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원을 먹고 사는 꽃이 어딘가에 피어 있을지 모른다. 폭풍 속에서도 꽃잎 하나 떨어 뜨리지 않고, 긴 가뭄 속에서도 꽃잎의 끝자락 하나 마르지 않는 한 송이의 염원의 꽃이 어딘가에 피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진정 그 꽃이 존재한다면, 나를 먹고 피어났을 것이다. 나의 바람과 소원, 갈망과 욕심을 먹으며 싹을 틔우고 봉오리를 맺어, 꽃잎을 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색으로 자랐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 꽃은 선과 악을 구별하여 양분을 편식하지는 않는다는 것. 나의 바람과 염원 같은 것들이 얼마나 이기적이었고 편파적이었느냐에 따라 좀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 피거나, 거무스름한 빛 혹은 고운 연분홍빛을 띨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 꽃은 분명 어딘가에 피어있다. 그리고 나를 먹고 자란 꽃은, 당신을 먹고 자란 꽃은 이미 만개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기를 알 수 있다. 나의 염원과 바람이 자꾸 빗나가고 무너질 때가 바로, 꽃의 개화기다.
염원을 먹고 자라는 꽃은 내가 어머니에게 잉태되었던 과거, 나에게 심어졌다. 그리고 본능을 앞세운 순결한 욕심을 영양분 삼아,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밥을 먹기 위한 울음, 안겨 있고 싶은 바람, 나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이기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 꽃은 그렇게 성인이 될 무렵 갈망이 도를 넘어설 때 급격한 성장을 이룬다.
누군가를 갖고 싶고 안고 싶은 마음과, 어떠한 것을 차지하고 싶은 탐욕과 소유욕들. 대부분 내 그릇을 넘는 것을 갖고자 할 때, 꽃은 필요 이상의 양분을 먹으며 자란다. 조금씩 자라던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영양의 공급으로, 점차 제 색깔을 갖추며 꽃은 이내 잎을 펼친다. 그리고 다 자란 꽃의 말로는 무엇도 먹지 않은 채 시들어 사라질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다. 더 이상의 영양분은 필요 없으니, 주인이 가진 염원은 갈 곳 없이 흩어질 수밖에.
언제부턴가 바람들이 수시로 무산되는 것을 보며 이를 깨달았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제 그릇 만큼만 담아낼 수 있다는 말이, 분수라는 말이 욕심에도 투영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너무도 많은 욕심 탓에 꽃을 빨리 피웠는지 모른다. 너무 어두운 갈망 탓에 꽃은 더 거무스름하게 피어, 더욱더 주인의 염원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모든 건 제 그릇 안에서 움직이는 듯하다. 삶의 말로에 당도했을 때 내가 이룬 것과 잃은 것을 대면하는 순간이 일생의 나의 그릇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염원의 꽃도 마찬가지다. 탐욕과 욕심이 가득한 바람이 계속된다면 꽃은 너무 빨리 피어, 진정 바라는 것을 맞닥뜨렸을 때는 쉽게 사라져 버릴 것이다. 염원을 먹고 자라는 꽃. 온갖 탐욕으로 그 꽃을 피운다면, 정작 이뤄져야할 염원은 무산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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