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을 임의로 거슬러 닻을 놓고 정박할 수 있는 시간 여행. 영상 매체가 없던 과거에도 글과 그림을 통해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시간 여행이라는 환상과 상상을 심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 과학 기술의 발전을 등에 지고, 실제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학자들은 이론적으로는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 말한다. 이뤄질 수 없는 망상과 같은 것이라 은연중에 단정 짓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흔들림 없던 올곧은 사람의 가슴이 지난 여인의 체취에 내려앉고, 날카롭고 척박한 삶에 말라버린 눈을 어깨를 감싸 안는 그의 손에 의해 적시고 마는 여인처럼, 우리에게 '시간 여행'이란 우리를 위로하고 또 설레게 하는 상상이다. 그리고 이 상상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역시, 우리가 기억으로 연명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 어떠한 현상이나 경험을 체내에 축적한 것으로, 이것은 내 안에 담기는 즉시 과거가 된다. 기억과 추억이란 과거의 산물이며, 매 순간이 과거가 되는 우리에게 있어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이정표가 되는 것이 기억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린 행복과 불행 같은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 단조로운 생生에 굴곡을 만든다. 여기서 시간 여행이란 소재는,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 기억으로 연명하며 후회를 반복하는 미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행복했던 과거의 순간에 또 머물고 싶은 마음과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의 후회를 바로잡기 위해, 과거를 바꾸고 싶은 마음들이 뒤얽혀 시간 여행을 꿈꾸는 우리. 그러나 몇 개월 전 개봉했던 영화 '어벤저스-앤드 게임'을 통해 본, 시간 여행의 진실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시간이란, 우리가 존재하는 시공간이 단 하나의 선 위에만 존재하며, 그 위에서 우린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시간의 흐름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즉, 우린 직렬 세계에 살며 과거와 미래, 현재는 단 하나의 선상에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셋 중 하나의 변화만으로도 같은 선상에 있는 다른 순간들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믿었다. 영화 '빽 투 더 퓨쳐'가 우리가 믿는 대표적인 시간의 흐름이다.
과거가 바뀌면 현재와 미래도 바뀌는 것. 우리가 상상하던 시간 여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 '어벤저스-앤드 게임'을 통해 밝혀진 시간 여행의 또 다른 이론은 "모든 순간은 단독으로 존재하며, 각각의 순간은 다른 순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였다. 각각의 순간이 하나의 세상으로써 존재하기에, 미래의 인물이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바꾸고 미래로 돌아온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음을 의미한다. 미래의 인물이 과거로 가 바꾼 순간은 그저 또 다른 세상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A, B라는 두 개의 선태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나머지 하나를 선택한 세상도 존재한다는 평행우주, 이 우주가 무한대로 존재한다는 다중우주론에서 시작된 답이라 생각된다.
어벤저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나는 몇 번씩 그 영화를 보면서, 시간 여행이라는 상상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머물고 싶던 순간을 꿈꾸고, 혹은 어떠한 순간을 바꿔 현재와 미래를 꾸미고 싶었던 바람이 무의미했음에 씁쓸함을 느꼈다. 물론 평행우주와 다중우주, 시간 여행 어느 것하나 명확하게 증명된 것이 없으니 영화가 주는 단순한 픽션에 불과하겠지만 명확한 건, 무엇이 증명되든 과거는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진정, 상상과 망상으로 끝날 것들이다.
과거로 돌아가 어떠한 순간을 바꿈으로써 현재가 변하든 변하지 않든 불가능할 일들. 되려 영화가 말하는 과거를 바꿔도 현재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건 위로에 가깝다. 바꿀 수 있다는 상상으로 후회할 일을 하기보단, 바꿀 수 없다는 확신으로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는 것이 나을 테니까.
끝없이, 미련하게, 어리석을 만큼 후회를 반복한다. 이는 정말 답답한 삶이다. 그럼에도 반복한다는 건, 우리는 죄 많은 생生에서 비롯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그렇담, 시간을 거슬러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우리의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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