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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가들의 숲 속에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by 전성배 Feb 15. 2018

며칠 전 서점을 서성였다. 특별히 사고 싶다거나 책이 필요해 갔던 것은 아니고, 그저 발이 닿는 곳에 서점이 있었고, 그 안에 방생되어 있는 지식을 하나 정도는 캐내가면 좋겠다 싶어 서점에 들어섰다. 우선은 평대와 선반에 놓인 책들을 눈으로 훑으며 매장을 돌았다. 마치 공예가의 숲에 온 느낌이었다. 종이는 본디 푸른 나뭇잎으로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나무들의 살점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이곳은 살점을 종이로 정제하던 공예가들이 한데 모여 나무들의 무덤 혹은 숲으로 재창조해낸 곳인 듯했다. 나는 그곳에서 어떠한 책에도 손대지 않고 몇 바퀴를 돌았다. 숲을 거닐며 산책을 하는 자연인처럼 여유롭게 또 여유롭게.


그리고 세 바퀴쯤을 돌았을 때, 벽면에 위치한 베스트셀러의 이름을 올린 집단들 앞에 발을 멈췄다. 오래전에는 <베스트셀러>라는 수식어만으로 좋은 책을 판가름했었는데, 참 안일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을 쓰며 자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좋은 글과 안 좋은 글의 차이가 대부분 사람의 기호에 따라 갈리며 많은 팬과 많은 독자가 있는 사람은 그저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썼을 뿐, 이 숲에 어느 한 권의 책도 좋지 않은 말과 생각을 담은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생각으로 옅게 미소를 띠며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여 표지를 리뉴얼한 책을 손에 들어 무자위로 한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때때로 불안했던 이전의 고민들에 대해 "너만이 아닌 나에게도 그러했다"라 말하는 듯한 운명적인 문장을 발견했다.


"나를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한다"


대충 이런 느낌의 문장이었다. 최소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발견이었으니, 디테일한 글자의 구성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문장이 지닌 뜻만은 선명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두 명의 예술가가 있었고, 또 다른 제3의 작가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먼저 첫 번째 예술가는 정식으로 등단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4~5권의 책을 낸 작가로, '작가'라는 칭호에 다소 부끄럽고 부담스러워하는 심정을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저는 '작가'라는 말에 무게감을 느낍니다. 저는 정식으로 등단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저 책을 냈다는 이유로 스스로 작가라 불리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술가는 제3의 작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자신을 '시인'이라 소개했고, 제3의 작가는 어느 곳을 통해 등단했는지 어떠한 시집을 펴내셨는지를 물었다.


"저는 정식으로 등단하지도 제 이름으로 된 시집을 펴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늘 시를 가까이하며 시를 쓰고 시를 음미합니다"


같은 문인의 칭호를 두고 두 사람은 상반되는 경력과 상반되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언뜻 보면 첫 번째 예술가는 겸손할 줄아는 미덕을 가진 이 같고, 반대로 두 번째 예술가는 다소 교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당신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조금 더 깊이 있게 드려다 보자.


'시인'의 의미를 포괄하는 '작가'의 뜻은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로, 그 외에 어디에도 '작가'라는 칭호에 <특정 자격요건을 요함>이라는 문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단어였다. 무언가를 자신의 정서로 정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작가이며 때론 시인이며 가수가 되다는 뜻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예술가는 이미 충분한 작가이며, 두 번째 예술가 또한 충분히 시인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창작의 영역이 만인에게 제한을 두지 않듯, 그 이름 또한 만인에게 자유롭다. 나는 두 사람의 상반된 입장 속에서 겸손과 교만이라는 단적인 표현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의 유무를 생각해 보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우리나라의 교육은 겸손과 배려를 지향하며 이기심은 지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일반적이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이기적으로 굴어서는 안 되고, 남을 도와야 한다 가르친다. 그 안에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선택적 교육 안이었다. 결국 대부분의 인물은 대체로 자신을 낮추며 살아간다. 연인과의 사이에서도 베풀어야 하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사랑하는 법 밖에 알지 못한다. 스스로를 아끼며 때로는 보호할 줄도 아는 사랑법은 알지 못한다. 사랑을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줄 만 아는 것. 마땅히 사랑받아야 하는 것에는 꽤나 어색해하고 무지한 우리는 곧 나를 사랑하는 법에도 무지했다.


우리는 모두 위대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단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같은 것을 보아도 전혀 다른 것을 느끼며 써내릴 수 있는 능력과 도망치고 싶은 현실을 묵묵히 받아내는 인내력과 자신만의 삶을 구축하는 추진력을 가진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도 아낄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대단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지나친 겸손은 배제하고 교만의 영역에 한쪽 발정도는 두며 살아가길. 위대하지는 않지만 대단한 당신은 충분히 그리해도 되니까.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브런치 글 이미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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