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붙은 평범한 날들

한글날

by 전성배

세월 속에 무색할 만큼 의미가 퇴색된 것들을 떠올려본다. 광복절이나 3.1절, 한글날처럼 돌아간 역사 속 인물들이 짚어낸 특별할 날들. 지구의 자전이 만들어낸 의미 없이 반복될 하루하루에서 당당히 이름 붙은 날들. 12장으로 이뤄진 달력의 365개의 숫자 중 빨갛게 염색된 날들. 하지만, 그 의미가 하루를 꽉 채우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의미를 상기하는 순간이 오기는 할까. 단순히 휴일로서의 의미만 다분해진 것 같다.


아마도 쌓이는 세월 속에 속절없이 묻히고 만 것이겠지. 그래,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이 낙화하며 쌓이는 땅 위에 첫 번째 떨어진 잎을 누가 궁금해할까. 썩어 거름이 될 가을의 낙엽을 보며, 처음 썩어 사라질 것을 누가 궁금해할까. 이름 붙은 거룩한 날들도 낙화처럼, 낙엽처럼 쌓이고 쌓인 날에 흐릿해지는 건 피할 수 없으니, 이 사실은 합리적인 핑계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날들의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는 낙화나 낙엽을 보며 의문을 던지는 이조차 없이 살아가고 있다. 나의 시간 속에 이름 붙은 날들을 누가 알아줄까. 태어난 날과 처음 말을 하던 순간, 걸음을 떼고 처음 달렸던 날과 누군가를 사랑한다 말하고, 상처를 입히고 입으며 마음을 다잡던 순간들. 우리 개인의 역사에는 이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순간이 넘치도록 많지만, 그것을 기억해주는 이는 많지 않다. 자신마저도 그날들을 세어 내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을 쌓은 통에 망각해버리기 일쑤이니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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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에게 우리는 더 빠져들고 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의 연이 그럴 할 것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당신을 내가 사랑하게 된 이유가 그러할 것이다. 누군가를 사모하고 아끼는 마음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순간을 기억하게 만든다. 누구도 모르는 우리만의 역사 속에 버젓이 이름 붙은 날들을 추려 함께 기념하게 만들고,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것으로 오래된 그 날들은 스스로를 덧칠한다.


많은 것을 기억하기에는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다. 필요한 것 만 쏙쏙 골라 저장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똑똑하지도 않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생각한다. 사랑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많은 부분을 기억할 수 있다. 역사 속에 이름 붙은 날들도 같을 것이다.


모든 순간을 담아낼 수 있는 한글이 태어난 순간과, 자유로이 뜻을 품을 수 있는 기점이 되어준 광복의 순간과 감사할 마음을 만들어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과 그런 나를 사랑해주는 연인의 사랑까지. 이 모든 것들을 동일 선상에 두고 사랑한다면, 이름 붙은 날들을 좀 더 상기할 수 있지 않을까. 기억해야 한다 옥죄는 것이 아닌, 감사와 사랑으로 기억을 회상하면 잊히지 않지 않을까.


오늘은 우리만의 언어로 기록할 수 있고 전할 수 있으며, 사랑한다 고백하게 만들어준 한글이 태어난 날이다. 오늘은 언어를 사랑하는 것으로 이 날을 상기해야 겠다.




와카레미치 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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