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하기에 살 수 있는 인간 (스포 포함)
불안정한 것이 주는 불안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는 단순한 물건에서부터 고귀한 인류의 존폐까지 투영하는 난제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 혁명과 함께 찾아온 A.I라 불리는 인공 두되. 이제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 낸 과학이라는 기적을 통해 새로운 존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은 이미 갓 태어난 아이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현실 속 지금을 상상했던 수 십 년 전부터 우리는 스스로 창조한 것에 의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었다. 영화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가 이를 대표하는 상상일 것이다. 이 두 영화에 등장했던 A.I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자신의 땅도 모자라 스스로를 파멸로 인도하는 인류의 어리석음을 벌하고, 멸하는 것. 그로써 인류의 생명이 아닌 인류가 이룩한 문명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이 엠 마더>는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가 세상을 뜻대로 이룩한 직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류가 멸망한 직후, 한 로봇이 기지 내부에서 눈을 뜬다. 로봇은 곧장 63,000개의 인간 배아가 저장되어 있는 배양기를 열어 '여성'이라 적힌 하나의 배아를 인공 보육기에 넣었고, 이내 인공 양수가 보육기를 가득 채우며 배아에 영양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아기는 보육기 내부에서 나와 울음을 터뜨렸다. 로봇은 빨간색 천으로 양수에 젖은 아이를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차가운 자신의 기체에 아이가 닿는 부위에만 열을 공급하며 아이의 체온을 유지시켰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에게만 국한된 시간의 흐름이 여과 없이 빠르게 흘렀고, 아이는 로봇을 '마더'라 불렀다. 로봇은 인간보다 더 효과적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실행했다. 의학, 과학, 무용과 같은 외적인 지식부터 윤리와 같은 내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한 명의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체계적이었고, 지체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마더의 뜻대로 지식적은 부분은 물론, 윤리적인 부분까지 완벽하게 성장해 나갔다.
"의사에게 5명의 환자가 있고, 이들 모두 장기를 이식받아야 살 수 있지만 적합한 장기가 없어. 그러던 중 어느 날,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한 여섯 번째 환자가 들어왔지. 환자는 치료가 필요했지만, 이 환자에게는 5명에게 필요한 장기가 있었어. 의사가 치료를 늦춘다면 여섯 번째 환자는 죽지만 그의 장기로 다른 5명의 환자는 살 수 있고, 치료를 속히 진행한다면, 여섯 번째 환자는 살지만 다른 5명의 환자는 죽게 되지. 이 상황에서 의사가 취해야 하는 최선의 방침은 무엇일까."
라는 마더의 질문에도 아이는 자신만의 최선의 답을 내며, 마더가 추구하고 있는 완벽한 인간에 부합하고 있었다.
완벽한 인간. 불안정함은 인간에게서 배제될 수 없는 불편의 요소로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는 절대적으로 인간과 뗄 수 없으므로, 불안정하지 않은 '완벽한 인간'이라는 단어 자체는 모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로봇은 분명히 불안정함을 배제한 완벽한 인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더는 완벽하길 희망하는 아이에게, 보관되어 있는 인간의 배아를 보여주며 말했다.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고, 대가족을. 그리고 네가 그들의 언니와 누나가 되어야 한다고.
이후 영화는 마더 스스로 가장 완벽하게 키웠다 믿었던 아이가, 호기심과 의구심을 이기지 못하고 벌이는 사건으로 인해 진실이 밝혀짐으로써 아이가 마더 없이 세상에 나서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결말에 달하면서 밝혀지는 마더의 실체와 아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영화를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이 좋겠으니, 여기서 매듭을 짓고 마더가 인간을 키웠던 모순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겠다.
영화 속 마더는 인류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불안정한 인류는 약탈과 서로 상처를 입고 입히기를 반복하니, 이러한 행태는 결국 필연적으로 멸망에 달할 것이라 스스로 확신했다. 그에게 있어 인류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이었다. 마더 스스로 창조주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것. 이는 앞서 말했던 영화들 만이 아니라, 인공 두되 로봇을 소재로 하는 모든 영화가 내포한 진실이었다. 그래서 마더는 선택했다. 스스로 완벽한 인류를 만들어 내는 것. 인류의 재건이었다.
마더는 인류가 멸망한 직후, 인류의 재건을 위해 사전에 제작되었던 기지 내에서 인류의 기초가 될 6만 여개의 배아 중 하나를 선택해 최대 최선의 교육으로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기서 마더는 다른 영화 속 A.I와 달리 다른 선택을 밟아 나갔다. 스스로 인류 위에 군림하여 지배를 통해 인류를 지키는 것이 아닌, 오염된 인류를 한차례 거둬내고 새로운 인류에게 현 문명을 맡기는 것이었다.
이 의도는 로봇이 스스로 자칭하고 있는 '마더' 즉, 엄마라는 의미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부모의 존재는 아이에게 있어, 강하고 무너지지 않는 무서운 존재이면서도 아이를 지키는 수호자와 같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려 하지 않는 존재다. 아이를 위해 스스로 거름이 되는 것을 선택한 존재. 아이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며, 현시점에서는 세상에 실질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인물들임에도 감히 아이를 위해 제 시간을 불태우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현재를 걸고 아이의 미래를 키우는 사람들.
마더는 이들의 유지를 이어, 스스로 한 인간을 부모로서 완벽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아이가 다음 세대를 키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많은 보육기가 있었음에도, 지치지 않는 육체를 가진 로봇임에도 단 한 명의 인간만을 배양기에서 꺼내 키웠던 것이다. 마더의 실체와 그가 뜻을 이루기 위해 실행했던 일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저 마더라는 이름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자 했던 로봇의 삶만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분명히 현시대에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혹시 불안점함이라는 요소야 말로 진정, 인류를 지속시키는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가 중반부에 달하며 아이가 불신을 갖고 마더가 지향했던 길을 탈선하는 것을 보면서, 냉정히 말하자면 마더가 취했어야 할 이상적인 행동은 제 뜻을 따르지 않는 인간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달해서도 마더는 자신 "너의 엄마다"라는 말과 함께 그 아이를 다치게 하는 것을 멈췄다.
자신이 키워낸 불안정한 존재에게 스스로 엄마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완벽함을 추구했던 로봇의 모순이며, 스스로 불안정하다 판단한 인류를 배척했던 자신의 믿음에 대한 오류이다. 완벽하다 생각했던 로봇조차 저지른 실수. 그렇담 이는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불안정함은 인류의 기반이며 그것이 인류를 지속 시키는 힘이 아닐까.
그 불안정함이 완벽했던 존재조차 사랑으로 흔들 수 있고, 그 불안정함이 사랑을 하게 만드는 가치라는 걸 영화 속 마더는 스스로의 행동으로 말하고 있었다. 로봇인 자신도 스스로의 명령어를 무시하며 감정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보호했던 것을 보면.
siview market / siview instagram
aq137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