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만큼 당신이라는 시간을 담는다.
얼마 전 생일을 맞이해 몇 개의 선물을 받았다. 그중에는 식품과 함께 고가의 제품도 있어 작은 부담감이 들기도 했지만, 대체로 미안함을 내포한 고마움으로 그날의 하루를 채웠었다. 나의 생일을 기뻐해 주는 그들을 보며, "내 생일이 정작 나보다 선물을 준비한 그들에게 더욱 특별했었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한 무게감에 잠시 동안 짓눌리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지난 생일을 되짚어 보니 한 가지 변화를 깨달았다. 아니, 이 변화는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데도 자각하지 못하다, 활자와 가까운 삶을 살기 시작하고 나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누군가의 글을 받아 본 지 꽤 오래 전이라는 사실이었다.
학창 시절 편지를 주고받는 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지역 모든 학우들이 같은 유행에 몸을 실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학창 시절엔 글을 주고받는 유행이 잔잔히 퍼져 있었다. 크게는 편지라는 걸로 감사와 애정을 전했고,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에 작게는, 수업 시간에 쪽지를 통해 주변 친구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한다는 우스갯스러운 핑계와 누군가는 남모르게 사랑을 키우는 매개체로 써 글을 활용했다. 그래, 유행이 아닌 글을 주고받는 건 일상이었다고 해야 맞겠다.
물론, 지금도 변함없이 학생이건 우리 같은 성년이건 모두 무언가를 담은 글을 주고받는다. 단, 편지와 같은 느린 글이 소홀해졌다는 것만 제외하고.
문자나 전화를 통해 수시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자의적이 아니라면 더 이상 속마음이 묵힐 리 만무하다. 예전처럼 수단의 제한으로 감정이 쌓이는 일은 없어진 것이다. 묵힌 마음을 써내리는 편지는 당연히 희석될 수밖에 없다. 빠른 글에 익숙해졌기에, 펜을 들고 무언가를 적어 전하는 행위 자체가 단순히 업무나 학업을 위한 필기 수단으로 쓰이는 글을 제외하고는, 마음과 마음을 대면하는 편지는 오래전부터 멸종의 전철을 밟고 있다.
학창 시절, 생일이면 하나쯤은 꼭 받게 되는 것이 바로 편지였다. 연인이나 친구에게 받았던 편지는 시답지 않은 내용으로 도배 되어 있기도 했지만, 반대로 절대로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없었던 사랑이 가득 담겨 있기도 했다. 그런 편지를 생일 때 받게 되면, 어떤 선물보다도 큰 바람이 가슴에 불어왔다.
그리고 바람은 군대에서는 삶의 이유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어왔다. 통제와 고립, 세상과 단절이라는 2년의 시간 동안 편지만큼 우리를 살게 하는 이유가 또 있었을까. 학창 시절 소소했던 작은 이야기의 편지조차 그곳에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막연한 미로에서 찾아낸 희망 같은 실마리로 탈바꿈했다.
시기에 따라 편지는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수단, 살게 하는 연명의 수단으로 쓰였다. 그 의미가 현재는 다소 희석됐다는 게 슬프다. 현재의 아이들은 그것에 얼마만큼의 의미를 둘까. 태어날 때문에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당연한 삶에서 편지라는 수단을.
사진은 순간을 담아 영원을 부여해, 그때 담긴 장면을 통해 좀 더 생생한 추억을 가능케 한다. 그에 비해 편지는 감정이나 장면이 없는 딱딱한 획들로 가득하지만, 편지는 순간보다 긴 시간을 담는다. 써 내리는 내내 필자는 상대의 생각으로 가득해지니까. 사진이 자신이 가진 장면과 색감으로 기억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면, 편지는 숱한 상대의 이야기와 설레는 수식어, 생동적인 동사를 이용해 추억을 그린다.
나는 여전히 편지가 좋다. 그러니 또 일 년을 돌아 나의 기념일이 오거든, 그땐 생명력 가득한 편지 한 통을 부탁한다. 그거면 되었다. 다가올 너의 기념일엔 나도 너를 기쁘게 할 선물과 행복하게 할 편지 하나를 전할 테니.
와카레미치 입니다. 음성으로는 불가능한 정제된 가치를 면밀히 담을 수 있는 문자를 사랑하며, 지속적인 글쓰기를 소망하는 한 명의 인간입니다. 시詩가진 간결한 문장의 위대함을 존경하며,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는 저의 모든 글이 가진 바람입니다. - 와카레미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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