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한계
오늘은 <모두, 전부, 다>와 같은 모든 것을 전부 쏟아 낸다는 명사와 부사를 절실히 떠오르게 하는 날이었다. 지금은 하루의 빛이 끝난 시간인 밤 10시. 동네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당최 여름인지, 봄에 여운이 가시지 않은 건지 모를 날들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은 그저 저녁이 되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소원한 그들의 생각지 못한 무심한 배려를 통해 요즘 나는 기분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짧은 낮과 긴 밤을 가진 겨울을 좋아하는 내가 싫어하는 여름 안에서 좋아하는 단 한 가지는, 길어진 낮으로 인해 늦은 퇴근 시간에도 노을을 여유롭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매일 퇴근 무렵의 하늘을 보고 있노 라면, 매일 똑같은 사람을 만나지만 천 가지의 표정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기분을 헤아리는 일과 같은 기대감과 궁금증에 사로잡힌다.
세계적인 미국의 색채 연구소인 <팬톤>에서 2016년 경에 발표했던 따뜻한 느낌의 <로즈쿼츠>와 푸르고 평온한 느낌의 <세네리티>컬러는 분명,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누군가의 손에 의해 쓰여야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 두 색의 조화가 너무도 좋았기에 더욱이 그럴 거라 여겼다. 그런데 오늘 하늘에 그 두 개의 색이 흩뿌려져 있었다. 역에서 집으로 가는 20여 분의 길이 짧게 느껴질 만큼 장대하게.
세네리티부터 로즈쿼츠로 향하는 하늘의 흐름을 따라, 튀어나온 돌부리 같은 구름 아래를 걸었다.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 처사처럼 보였다. 오늘만 살아낼 것 같은 극단적인 모습 같기도 했다. 어떤 심경으로 오늘을 이렇게 장식하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지난 새벽에는 하늘이 온통 연분홍빛으로 가득했었다고도 한다.
모든 걸 쏟아 내는 듯한 새벽과 그것을 이은 저녁 하늘에서, '모두'와 '전부', '다'와 같은 기약 없이 모든 걸 게워내는 단어들을 떠올렸다. 이 세 단어는 곧장 '최선'이라는 단어로 연결되는데, 모두 혹은 전부를 쏟아냈다는 것은 결국 최선을 보여준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모습과 성과, 일.
살다 보면 타인에 의해 나 자신이 저평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고평가 되어 실제 능력보다 상회하는 결과를 요구받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번갈아가며 반복되다 보면 점차 나 자신도 내 능력의 최대치를 잊어버리고 만다. 나의 능력의 한계를 잃어버린 채, 요구받는 결과를 그려내지 못하면 스스로를 다그치고 꾸짖는 경우가 허다하다.
"분수를 알아라" "주제를 알아라"는 어쩌면, 마냥 누군가를 편애하고 꾸짖기 위해 사용하는 날카로운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스로 나의 최대치를 아는 것, 그것으로 딱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해내는 것이 "내가 나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오늘 하늘의 모습은 아마도 자신의 전부와 모두를 쏟아낸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최대치는 생각 보다 거대했다. 같은 공간을 함께 걷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하늘을 응시했고, 최선의 모습에 감격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으로 담았으니까.
우리는 생각보다 더 큰 능력을 갖고 있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그 무한하지 않은 능력의 최대치를 하루빨리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최대치를 알게 된 날, '겨우'가 아니라 최대의 하늘을 보여줬던 오늘 저녁처럼, 모두를 감격 시킬 만큼의 아름다움이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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