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쯤, 여명黎明이라 불리는 빛에 새벽이 희석되어가면, 점차 어둠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나는 새벽이 아침에 밀려나는 그 어스름한 시간이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아침을 일찍 시작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가끔은 좀 더 일찍 그런 시간에 눈을 떠 창밖으로 새벽이 밀려나는 처연함을 지켜보는 것도 썩 좋은 순간이다. 그리고 어제는 새벽을 밀어낸 태양이 연중 가장 길게 머문다는 하지夏至였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동지冬至와 정반대인 절기로, 이 둘은 서로 일 년을 위 아래로 나누어 공평하게 가장 긴 하루를 보낸다. 6월 22일 하지夏至는 일 년 중 위에 해당하는 여름에 찾아왔다.
이른 아침에 나의 눈을 뜨게 한건 휴대폰 알람이 아닌, 거침없이 내려앉는 햇빛이었다. 건물의 그림자를 헤집고 얇은 유리창을 뚫으며 방안으로 내려앉는 빛에, 눈꺼풀이 무색할 만큼 눈이 부셔 그만 깨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조급한 빛들을 모조리 안으로 밀어 넣으니, 방은 조명이 필요 없을 만큼 환해졌다. 아침은 말하고 있었다. 오늘 나는 긴 하루를 보낼 거라고. 일찌감치 설레는 마음에 아침잠을 설치는 아이처럼 일찍 찾아왔다고.
다행히도 하지夏至라는 절기와 날씨의 톱니는 잘 맞물려 하늘은 청명했다.
어린 시절 소풍을 기다리던 때였다. 그날에 있을 재미 혹은 특별한 에피소드에 대한 기약 없이 온전히 소풍 가는 그 아침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그렇기에 최대의 관심사는 오직 날씨였다. 부디, 그날은 연중 가장 맑은 날이기를 마음 깊이, 깊이 바랐었다.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지, 혹은 친구들과 학교가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만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오로지 소풍이라는 두 글자에 지나치게 맹신하는 어느 신자처럼 단순하게 그날만을 기렸다.
그런 때가 있었다. 이유를 묻지 않는 기대감을 갖던 때. 사랑한다 말하면 '왜'라는 물음표를 그려내는 지금이 아니라, 사랑한다 말하면 사랑이라는 단순 명료함을 표하고,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의심이 아니라 감사를 말하던 때가.
떠나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날. 떠나, 새롭게 밟은 땅에서 찾아낼 특별한 것들을 갈망하는 것이 아닌 그저 떠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행복하던 때. 하지夏至였던 아침. 버선 발로 내려앉는 빛을 보며 상기한다. 혼탁해진 삶에 무뎌진 감정과 예민함이 사소한 것들이 내뿜는 행복을 갉아먹고 있었다는걸. 때론, 그 시절 소풍을 기다리던 새벽처럼 단순한 기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siview market / siview instagram
aq137ok@naver.com