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삶
그곳은 시계의 초침 소리가 시계탑이 알리는 정시의 종소리처럼 크게 들리는 곳이었다. 바람이 부는 소리와 잎사귀가 가지 끝에 매달려 아등바등거리는 신음은 귓가를 때리고, 사람 냄새보다 풀내음이 더 짙으며, 회색이 무색하던 곳. 짙은 채도의 풀향이 그윽했던 나의 시골은 현재 살고 있는 도심의 척박함과는 대비되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도심에 대한 동경이 컸었다. 모든 시간이 허공에 떠 있어 지루한 시골과 달리, 도시는 모든 순간이 경쾌하고 빠르게 흘러가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밤조차 무색하게 하는 거리의 불빛과 수많은 사람들, 끝도 없이 넘어가는 채널 수를 가진 TV, 온갖 먹거리와 놀거리가 풍부한 도심은 시골의 내성적인 어둠마저도 질색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곳의 밤만큼 평화로운 건 없었는데.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흔한 이 한 문장이, 삶을 뼈저리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존부터 사람과의 애愛까지. 이 한 문장은 삶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대다수의 사건들을 관통하며 매일매일 나를 상기시켰다.
도심에서의 생활은 잠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원인 모를 피로의 누적이었다. 해소되지 못한 피로는 조금씩 몸을 갉아먹었고, 그럴수록 놓쳐버린 익숙한 것에 대한 집착은 더욱 늘어갔다. 병마에 몸을 침식 당해 약에 맹신하는 누군가의 집착처럼.
식품부터 제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섭취하거나 사용하는 물건들에는 각각 명시하고 있는 유효기간이 있다. 유효기간 내에 사용해야만 본 제품이 가진 사양을 제대로 쓸 수 있고, 식품의 경우에는 기간 내에 건강한 맛과 좋은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유효기간을 넘어서게 되면 당연히 제품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식품은 상해 맛은 물론 몸에 해로운 요소로 바뀌어 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유효기간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비물질적인 사람의 감정, 경험, 체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통용되는 삶의 언어로써 쓰이기도 한다.
익숙해진다는 말의 첫 시작은 설렘과 두근거림, 기대로 문을 연다. 그 선홍 빛의 감정들은 우리가 겪는 일련의 모든 사건과 사용하는 물건에 이르기 까지, 애정이라는 윗 단어 아래 포용되어 말 그대로 소중히 무언가를 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익숙해짐의 끝자락은 늘 좋지 않은 결말로 이어졌다. 더 이상의 감흥은 없어지고, 퉁명스레 대상을 대하게 된다. 그렇게 점차 물질적인 것들은 기능을 다해 대체되고, 비물질적인 감정들은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 다른 곳을 보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익숙함과 유효기간은 뜻은 다르나 같은 맥락을 지닌다. 다만, 상품에 사용되는 유효기간은 명확히 소비에 대한 불가가 드러나지만, 사람에게 쓰이는 익숙함이라는 유효기간은 소비 불가라 착각을 일으켜, 그리움으로 후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도피하듯 떠났던 고향이, 사랑했었던 누군가가, 가족이, 친구가, 한 때 열망했을 외사랑의 쟁취 속에서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려 후회만 남게 되었다. 소홀히 하며 그곳을 떠난 뒤에, 그들을 떠나보낸 뒤에.
삶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리는 연속이었다. 잃어버린 후에야 여전히 빛나고 있었던 그들을 놓쳐 버린 것에, 그리움이란 후회를 갖고 만다. 그리고 이를 우리는 무한히 반복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때 '판도라'가 열었던 금단의 상자에서 가장 슬픈 재앙은 어쩌면 욕심도 시기도 질투도 아닌, 그리움의 고통을 알면서도 익숙함이라는 형벌 앞에 무한히도 소중함을 버리는 슬픔이 아닐까.
알면서도 버리고, 알면서도 소홀히 하고, 알면서도 떠나버리는 무모함.
나는 도시의 밤을 수없이 보내며 매일 밤, 그곳의 옛날을 그리워했다. 누군가는 사랑했을, 누군가에게는 소중했을 그곳을 무심히 떠난 것에, 떠나보낸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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