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이든 어느 틈엔가, 멀어진 오후에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바람은 사정하듯 막혀버린 마음에 눈치를 보며 문을 두드리고, 햇빛은 눈을 감고 자신은 모르는 이야기라며 바람과 나를 비춘다. 숲을 한번 지나온 바람에는 풀 내음이 깊게 배여있으니, 어쩌면 이 바람 어딘가에는 그 시절 우리의 살 내음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관통하는 것은 오직 중력이라는 말을 어느 영화에서 들었다. 이것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이론으로 현시점에서는 중력만이 모든 시간을 꿰뚫며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호흡과 그것을 닮은 바람도 모든 시간을 꿰뚫고 존재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스며들거나 스며나오다를 의미하는 '배다'는 시간을 꿰뚫는 것이 중력만이 아니라 말한다. 숲을 지난 바람에 배인 풀 내음은 이 바람이 어떤 것이든 몸에 싣고 세상을 유영한다 말한다. 공장지대를 지난 바람에는 기계가 뿜어낸 매캐한 한숨이 실려있고, 식당가를 지난 바람에는 그날 만들어진 음식들의 살 내음이 배여있다. 그리고 바람은 더 나아가, 날카로운 대화와 함께 이별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연인의 싸늘함까지 담아낸다. 냄새를 넘어서 기운과 사연까지 담아내는 바람. 그럼 이 바람은 그것들을 안고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
나는 이것들이 흩어지지 않고 세상을 떠돈다 생각한다. 자신이 껴안은 것들을 놓지 않고 세상을 방랑한다. 인간은 마치 잊어야 살 수 있다는 듯, 수시로 기억의 일부를 비워내기 바쁘니, 바람은 의무처럼 잊힌 혹은 잊힐 내음과 사연을 담아 세상을 떠돈다. 그리고 이것은 지구의 대기조차 뚫지 못한 채 배회하니, 지워져 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럼, 어딘가에는 나와 살을 맞대었던 분분한 살 내음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떠돌고 있을 것이다. 지워지는 건 작은 내가 가진 옅은 기억일 뿐. 세상을 깊게 감싸 안은 바람은 그것들을 몸에 담고 여전히 어딘가에서 불고 있을 것이다.
어떤 매개체도 없이 불현듯 떠오른 기억은 분명, 이 바람이 세상을 돌고 돌다 내게 닿았기 때문이겠지.
사라지지 않을 향을 품고 날리는 바람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며 지금은 현재라 말할 수 있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만큼 이 바람의 미래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으니, 중력만이 모든 시간을 통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siview market / siview instagram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