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록 약자였다.

추분秋分

by 전성배

이제 그만 일어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 혹은 소곤거림 같은 햇빛이 창문 앞을 가린 커튼의 틈새를 비집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따뜻한 기운을 가득 품은 황금빛의 햇빛과는 달리, 어디선가 냉한 바람도 함께 들어왔는지 방안에 약간의 한기가 돌았다. 출처를 찾아보니 창문 틈새로 햇볕과 함께 따라 들어온 것이었고, 아마도 어젯밤에 미쳐 맞물리지 못한 창문과 틀의 사이를 용케 알고 들어온 듯했다. 방안을 점층적으로 메워가는 햇빛은 따뜻했으나 정작 한기가 돌던 아침. 가을에 접어든 시골의 아침은 매일매일이 예외 없이 이러했다. 서로의 욕심을 내세우거나 비중을 차지하려 용을 쓰는 싸움이 아니라, 공존과 공평을 유지하며 동시에 존재했다.


그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절기 중 하나인 추분秋分을 벌써 넘어선 것이다.


낮과 밤의 격차는 여름과 겨울에 가장 심해진다. 겨울은 차가운 계절이란 별칭에 어울릴 법한 밤과 손을 잡고, 아침의 뒷머리를 잡아 느직하게 만들며, 저녁이 될 즘엔 매몰차게 낮을 밀어낸다. 밤과 추위만이 의기양양하게 겨울을 등지고 한 시기를 군림한다. 반대로 여름이면 이 모든 상황은 역전되어 낮과 더위만이 오직 여름을 믿고 활개를 친다. 이를 보면 여름과 겨울은 편차와 차별에 극도로 치우쳐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봄과 가을만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평등과 수평적인 관계를 몸소 실천한다고 생각한다.

와카레미치

권리와 의무, 자격이 차별 없이 고르다고 말하는 평등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말하는 권리는 균등한 크기의 생명을 갖고 같은 모습을 꾸리고 사는 우리가 태초에 이미 이뤘던 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는 진화와 발전을 통해 활발해진 삶과 달리, 유일하게 퇴보하고만 상실된 것이기도 하다. 비약적인 발전으로 우리는 지나온 세대들보다 영특한 기질을 갖고 있다.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고 선과 그른 행동을 구별하며, 각자 자신의 삶에서 관철해야 하는 것이 무엇임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경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린 공평과 평등에서 성숙해진 만큼 멀어져 있다.


여기서는 올곧이 개인의 능력으로 일궈낸 삶의 부귀에서 오는 거리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이슈였던 출신과 외모, 개인감정에 의한 불합리한 차별과 같은 감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불가항력적인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이미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우리 인간이 개인의 감정과 편의에 치우쳐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여전히 제자리걸음 일 뿐인 난제이니 섣불리 말할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이것에서 만큼은 평등과 공평을 누렸으면 하는 것을 말하려 한다. 바로 연인과 친구 같은 사적인 관계에서.

와카레미치

정情이란 이름의 관계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비 물리적인 것에 얽혀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형제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사람은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왜, 더 많이 사랑할수록 되려 더 작아지는 것일까. 사랑이란 감정을 가장 크게 움켜쥐는 이는 관계에서 항상 약자였다. 바람이나 요구는 사랑할수록 뱉어내기 어려운 것이었고, 부탁이나 강요는 사랑할수록 거절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공적인 관계에서 오는 차별이 평등하다 여겨질 만큼.


세상에는 아무리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 들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담 애초에 동등한 크기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이란 관계에서 약자가 태어날 수밖에 없다. 갓 시작한 사랑만이 잠시 설렘이라는 이름 아래 약자와 강자가 가려져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열이 갈리고 만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에서는 열이면 열 부모가 약자가 되어버린다.


가을과 같은 사랑은 꿈처럼 아득하다. 낮과 밤의 길이를 맞춰 동등한 사랑을 베푸는 계절이 아름답다. 그런 계절을 따라 너와 나도 사랑하면 좋으련만. 누구의 사랑의 크기가 더 큰지 작은 지 가늠 하며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이 이만큼임을 말하고 너의 사랑이 이만큼임을 들었을 때, 가을의 절기처럼 누군가 귀띔해주면 좋으련만,


우리가 같은 크기의 사랑을 하고 있다고.




와카레미치 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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