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중했던 것들> 책을 보며
이기주 작가의 신간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나오자마자 구매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앞서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은 본업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사는 통에 여가 시간이 없었음에도 이 틀이 채 되기 전에 읽었던 것에 비하면 꽤나 느린 속도로 읽은 것인데, 아마도 앞의 두 권을 책을 단순히 읽은 독서라는 목적 외에도 새로운 자극이나 생각들을 얻기 위한 행동도 포함되었기에 그런 것 같다. 두 권의 책을 읽을 동안에는 그저 작가가 추려 놓은 삶의 잔재들을 둘러본 다는 생각으로 탐독했다. 하지만 세 번째 책을 읽을 때쯤, 작가가 신간을 내기 위해 가졌던 공백의 시간동안, 내가 쌓아낸 글의 수만큼 꽤나 많은 것들 그래, 잡념 같은 것이 세 번째 책을 그저 독서로 끝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러 가지 잡스러운 생각이라는 말의 잡념은, 어감이나 뜻만 보아도 썩은 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잡념이 다른 의미에서는 좋은 영향이 되어준다 여긴다. 특히나 나에게 잡념은 의외로 많은 글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늘 글에 담는 것들의 대부분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이야기에서 잡념을 퍼뜨리고 퍼뜨린 끝에 찾아낸 나만의 정답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세 번째 책은 난 참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읽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제목으로만 간직 한채, 그가 아닌 나의 생각을 담고 싶을 때도 있었다.
수필집은 하나의 주제로 한 권을 꽉 채우는 것도 있겠지만, 대체로 하나의 주제를 몇 페이지로 분할해 담은 다음 새로운 주제로 넘어간다. 책의 표지를 장식한 하나의 제목은 그 내지 안에 수많은 주제를 품고 있으니, 옴니버스 형식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형식을 따라가는 이기주 작가의 책에는 나의 생각을 비춰내고 싶은 호수 같은 주제가 넘쳐났다.
그중에서 하나가 바로 <운運을 모으며 산다>라는 주제였다.
운運이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天運 혹은 기수氣數라고 불리며 형태를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인과에 따라 크기를 달리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운을 모으며 산다라는 문장은 꽤나 심적인 위안과 힘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사는 동안 행복과 즐거움 그 이상으로 운을 바란다. 운이 따라 주어 시험을 잘 치를 수 있기를, 취업할 수 있기를, 사업이 번창하기를, 위험한 순간에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순전히 개인의 욕심에 의한 바람이나 나의 가족과 친우를 위한 이타심까지, 고루고루 무언갈 바라는 행동 끝에는 운을 기원한다.
그리곤 암묵적으로 운에는 선행善行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운의 실존 여부를 떠나 가장 좋은 형태의 믿음이라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는 악행과 이기심, 욕심만으로 행동하는 이들에 의해, 선량한 누군가가 희생되고 있다는 생각이 꽤나 짙게 배어있다. 뉴스를 통해 많은 범법자들이 교묘히 빠져나가 사회에서 활개를 치는 내용과 미해결로 끝나버린 억울한 사건들이 매일 같이 보도된다. 가까운 곳에서만 찾아봐도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며 타인을 조롱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이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을 쉽게 목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때때로 양심과 도덕심을 품고 살아가는 건 되려,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나쁜 생각까지 하게 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 뼈아프다. 선행이 되려 둔팍한 행동으로 취급당하고, 그런 사람을 미련하다 여기기 까지 하는 것이. 하지만 그만큼 정의구현의 현장과 그것을 주제로 한 문화, 악행의 끝과 정당한 심판이 계속되는 것을 보며 환희하는 것으로 우린, 다시금 선행과 양심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 같다.
운을 모으며 산다. 또는 선행을 통해 자신만의 운을 쌓고 그것을 실현한다는 증명되지 않은 이론에 나는 절절히 맹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맹신이 절대로 틀렸다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보다 자신을 우선하는 것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이기적이게 행동하는 것에 틀렸다 말하지 않는다. 단,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를 해하거나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겠다.
그럴싸한 선행이 운을 쌓는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길가를 지나는 동안에 무의식적으로 행한 양보나 약간의 손해를 누군가를 위해 감내한 것, 누군가에게는 고됐을 하루에 기꺼이 미소를 보내며, '수고했다' 말하는 것. 이런 크기를 잴 수 없는 모호한 것들도 우리의 선행이 되고 운으로 쌓인다고 믿는다.
와카레미치 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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