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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의 부재

조급함

by 전성배 Feb 11. 2018

가슴으로 끌어안을 것들이 차고도 넘치는 삶이라며, 한숨을 숨보다 더 많이 뱉던 모습이 안쓰러웠다. 흔한 계절의 변화나 아침과 저녁에 해가 뜨고 지는 것에 차이 조차, 감상하지 못하는 빡빡한 삶이라 하였다. 어린 시절 곁에 머물던 이들은 하나 같이 '여유'라는 단어와는 한참을 동떨어져 걸어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여유로움'이라는 단어의 평화를 갈피조차 잡지 못했었다. 제 복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산 것이다. 그러나 어느덧 세월에게 꽤나 많은 것들을 받고 넘기고서야, 어렴풋이 여유의 부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확히는 지금 것 누렸던 여유의 가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머릿속에 정돈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는 세월이 가져다준 것들과 앗아간 것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돈의 굴레에서 조금은 숨을 틀 수 있게 되었다. 재산이라기보다는 그저 일을 할 수 있는 경력과 경험이 생겼다. 금전의 고갈이 두렵지 않았다. 다시 벌 수 있다는 계획이 있었으니까. 제법 나이를 먹게 되니 불가피하게 시간의 세분화를 몸소 실천할 수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느 기점에 닿기 전까지는 산소가 희박해져 가는 산소통을 맨 체 심해에서 수면 위로 헤엄치는 잠수부와 같은 심적 부담을 갖게 한다. 한시도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기에 수면 위에 닿기 전까지 숨을 조금씩 아껴 쉬며 헤엄치게 했다. 눈치가 생겼고, 상처를 주고받았던 곳에 두터운 새살이 올라 웬만한 아픔은 유하게 넘길 수 있었다. 이것은 유형적 무형적 상처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세월을 맞이하는 내내 그에게 받은 것들을 정리해보니 적지 않은 양이다. 그럼 내가 그에게 빼앗긴 것은 무엇일까. 대가로 지불한 것은. 받은 것들 만큼 빼앗긴 것의 양도 꽤나 많을 것이다. 하나, 단 하나의 단어로 축약해 말하라면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여유'였다. 그것에 부재로 인해 꽤나 큰 것들을 놓친 채 살게 되었다.


여유의 반대는 <조급함>이다. 여유를 잃은 채 서둘러 모든 걸 해내려 하니 삐걱 대기 일 수였다. 사랑은 점차 불안한 감정으로 변질되어 성공이 아닌 실패의 확률만 높아질 뿐이었고, 계획과 실행은 단어의 짧은 거리와는 정반대로 멀고도 험난한 모험으로 전락해버렸다. 


여유를 상실한 조급함은 우리를 계속해서 몰아갔다. 심적, 몸적으로 피로가 쌓여 날을 거듭할수록 두꺼워지고 굳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내 곁을 메워주던 키 큰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여유의 부재를 나와 당신도 어느 순간 맞닥뜨리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수면 위에 머물다 묵직한 산소통을 메고 심해까지 내려가다 각자가 정한 잠수의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다시 방향을 바꿔 수면을 향해 헤엄치는 항해일지도 모르겠다. 수면과 심해의 거리를 헤엄쳐 오르며, 얼마 남지 않은 산소의 양을 조절하는 행위 그 자체는 어느 순간부터 현실을 자각하고 나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조급함과 비슷하겠다. 물의 저항력 탓에 몸은 끝도 없는 피로의 누적으로 약해지고 병들어 수면 위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쇠약해져 물에 떠오른 채 유영하다 죽는 삶. 우리는 딱 그 정도 일지 모르겠다.


그렇담 과거에서도 현재에서도 이처럼 똑같은 전철이라면 혹시, 사람에게 여유의 부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 않을까. 점점 떨어져 가는 산소통을 등진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란 것을 늘린다거나 채운다는 게 가능하지 않는 이상은. 


그렇담 현재의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숨 쉬는 또 하나의 사람이란 모습이 가장 사람다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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