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작가의 <글의 품격>뒤, 그 한 문장

by 전성배

개인 혹은 사물이 가진 고유의 성질이나 품성, 혹은 본성을 말하는 성격은 개성을 파생시키고, 파생된 개성은 그 사람이 가진 절대적 특이점이 된다. 그것으로 우리는 같은 시대에 같은 인종으로 사는 똑같은 존재임에도 서로를 구별하여 정情을 맺고, 더 깊게는 사랑을 한다. 성격이란 나와 당신을 구분 짓는 갈피,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 당신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작가, 이기주씨는 이번에 새롭게 출간한 책 <글의 품격>까지 포함해 익히 우리에게 알려진 네 권의 책으로 말과 글에도 뱉어내는 이의 성격이 고스란히 밴다고 말한다. 사실, 이번 글의 품격을 손에 쥐기 전까지, 때때로 그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파편과 같은 책의 일부를 보면서도 이를 눈치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성격이란 그저, 말에만 배인 체 상대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경지였다. 글이 좋아 이것을 써내는 것을 낙으로 산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언품言品만이 상대를 알 수 이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글에도 필자의 성품이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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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참으로 생경한 주장이었다. 말에는 목소리의 색과 음량, 조금씩 흘러나오는 말버릇과 구사하는 문장들을 통해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는 상대가 무의식중에 뱉어내는 말투까지 추합하다 보면 보다 명확한 윤곽을 잡아낼 수 있을 만큼, 꽤나 신빙성 있는 성격의 가늠자라 할 수 있다. 반면 글은 어떨까. 두드러지는 색 없이 하얀 무지에 한 가지 색의 글자가 보이는 것의 전부이며, 이것들이 얽혀 소설과 칼럼, 시와 수필 같은 주제가 될 뿐이다. 이는 내가 200편 남짓의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이 안에 온전한 내가 담긴다 생각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타인의 글을 읽을 때 마저, 언품言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성격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그가 말한 하나의 문장을 보기 전까지.


지난 5월 22일에 정식으로 출간한 <글의 품격>을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고 익일 날 저녁에 손에 쥐었을 때, 뒤표지에 있는 하나의 문장을 보았다.


"나는 문장을 쓰고 매만지는 과정에서 말에 언품言品이 있듯, 글에는 문격文格이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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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이어지는 몇 줄의 문장을 채 읽기도 전에 나는 멈추고 말았다. 문격文格이란 단어에 지금까지 눈을 감고 글을 쓰고 읽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원사'라는 직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직업이지만, 과거 영국 영화를 보다 보면 나오는 거부巨富의 저택에 있는 큰 정원에는, 저택을 관리하는 것과 동시에 정원을 관리하는 '정원사'가 나왔었다. 그들은 공원이나 정원의 모양새를 조성하는 조경사와 달리, 나무와 풀, 꽃을 하나하나 가꾸는 사람이었다. 움츠러드는 겨울이 지나고 눈을 뜨는 봄이 지나, 허리를 곧추세우는 여름이 될 무렵이면, 가지 위의 잎들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다듬는 일을 했다. 그로써 나무와 풀, 꽃들이 제 모습을 잃지 않도록 지켜내고 있었다. 이것들은 정원이라는 수많은 이름으로 만들어진 뜰 안에 각각의 특질을 나타낼 수 있는 성격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몇몇 거부들이 가진 정원을 보면 하나 같이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채, 사계절을 입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정원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정원 위에 갖가지 꽃과 나무, 풀을 심은 채 오랜 시간을 들여 가꾸는 일은 초고를 쓰고 끝없이 매만져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날 나는 그저 정원을 꾸리고 적당히 꽃과 풀을 어루만질 뿐인 소홀한 정원사였음을 깨달았다.


사랑으로 그것들을 보살피며 이들이 가진 이름과 색, 특질을 드러냄으로써, 본디 이 정원이 다른 정원과 구별될 수 있는 성격을 발견해 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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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은 하나의 땅 위에 수만 가닥으로 펼쳐진 물줄기 중, 고목나무가 잎을 잃은 채 처량하게 고개 숙인 숲을 향하고 있다. 성실히 그 물줄기를 따라 함께 흘러가다 보면 죽어 떨어진 잎이 거름이 되어, 새로운 싹과 함께 꽃봉오리를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글의 한 줄의 문장과 그것이 모여 만들어지는 문단은 모두, 대단한 지식이나 찬란함을 전하기보단 고즈넉한 말과 함께 흔하지만 가장 특별할 수 있는 일상을 제시하는 글이었다.


글에도 그 만의 성격이 담기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혹자는 이기주 작가의 글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감정과잉이라는 단어를 몇차례 목격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의 문격이 그만큼 감정에 충실하고 또 그 충실한 감정을 많은 이들의 가슴을 동요시킬 만큼 깊이 있는 문장으로 전달하는 힘이 있다. 그의 글은 늘 놀랍다. 유일하게 완독했던 책들의 전부는 그의 것이었다.


나는 이제, 새로운 그의 글을 읽기 위해 글의 품격을 펼친다. 그리고 새롭게 일 동요는 나의 글을 더 정돈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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