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속에 사랑은 다시 피어난다.

스며드는 사랑

by 전성배

우진은 사랑이면 모든 게 가능하다는 망상에서 깨기로 했다. 흔하고 평범한 것이 가져다주던 안도와 사랑도 현실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마음 편히 아침에 눈을 떠, 사랑하는 이수를 바라보고 그녀가 깨지 않도록 숨마저 조심히 쉬던 그 순간도 결국, 길고 긴 업무에서 주어진 작은 휴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다른 얼굴로 변하는 우진을 사랑하던 이수는 점차 병들어 갔다. 사랑하는 데 사랑하는 이를 기억할 수 없는 고통이 결국 그녀에게 병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우진은 사랑이면 될 것 같았던 특별한, 아니 특별하다 생각했으나 평범했던 '우리'를 끝내고 말았다. 그녀의 안식을 위해 스스로 아님을 자각했다.


그렇게 매 순간 정신을 혼미하게 했던 약 기운이 빠져나간 뒤, 그들은 또렷한 현실만 남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동시에 사랑은 허망할 만큼 무엇도 남기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모습이 변하는 남자 '우진'과 그런 그를 사랑하는 여자 '이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일부 줄거리다. 오래전에 본 영화이며 이미 이 영화를 통해 몇 개의 글을 작성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에서는 여전히 글이 되어 다시금 일깨워줄 내용들이 수두룩했다. 면밀히 따지자면 영화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내재했다기보다는, 영화가 다룬 사랑에 대해 나의 관점이 새롭게 하나 더 생겼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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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대체로 사랑을 다룬 영화가 그러하듯, 이수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도피한 우진을 찾아가 사랑한다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아니, 사랑과 이별, 재회의 순에서 다시금 발현되는 사모의 정에 의문이 들었다. 사랑이 끝난 후에 무엇도 남지 않는 허망함은 우진과 이수의 사랑만이 아니라 현실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의 이별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 코앞에 당도하고, 사랑한다는 말에 특별한 힘이나 장치 같은 건 없다는 걸 증명하듯 감정은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리고 만다.


사실, 영화의 설정은 무엇도 남기지 않는 사랑을 입증하고 있다. 매일 아침 변하는 얼굴로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와 매일 변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매일 이별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재회 따윈 없다. 한 번 나타난 얼굴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영화의 또 하나의 설정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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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사랑이나 영화 속 판타지적 사랑은 그렇게 별반 다르지 않다. 한번 이별한 사랑에 사랑은 남지 않고, 미련이나 후회 같은 찌꺼기만 다 마신 커피의 흔적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그런 대도 실제로 심심치 않게 재회한 연인의 사랑을 목격하곤 할 때 혼란스럽다. 한번 사라졌던 사랑이 어떻게 재회 속에서 다시 발현될 수 있는 것일까.


영화 속 이수의 대사 중 하나는 이러하다. "그 사람과 같이 듣던 음악, 같이 갔던 장소, 식당의 밑반찬이 뭐였는지 까지 다 기억나는데, 그 사람 얼굴이 기억이 안 나" 그리고 이수는 우진과 같이 듣던 음악을 우연히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모든 추억을 헤아리다 다시 그를 찾아 나선다.


아마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나름의 형태를 유지하며 연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사랑이 하나의 형태를 이뤄 존재한다면, 연인의 이별에서 다시금 생겨 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아마도 사랑은 모든 순간에 녹아 스며드는 것이 아닐까.

얼굴 하나 제대로 기억할 수 없게 매일 바뀌는 우진을 사랑했던 이수가, 끝끝내 그를 놓을 수 없던 이유는 매 순간 사랑이라는 이름을 푯말로 걸어둔 우진이 모든 순간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가던 장소와 음식, 음악과 시간 속에 때때로 힘들고 지쳤으나, 매번 행복을 점철했던 선량한 추억들에 사랑이 너무도 짙게 배어 들었던 것이다.


재회하는 연인들이 다시금 사랑을 발현할 수 있던 연유는 사랑을 형태로 유지한 것이 아니라, 존재로써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와카레미치 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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