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추억과 기억을 나름의 기준으로 구분한 글 하나를 읽게 되었다. 평소 글을 씀에도 글 읽는 버릇을 아직 못 들인 나는 타인의 글을 읽는 것을 스스로 강제해서라도 의식적으로 읽는 편인데, 이는 다른 이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비어버린 광산에서 새롭게 광물을 발견하는 경험을 매번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에게 있어 새롭게 발견한 광물이 되어준 글 하나를 떠올리며, 추억과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실 그 글은 추억과 기억을 메인으로 써 내린 글이 아닌, 한 단락 정도에만 담아 다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초석으로 사용한 글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주제를 중점에 두고 무언가를 감상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대부분 글이나 영상이 가진 제목을 중점으로 결국 대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해석하지만, 어떤 이는 그림에 들어간 색채나 기법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림을 이름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에 더 관심을 갖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담는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생긴 회피적 버릇일 수도 있겠지만, 글이나 영화를 볼 때나 음악을 들을 때 나는 결말까지 본 뒤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무엇이든, 진행되고 있는 러닝 타임 내의 과정을 들여다본다. 노래를 예로는 특정 노랫말에, 영화로 치면 특정 장면이나 대사에, 글로 치면 앞서 말했듯 결과를 야기하기 위한 초석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그 글은 추억을 기억을 상위 호환하는 가치라 말했다. 추억이 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고, 그것으로 우리는 살아가며 나름의 위안이나 삶의 이유를 그것에 두어 연명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뇌는 매 순간 모든 것을 데이터화에 저장하는 만큼, 세상 어떤 기계 보다도 막대한 정보를 담아낸다. 하지만 컴퓨터의 하드처럼 데이터를 영원히 보관한다는 것은 망각이라는 꼬리표를 단 우리에게는 불가능 하기에, 추억이 될 만한 것을 따로 추려 저장하고 기억은 순차적으로 소멸시킨다. 그래서 그 글은 추억은 기억의 교집합이라고도 표현했다. 수많은 기억들이 모여 겹쳐진 부분에서 빛나는 것이 바로 추억이 되어 다른 공간에 저장되는 것이라 말했다.
나는 기억과 추억을 구분한 짧은 문장에서 올해의 가장 따뜻한 위안을 느꼈다. 기억들이 모이고 모여 추억을 만든다는 것.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경험들을 통해 나는 더욱 확신했다.
지난 월요일 저녁 연인과 함께 친구들을 만나 커피 한잔을 하고 포장마차로 향했다. 평일 저녁은 주말과 달리 동네 술집을 조용한 분위기로 유지시켰고, 우리의 대화 소리만 가게에 퍼지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우리는 끼니가 될 만한 메뉴들을 몇 개 시켜놓고는 소주 한 병을 비워나갔다. 늘 만나는 사람들이었기에 특별한 사건들을 이야기할 수는 없어, 대화보단 침묵의 비중이 조금 더 높았다. 그러다 한 친구가 침묵을 깨며, 초등학교부터 인연이 있었던 우리들의 옛 추억을 끄집어 내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우리는 순식간에 그 시절 유행하던 MP3로 듣던 음악과 함께 즐겨하던 몇 개의 게임들을 시작으로, 마인드맵처럼 옛 기억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대화의 크기를 키워나갔다. 학교 앞에서 사 먹던 컵떡볶이나 닭다리 튀김, 250원 정도 하던 버스비와 음악을 듣던 각자의 방식, 광마우스 이전의 볼마우스 이야기, 소풍 갔던 추억과 공식처럼 쓰였던 "수학여행하면 경주와 설악산"등. 너무도 많은 그 날의 추억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하나같이 같은 말을 뱉어냈다.
"우리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겠지?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봐. 소위 말하는 '아재'가 되어가나 봐."
요즘에는 공감할 수 없는 우리만이 아는 추억들. 우리 이상의 세월을 살았던 사람들만이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우리만의 작은 자랑거리들. 우리는 그것들이 이리 반갑고, 보람찰 정도로 기쁘게 와 닿을 줄 몰랐다. 마치 훈장처럼 우리를 으쓱하게 하던 어린 친구들이 모르는 우리만의 이야기들이 말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추억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같은 나이를 가졌다 한들 동일한 추억을 갖고 있다 말할 수 없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과 시간이 다르기에 추억이 될 것과 기억으로 남아 사라질 것들의 수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든 결국, 사고는 자기중심적으로 이뤄진다. 결국에는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살아지는 세상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앞 세워 다른 어린 친구들보다 더 많은 추억을 쌓았다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가장 큰 매력은 추억이 늘어간다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이라 할만한 것들이 많지 않던 나에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추억의 살이 점점 불어나는 것과 같다. 그 시절의 몇몇 기억들이 추억화 되어 내 머릿속 어딘가에 깊이 박혀 있고 불과 몇 년, 몇 달, 며칠 전의 기억들 중에도 추억화 된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 모든 것은 가족의 애정과 친구의 우정, 그리고 연인의 사랑 덕이다.
늙어 늘어가는 주름과 새지는 머리칼과 쇠약해지는 육체는 두렵고 무섭지만, 그때까지 채워낼 추억들의 수에 조금은 설레기도 하다. 설령 혼자 남게 된다 해도, 추억으로 인해 더 숨 막히는 외로움에 집어삼켜진다 해도, 기꺼이 기쁘게 웃으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망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수시로 잃어가는 기억들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보류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우리를 정작 살게 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게 해 주니까. 우리는 우선,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행운 하나는 평등하게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와카레미치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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