나눴던 대사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한쪽에서는 전쟁이 난다고 이 난리인데 사람들은 남의 일이라는 듯, 이렇게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죠.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매일 총기로 인한 사망자가 평균 90명이에요.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지만 늘 그때뿐, 또다시 내일이 되면 90명이 죽어나가죠. 진정으로 무서운 건 폭력이 일상화된다는 사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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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쟁 중인 국가이다. 엄연히 '휴전 국가, 분단국가'라는 뼈 아픈 또 다른 이름으로 국제 사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상황과 대사를 통해 관객을 아니 국민들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아픔과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어차피 아침은 늘 밝아오고, 지구가 시속 약 1,700km 자전한다고 한다지만 저 구름들은 한가로이 흘러가는 만큼, 나른하기까지 한 일상에 찌든 우리는 자연스레 사실을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다. "먹고살기도 버거운 세상에 그런 생각까지 어떻게 할 수 있겠냐"며 남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지만 엄연히 '우리'의 사건이며, '아픔'인 만큼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해결을 위한 움직임과 같은 부담과 거대함이 아니라, '자각'을 말이다.


"원래 하나였던 것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중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같은 가치를 갖지만 양면의 모습이 다른 동전처럼 사람이든 자연현상인 비든 모든 것은 양면을 지닌다. 마른 가뭄 속에 내리는 단비는 희망과 재기를 상징하지만, 비가 잦고 과하게 내린다면 홍수와 같은 재해로 이어져 절망을 갖게 한다.


이 사실을 대국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위험이 안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그림 또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영화 <강철비> 속 최후의 교섭이었던 핵의 양분화를 통한 평화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 영화는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빗대어 '강철비'라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종국에는 이 이름이 갖는 또 다른 의미를 관객에게 전한다.


남과 북을 각각 대변하는 인물인 '남쪽 철우'와 '북쪽 철우'는 각자 전쟁을 막고자 고군분투하며 종국에는 생명을 희생해 한반도를 구하는 것으로 고조되었던 전쟁의 징후를 가라 앉히고 극적인 화해를 이끌었다.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강철비가 한번도를 구한 이름이 된 것이다.


※ 사진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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