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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상실

정답은 늘 뻔하고 단순하다.

by 전성배

"오는데 순서 있어도 가는데 순서 없다"라는 문장이 과거 어른들 사이에서는 마치 덕담의 한 대목처럼 쓰였고, 매번 위와 같은 문장을 뱉고 나면 갈무리로 건강과 안녕을 담은 마지막 말을 이으셨다. 요즘에는 각종 예능과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순간에 웃어넘길 웃음코드로써 소비되는 경우가 더 많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개 이런 부류의 문장에는 삶의 불변의 법칙이 담겨있는데 이를 테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등과 같은 말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문장들은 인정 없는 삶에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기도, 삶을 살맛 나게 하는 진실로써 자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중에 순차적으로 탄생하는 거와는 달리, 불규칙적으로 끝나는 <생명>을 담은 말은 꽤나 가슴 아픈 진실이다. 과거에 비해 의학 기술이 발전하고, 더불어 불안정했던 국가의 정세는 안정을 되찾으면서 사고사를 제외하곤 급작스런 죽음은 드물어졌다. 그래서 아직 이십 대에 머물러 있는 나는 안면 있는 이의 죽음을 겪어 보지는 못하였기에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아직 일면식은 물론 친분 있는 이들을 상실하는 슬픔을 알지 못한다. 자연스레 그러한 약점은 한가지 생각을 들겠다. 무지가 훗날의 나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말이다. 연휴였던 어느 날 밤. 아버지와 기울이던 술잔을 통해서, 거진 한 세기를 살아 내신 노쇠한 할아버지의 인터뷰에서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연휴였던 얼마 전 밤, 명절 음식을 다 준비하고 어머니와 함께 대청소로 저녁을 마무리한 직후였다. 해야 할 일들을 다 마치고 가족이 함께 모여 앉은 깨끗한 방은 마치, 이 밤을 그냥 일단락 짓기에는 아쉽지 않냐며 우리 가족에게 묻는 듯했다. 우린 간단한 음식을 시켜 함께 술 한잔을 할까 했지만 우리와 같은 물음에 답하는 사람들이 이 밤에 얼마나 많을지 불 보듯 뻔했기에, 어머니와 함께 가까운 대형마트로 가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와 해결하기로 했다. 도출된 의견은 후다닥 나갈 채비를 하게 했고, 어머니와 모처럼 둘이서 마트로 향했다.


우리 모자는 보통 필요한 것만을 사는 편이기에 장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금세 마트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옷을 갈아 입고 작은 상위에 맥주와 소주, 안주를 조촐하게 차려 아버지와 함께 몇 번의 잔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살짝 취기가 오르신 아버지는 건조하게 바람 하나를 뱉으셨다.


"너와 너의 누나가 독립하면 아버지는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너희 엄마와 둘이 살고 싶어. 작은 텃밭도 꾸리고 주기적으로 인천으로와 일을 하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며 자연에서 살고 싶다. 단, 그날까지 몸은 건강히, 사고 없이 무탈하게 살아있다면 말이다."


라며, 자신의 말을 마무리 짓고 옅게 미소를 지으셨다. 오래전부터 아버지가 나에게 늘 말했던 바람이었기에 이제 큰 감흥은 없었지만, 마무리 지었던 뒷말이 가슴에 적잖은 무게로 눌러앉았다. 아무래도 몸을 쓰며 현장에서 먼지와 무게를 견뎌내는 직업을 갖고 계셨던 아버지는 크고 작은 상처와 사고를 당하기 일 수였고, 몇 달 전에는 가볍지 않은 사고를 당하셨기에 가슴이 무거워 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아버지는 함께 했던 동료의 사고로 인한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셨으니.. 그 말은 날카롭게 내 가슴을 파고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지난날 한 매거진에서 보았던 여든 다섯 할아버지의 인터뷰 내용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가 끝나니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지. 19살 무렵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같이 학도병으로 참전했었어. 전쟁이 끝난 후 다행히 크게 상한데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지.."


죽고 죽이며 피를 보는 것이 전쟁이지만, 서로를 누르고 헤치며 피 없는 사투를 벌이는 삶 또한 또 다른 전쟁이란 말이 있다. 아버지는 타인보다 다소 억셌던 전장에서 동료를 잃으셨기에 자신도 누군가의 동료로써 생을 달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을 수 밖에 없으셨다. 죽음의 공포보다 자신의 책임이나 꿈과 단절된다는 두려움을 갖을 수 밖에 없으셨다.


어느 할아버지의 인터뷰와 아버지의 말들 속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생각해서는 안되나 언젠간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존재의 상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겁 많고 정 많은 나에게 한 존재의 상실은 맥없이 풀려버리는 다리로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릴게 뻔했다. 그런 슬픔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는 건 도통 어떤건지 감도 오지 않는다. 다중우주로의 간섭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일테니까.


한순간에 두려워진 나는 막막해졌지만,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속에서 뻔하지만, 명확한 답을 발견하는 것으로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것을 고려하며 상대를 대하는 것자체는 무례일 것이야. 어차피 모든 죽음은 후회와 슬픔을 집약해 나에게로 던져지는 것이니까. 애써 준비하려고도 생각하려고도 하지 말거라. 싸우고 화해하고 고집부리며 때론 배려하며, 사람대 사람으로 지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란다. 그러다 상대를 잃게 되었을 때, 슬퍼는 하되 배고프면 먹어야 하는 본능처럼 살아내면 되는 거야. 그건 부모와 자식, 친구와 친구 사이 모두 매 한가지라 생각한단다. 절대 사람은 무너지지 않아. 결국은 사는 걸. 그리고 언젠가 성숙하게 되었을 때, 상실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인 또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도 있을 것이야. 아버지를 잃은 너의 어머니나, 어머니를 잃은 나나. 모두 결국은 살아내고 웃으며 현재의 너에게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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