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소모하는 사람의 사정

by 전성배

상흔으로 얼룩진 오래된 대문은 애초에 그보다 더 오래된 고목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겨울의 칼바람에 옅게 패어 떨어져 나간 부분과 외력에 의해 부서져 나간 부분이 함께 뒤섞여 나무의 모양새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쪽 문이 한 쌍인 대문의 가운데에는 적색의 녹이 짙게 서려있는 걸쇠가 걸려 있었다. 꽤 오랫동안 걸쇠는 열리지 않은 채, 그렇게 세월을 감내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는 오래된 가옥.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단 하나의 발길도 없었던 것 같다. 우거진 풀과 방대하게 퍼져있는 거미줄, 대문에 그늘을 드리우는 작은 지붕에 퍼져있는 넝쿨로 짐작할 수 있었다. 고즈넉했지만, 고집스러워 보였던 집. 그 집은 한 여인과 닮아 있었다. 한 평생 기어코 누구에게도 문을 열지 않은 채, 수많은 날을 스스로의 문에 칼집을 내던 한 여인의 인생 중 대부분의 편린과 닮아 있었다.


리모컨을 들고 티브이 채널을 생각 없이 돌리다 보면, 늘 거쳐가는 건 영화 채널이었다. 급한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한 이야기를 듣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그 골이 싫어서 일까. 나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보다 영화를 더 좋아한다. 영화가 가진 한정된 러닝타임은 아무리 복잡하고 장대한 이야기일지언정, 결국에는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결말로 귀결됨을 의미했기에, 새벽녘의 산기슭에서 받아내는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상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가 우연히 보았던 이름 모를 영화는 한 여인의 어둠을 고스란히 표출하고 있었다. 짙은 눈 화장과 빨갛게 발려있는 립, 조금은 부스스하고 길었던 파마머리와, 타이트한 원피스의 그녀는 작은 클러치를 든 채 어떤 남자를, 아니 어떤 남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영화는 시간차를 두며 서로 다른 남자들을 그녀에게 세웠지만, 결국에는 단 하나의 행동을 이어질 뿐이었다. 그것은 남자와 손을 잡고 무표정한 입맞춤과 밤을 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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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여자로서 치욕적인 상처를 입게 된 뒤, 건조하게 몸을 뒤섞는 것 만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오해 속에서 한 평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한 여인의 생을 송두리째 비통한 삶에 빠뜨렸던 것. 나는 그 영화에 더 이상 눈과 귀를 둘 수 없어 채널을 돌리다 이내 끄고 말았다. 영화에 담긴 여인의 삶이 결코 공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그녀의 선택에 의한 삶이니 편을 들 수는 없겠지만, 방아쇠를 당긴 사건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생각했고, 어딘가에는 일어나고 있을 이야기라는 것에 너무도 불편해졌다. 누군가는 그 어둠과 같은 선상에 있을 거란 사실과 누군가는 그녀의 어둠을 유지하기 위한 비열함에 동조했을 거란 사실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러한 상처로, 이런 비슷한 결의 아픔으로 마음에 문을 닫고 빗장을 단단히 걸어둔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는 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사정이다. 또한 영화는 극단적인 사건으로 여인의 사정을 설명했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각자 자신만의 사연에 의한 아픔으로, 사람 간의 관계를 쉽게 휘발시키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두 단단히 문을 닫고 스스로 대문에 상처를 내며 살아간다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은 알고 있다. 대문의 상처가 쌓이면 쌓일수록, 한 번 열린 문은 제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걸. 그럼 문을 잃어버린 마음의 입구는 입구의 기능을 상실한 채, 자신 안의 모든 걸 게워내게 하는 통로가 되어 자신을 피폐하게 만든다는걸.


그것을 믿기에, 관계를 소모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염오를 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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