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지속 사이에서 물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는 인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하기에 앞서, 이별과 이별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마음을 쥐어 짜내는 이들과 그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각자 자신의 나이까지 살아낸 사람들에게 나이란 곧 인생의 두께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두께는 마음에 겹겹이 쌓여 스스로 정립해둔 사상과 가치관, 성격을 보호한다. 나이가 들수록 성격을 못 굽히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고, 당연히 이런 두께가 쌓일수록 사랑이라는 열쇠가 열 수 있는 문의 개수도 한정될 수밖에 없다. 운명을 걸만큼 갈망하는 사랑은 나이를 막론하고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든 사람도 예외 없이 찾아오지만, 사랑을 대하는 나의 마음의 두께에 따라 조금은 달리 해석된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찾아온 사랑은 마음의 두께가 얇아 그 문을 활짝 열어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 나와 상대의 서로 다른 인생이 얽히고설켜 새로운 색을 탄생시키는데 여과 없이 정성을 다한다. 반면, 나이가 들 수록 쌓여가는 마음의 두께는 상대와의 조화를 방해한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나를 보이는 것과 상대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져, 우리는 서로의 주위만을 겉도는 사랑을 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이별은 점차 수월해지고 사랑에는 냉철해진다.
그러나 가끔씩, 마음의 벽이 두꺼워질수록 차갑게 식어가는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도 변수가 등장한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끝까지 닿은 사랑이 그러할 것이다.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혹은 너무도 나에게 완벽하게 다가와 완벽한 시간들을 함께해 주었을 때 사랑은 마음의 끝까지 닿게 되고 그때, 이별과 지속 사이에서의 갈등이 등장한다.
이별을 사랑하는 내내 곱씹던 한 사람의 사연이 그러하다. 한 사람의 사연임에도 많은 이의 사정이 될 수 있는 이야기. 예상치 못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무심한 말과 행동으로 일관하던 그녀의 모든 것에 지쳐 이별을 뱉었고, 그 이별은 예상했듯 괴롭힘 없이 훨훨 날아가 지금의 그녀를 알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기억나지. 혼자만 절절매는 연애인 듯 외사랑인지 모르는 사람과 헤어졌던 얘기. 그 뒤 몇 주가 채 되지 않아 새롭게 만난 그 사람. 그 사람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려고 해. 헤어진 뒤 마음이 내려앉았던 나에게 친구였던 그 사람이 기분 전환할 겸 선뜻 밥을 먹자고 했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위안을 받았었어. 그리곤 며칠 뒤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간에 만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였지.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 시답지 않은 일상과 무미건조한 사랑의 결말 같은 것과 함께 말이야. 그런데 어느 순간 대화의 흐름이 끊기더니 잠시 정적과 함께 몇 잔의 술이 말없이 비워졌고, 우리는 그날 사랑의 가장 깊은 스킨십을 나누게 됐지. 알아, 어찌 보면 술 마시고 실수한 거처럼 보인다는 거. 그런데 만남의 조급함과 느긋함의 차이로 사랑이 '된다 안된다'를 논하는 나이는 지났잖아. 어쩌면 첫 만남으로도 확실한 사랑임을 확신할 수도 있지. 실제로도 그걸 증명하듯, 우리는 먼 거리를 오가면서 모든 만남마다 애틋하고 사랑스러웠으니까 내 말이 맞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모르겠어. 나는 또 이별과 지속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어.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끝내야 할 사람과 참고 이겨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거야.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함께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서로 튕겨나갈 듯 찔리기만 하는 사이를 끝내야 하는 걸까"
그는 쌓이는 인생 앞에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벽을 겹겹이 쌓아낸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이성적이었고 만남에 조심스러웠고,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가벼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때때로 꾸짖으며 자신만의 사랑을 갖고 정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사랑의 시작이 과감해서 놀랐고, 그 사랑이 어떤 사랑보다도 따뜻하고 정갈하게 이어지는 것을 보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모든 만남에서 나타나는 오해와 서로의 차이로 인해 부딪히기를 반복했고, 이별과 지속을 고민하는 상황에 까지 닿고 말았다.
사실 사랑의 시작만큼이나 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내 마음의 벽을 어떻게 허물고 다가온 사람인지, 몇 살에 시작한 사랑인지는 어쩌면 중요한 사항이 아닌지도 모른다. 사랑하면 이별할 때 찾아오는 미련과 후회 같은 그리움이 옥죄는 것이 겁나고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하지만 결국, 행복을 점철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관계를 유지하려 하는 것이 사랑이지 않던가. 부딪히고 화해하기를 반복해도 결국은 행복이 더 크다면 관계를 유지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반대의 경우에는 관계를 끊는 것이 현명할 테고. 그러나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끝을 이야기한다.
단물과 쓴 물을 번갈아 마시며 수시로 얼굴을 찡그리고 웃기를 반복하는 내내, 감정은 소모되고 회복되는 건 더디니까. 쓴 물을 마시 뒤 단물을 마셨을 때는 찡그린 얼굴이 서서히 풀려나가는 반면, 단물을 마신 뒤에 쓴 물은 급격한 표정 변화과 괴로움을 안긴다. 모든 아픔이 그러하다. 치료는 더디고 상처는 한순간에 살을 파고든다. 고통은 길며 치료 뒤에 찾아오는 안식은 멀고 애달프다.
그렇기에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면 끝으로 기우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상처와 회복을 오가기보단 순환을 멈추고 나를 멈추어 안정을 갖는 것도 다음 사랑을 위한, 나를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회복이 느린 상처를 약이 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받는 게 정답은 아닐테니까.
와카레미치입니다. 삶과 사람의 틈새에 산란해 있는 사정을 추려 글을 쓰고 윤색潤色합니다. 땅에서 시작된 작은 생명이 수십억 인간의 삶이 되는 것에 경외심을 느껴 농산물을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수필 연재와 만났던 농민의 작물을 독자에게 연결해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INSTAGRAM / PAGE / FACE BOOK / TISTORY (링크有)
※ 詩와 사진 그리고 일상은 인스타와 페이스북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농산물 구매 관련 문의 http://pf.kakao.com/_djzeC
※ 마켓시뷰 : https://smartstore.naver.com/siview
※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