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았던 작품에 대한 예우

by 전성배

삐걱삐걱, 한 걸음에 하나씩 외마디 비명이 들려온다. 짙은 갈색으로 변색된 목재 계단은 그늘까지 드리워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고이고이 계단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외마디 비명만으로도 발길이 오랫동안 끊겨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 천장에 닿았을 때, 정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진 문의 손잡이에 이마가 닿았고, 그것을 잡아 위로 힘껏 올렸다.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 차 있던 계단에 햇빛이 쏟아진다. 산발하는 먼지 입자가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인다. 휘젓는 손짓에 맥없이 휘둘리는 먼지를 헤치며 올라서니, 빛을 피해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상자가 보였다. 천천히 다가섰고, 걸려있는 작은 걸쇠를 풀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낡은 노끈으로 묶인 두툼한 원고였다. 이곳에 봉인된 뒤로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덕분인지, 헤진 곳 없이 번진 잉크 자욱 하나 없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시나리오인 듯했다. 제목이 없어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신분을 지운 채, 알려져서도 알려질 수도 없는 일을 묵묵히 실행하는 한 집단의 이야기였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어느 작가의 손에 쓰인 이 글은 한 감독의 손에서 영화화되었다. 큰 인기를 얻었고, 이 영화 속 소재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회자되며, 제3의 존재가 있음을 믿는 사람들과 이를 숨길 지도 모른다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진 사람들의 무궁무진한 상상이 되기도 했다. 인기를 얻은 영화는 당연히 두 번째, 세 번째 시리즈까지 제작함으로써 인기를 동력 삼아 더욱더 수입을 올렸다. 이는 마치, 마지막 불씨까지 남김없이 태우려는 듯한 움직임이었고, 실제로 마지막 시리즈에 닿았을 때, 마지막 화력을 다한 불씨는 이내 꺼져 이 상자에 묻혔다.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와 음악, 소설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위에 언급한 시나리오는 이번에 새롭게 개봉한 영화 '맨 인 블랙'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다른 여러 영화와 음악들에도 통용되는 비애다.

네이버 영화

이는 욕심으로 인해 시작된다. 최초에는 그저 애정과 희망, 기대와 같은 하늘거리는 감정이 집약되어 만들어졌을 작품들은 인기와 그로 인한 수익을 얻으면서, 타인 혹은 집필자의 손에 넝마처럼 헤지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생기를 빼앗고, 향기와 촉감을 빼앗아 욕심을 충족시키는 사람들에 의해. 그래 욕심에 의해서.


애초에 순결한 마음으로 태어난 작품은 한 번의 불씨를 태우고, 고이 묻어두어야 하는 한 개 분의 생生일 지도 모른다.


다만, 좋은 피아니스트와 가수, 작곡가, 감독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다면 이는 환생이나 다름없는 축복일 것이다. 잊힌 다는 것만큼 슬픈 죽음은 없으니, 기억된다는 건 가장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영생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실은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바래져 잔잔하게 호흡하는 작품들을 억지로 깨워 처참히 짓밟는다. 이번에 새롭게 개봉한 영화 <맨 인 블랙 : 인터내셔널>이 내게 그렇다. 다락방의 먼지 사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상자 안에 잠들어 있으면 좋았을 원고는 또다시 욕심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 마지막을 태웠던 호기로움을 무의미하게 하는 슬픈 짓을 벌이고 말았다. 과거, 그것이 마지막인 채 그대로 잠들었으면 좋았을 걸을.


그래서 내게 리부트나 스핀 오프 작품은 썩 유쾌하지 않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으니.


혹시 모를 대박을 위해, 사랑받은 끝에 조용히 자리에 앉은 작품의 평화를 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좋은 작품이란 또다시 꺼내 들어 멋대로 생명을 펌프질해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기억되기 마련일 테니까. 그리고 그것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 작품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와카레미치 instagram / YouTube

siview market / siview instagram

aq137ok@naver.co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넷플릭스 오리지널 <아이 엠 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