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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한 시기를 담는다.

by 전성배

유선의 종이에 글을 썼던 이유는

길을 잃은 채 낙오된 활자들이 도착지를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산발된 감정이라 한들 바르게 정돈된다면

일정한 결을 가질 테니.

누군가는 헤매는 활자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살을 깎아 혈서를 쓰는 연필심은 비명을 질렀고,

그 고통으로 담기는 어린 시절의 노트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빈사 상태의 활자들이 널려있었다.


시간보다 더 막연하게 쌓인 먼지 사이로

활자들은 여전히 흩어진 채 정돈되어 있다.

나는 이제 그것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도착지를 일러주어야겠다.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샤프조차 익숙지 않았던 그 시절에 글을 쓴다는 행위는 키보드를 두드려 하얀 화면을 채우는 모습이 아닌, 노트에 한 사람의 생김새와 같은 글씨를 써내는 일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과 돈을 벌어 무언가를 사는 미래가 영화처럼 말도 안 되는 상상 같았던 그 시절은, 당시의 모습이 평생 동안 간직 할 수 있는 영원 같았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과 같이 글을 썼다. 어깨 넘어 배운 연필 깎기 기술을 어설프게 구사하며 연필심을 나뭇살에서 파내어 하얀 유선의 노트에 글씨를 새겼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티브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꼈던, 사전적으로 정의된 무형의 감정들을 알지도 못한 채 새기는데 급급했다. 이름만 아는 것과 본질까지 아는 것에 극명한 차이를 알지 못했었다. 그저 이렇게 써낸 글이 어설프다는 것 만을 겨우 인지한 채,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부모의 당부와 같은 도움을 누군가 주어 글을 완성해주길 바랐다.


누군가 시키지 않은 숙제를 하는 것과 다름없었고, 제출된 숙제가 저평가 되는 것이 두려워 누군가가 다듬어 주길 바라는 욕심과 같았다. 그 안에서 삶은 속절없이 나이를 먹어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사리 분별이 보다 명확해 지니, 다양한 기준으로 사람이 두 갈래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스스로 해내는 이와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내는 이 였다.


우리는 수시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써내며 삶 혹은 업무에 필요한 것을 창조한다. 어느 회사원의 보고서가 그러하고 공예가의 작품이 그러하며, 누군가의 취미가 혹은 특기가 그러하다. 일정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이 함께 하여 완성하는 과제나 프로젝트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들에는 스스로 하는 이와 도움으로 해내는 이가 있다.

사진 '와카레미치' iPhone 8 plus

도움을 받아 더 큰 것을 이뤄야 하는 일들은 일체 포함하지 않은, 온전히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임에도 도움을 받는 이를 말한다. 개인사를 타인의 도움으로 해내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의 행동은 배려나 이해와 같은 가장 근본이 되는 소양의 결여가 아닌, 자신을 믿는 용기의 결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능력 범위 안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혹여나 잘못될 것이 두려워,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타인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는 자칫 오만방자해 보일 수도 있다. 조언과 도움을 받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하기 보다 스스로 인지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여 성장하는 것이 더욱 단단하고 명확한 자신의 색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을 예로, 아무리 써도 부족하고 못나 보이는 게 글이라고 할 정도로 글은 개인에게서 나오는 만큼 한 시기를 담는다. 그 말은 진화라는 인류의 존엄성과도 연관된다. 우리는 경험과 새로이 익히는 지식 혹은 기존에 가진 지식의 정제를 통해 보다 성숙해지며 진화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윤택해지는 삶 안에서 과거의 것이 구식이 되고, 새로운 것이 익숙해지는 것은 이러한 연유로 발생된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진화하는 자신과 사회 안에서 우리는 수시로 변하는 지식과 생각, 유행을 습득하니, 당연히 그 시절의 경험과 지식, 감정으로 쓰이는 글은 지금의 나의 눈에 차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나의 눈이 그렇다면 타인은 불 보듯 뻔하다. 글은 한 시기를 담는다. 그 시기에 담긴 글은 나의 전부고 나의 모든 지식과 경험이다.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하여 타인은 물론 스스로 업신여기거나 불신을 가져서는 안된다. 보다 성장할 자신을 믿으며, 현 시기를 담을 지금의 글에 집중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글을 사랑하자. 앞으로 발전할 자신의 글에 용기 있는 믿음을 가지자. 그리고 그 믿음만큼 부끄럽지 않을 경험을 익히고, 글의 정제를 위해 노력하자. 글만이 아닌 도움받기 만을 바랐던 당신에게도 전하는 말이다. 나에게 글이 그러하듯 당신에게 있을 그 무언가도 별반 다르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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