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구전되어 내려오는 설화나, 놀이, 민간요법 같은 기록되지 않은 채, 무형의 형태로 이어진 것들의 선명한 모습에 새삼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던 날. 바로 얼마 전 간단한 술자리였다.
유치원 선생님을 업으로 5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녀는 올해 들어 유독 더 늘어난 업무 탓에 퇴근 후까지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는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뱉었고 늘 어깨는 힘없이 처져 있었는데, 더욱 그녀를 안쓰럽게 만들었던 것은 변치 않는 입버릇과 사라진 기운이 한치에 거짓도 없이 적나라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와 나는 각자 업을 마치고 퇴근한 뒤, 밤저녁쯤 만나 자주 가는 술집에 도착했다. 나란히 앉아 늘 먹던 연어회 한 접시와 소주, 맥주를 각각 한 병씩 시켜둔 채 하루의 이야기를 테이블에 한 잔에 하나씩 올리면서 우린, 아니 나는 그녀의 푸념을 받아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아주 오래전, 우리 또한 그녀 같은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던 날의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아이들이 이런 놀이를 하면 굉장히 좋아해. 이 노래와 이 동작에 푹 빠져 있지. 기억나? 우리도 그 맘 때 깔깔거리며 너도 나도 이렇게 놀았었잖아.”
그 말과 함께 그녀는 가느다란 손목을 드러내 보이며 작은 동작과 옅은 멜로디를 뱉어냈다. 이름 모를 노래와 손동작, 놀이들은 어린 시절 해봄직했던 것들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를 채우던 놀이와 말들을 디지털에서 태어나 아날로그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전수하는 그녀는 흡사, 명맥을 잇는 예술가 같기도 했다.
<구비문학>이라는 말이 있다. 기록문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채 말로 전해지는 <구전>이라는 단어와 비슷하나 구비문학의 <구비>는 "말로 된 비석"이란 이란 뜻으로 구전보다 좀 더 묵직하고 고결한 느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엄밀히 둘의 무게감이 어떻든 문자로 새겨지는 <기록문학>보다는 균일하지는 못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속에서 "시대와 시대를 잇는, 잊히지 않는 특별한 가치는 되려 기록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맨몸으로 친구들과 수 시간을 깔깔거리며 웃고, '옛날'이라는 말로 시작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던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던 그때. 나를 보다 밀도 있게 만들었던 건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오직 말이 전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당시의 나의 기억이 되어 현재의 추억을 채워주었고, 동시대를 함께한 우리들에게 고갈되지 않는 웃음을 만들어 주었다. 현재의 우리, 적어도 그녀와 나, 나의 친구들은 그 시절에 우리를 함께 하게 만들었던 노래와 놀이들을 추억하는 것으로 관계가 더 깊어짐을 느낀다.
기록되지 않았음에도 선명히 전해지는 것들은 우리를 지적으로 채우기 위해 문자가 가르치던 지식들이 점점 세월 앞에 뜻이 바뀌거나 옅어지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우리 안에 깊게 안착한 채 선명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금 현시대의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시대와 시대를 잇는 무형의 가치가, 문자보다 더 선명한 말로. 세월 앞에 더욱더 진해질 추억으로. 훗날 그들을 웃게 할 문자가 해내지 못한 가치로 말이다.
그녀는 그런 특별한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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